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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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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쁘게 내려주는 비에 덧대서


BY 이안 2013-09-08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오늘 날씨가 딱 그렇다. 날이 흐리고 말 줄 알았는데 고맙게도 비가 내린다. 줄기를 보이며 쏟아지는 비는 아니다. 내리는 소리도 귀에 와 닿지 않는 가랑비다. 그래 그냥 내리다 말겠지 한다. 한데 그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그 사이 땅이 촉촉해진다.

많은 비가 필요한 시기는 아니다. 내 서리태가 막 열매를 달기 시작했으니 메마르지 않을 정도만 돼주면 된다. 무 배추도 어제 물을 떠다 부어줬으니 당장 물 달라고 보채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내리는 비가 고마워 죽을 지경이다. 봄에 냉해를 입은 과일이야 어쩐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고추도 마늘도 참깨도 벼도 풍년이란다. 어제 밭에 갔다 만난 이웃 할머니의 말씀이시다.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나도 장마를 잔뜩 걱정했다가 고맙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비가 오면 죽을 쓰는 참깨는 마른장마가 적당하게 목마름만 걷어내줬다. 마늘도 밑이 들 시기에 때때로 한 번씩 내려준 비로 알이 실하게 들었다. 물론 생땅에 거름도 약도 뿌리지 않고 심은 내 마늘은 예외지만 말이다.

하지만 올해 심은 것들은 그럭저럭이다. 네 포기 심은 아삭이고추의 가지에는 약 한 번 뿌려주지 않았음에도 고추들이 주렁주렁 실하게 달렸다. 콩도, 여름내 내리고도 성이 차지 않아 네 번의 태풍까지 몰고 왔던 작년과 비교하면 다글다글 열매가 맺혔다. 메주콩은 열매들이 제법 자라 곧 여물 기세다. 서리태는 열매가 줄기에 오글오글 붙어있고 꽃도 아직 보이니 날씨만 받쳐주면 수확이 서운하지는 않을 듯하다. 고구마와 땅콩은 흙을 파내야 알 일이니 뭐라 말하기가 그렇다. 어제 간 김에 땅콩 대위로 쑥 올라온 달개비를 뽑아내려 밭에 들어갔었다. 그때 얼핏 들쥐인지, 아니면 두더지인지 땅을 후벼 파고 열매를 먹은 흔적이 있다. 여물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10월을 넘기면 고구마와 땅콩부터 걷어 들여야 한다. 콩은 한참 지나야 한다.

수확할 생각을 하면 힘들 거라는 생각보다도 뿌듯함이 먼저 다가온다. 사실 힘들다는 생각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 정도 몸 고생은 운동이라 생각하는 나다. 그래 남들이 죽을상을 하고 피하는 그 일을 난 즐거이 한다. 신이 나서 한다.

그런 날 동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옷 잘 빼입고 멋들어지게 살지도 않는 날 안쓰럽게 생각하는 눈치도 보인다. 간혹 옷도 사 입고 재미있게 살라고 주문을 한다. 형제티를 그렇게 낸다. 난 사는 맛을 느끼느라 재미있어 죽겠는데 말이다. 당뇨라는 병을 달고도 울상을 짓지 않고 살아내고 있는데 말이다. 아니 텃밭도 가꾸고 운동도 하고, 글도 쓰면서 내 할 일 다 하고 사는데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내 안이 그득해야 미소를 짓는 나인데 겉을 자꾸 꾸미라 말한다. 난 안을 채우기도 바쁜데. 비가 오는 김에 수확까지도 미리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