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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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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강아지 때문에


BY 이안 2013-08-27

지난 금요일 배추 모종 한 판을 사다 일부를 심고 태반이 남은 것을 가져와 베란다에 두었다. 먹자니 먹잘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깝다. 그야말로 계륵이다. 그래 그런지 그게 자꾸 눈에 거슬린다.

점심을 먹고 물 두 통을 받아 실고 밭으로 달린다. 베란다에 팽개쳐두었던 배추 모종도 챙겨간다. 지난 5월 이웃 아주머니가 자색 고구마라며 순이 뾰족뾰족 나온 종자고구마 한 개 준 것을 버리기가 아까워 꽂아두었던 곳에 심을 생각에서다.

목요일과 금요일 내려준 비로 밭은 물기가 보인다. 작물들도 생글거린다. 밭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난 무장을 한다. 밀짚모자를 꾹 눌러쓰고, 원예용 장갑도 낀다. 삽질할 생각에 더운 날씨가 더 덥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랴! 해야만 마음이 홀가분할 텐데.

고구마 순을 들춰 뽑아낸다. 신기하다. 고구마가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민다. 뿌리가 실한 종자고구마여서인지 여기저기 뻗어나간 뿌리에서 고구마가 달려 나온다. 난 횡재한 기분으로 고구마를 모은다. 그런 다음 삽으로 푹푹 파 업는다. 그래야만 뿌리를 내리기 쉬울 거 같아서다.

아버지도 늘 땅을 깊이 갈아 업고 작물을 심으셨다. 그래야 당근도 무도 뿌리가 잘 내린다고 하셨던 게 기억인 난다.

땅을 파고 고른 후 차로 간다. 트렁크에 있는 모종을 가져오기 위해서다. 밭둑을 걸어 차로 가는데 무밭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아주 여유를 부리며 질겅질겅 밟아대고 있다. 이제 순이 나와 떡잎 두어 장이 나왔는데 말이다.

나는 달려가면서 소리를 꽥 지른다.

저 망할 놈을 강아지가 어디를 밟고 있어!”

내 고함소리에 놀란 강아지가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난다. 난 그걸로 맘이 놓이지 않는다.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려놓으면 놀이터라도 되는 양 와서 꾹꾹 발자국을 남기고, 그것도 모자라 똥을 무더기로 싸놓고 가는 놈들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고 싶다.

난 내빼는 개를 뒤쫓는다. 그러면서 고함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개가 내말을 알아들을까마는 으름장으로 내 분풀이라도 해야 할 거 같아서다.

복날 지났다고 개 안 먹을까? 보신탕 해먹을 거야, 이놈들!”

보신탕은 입에 대지도 않는 내 입에서 보신탕 소리가 거침없이 튀어 나온다. 개한테 그 말보다 더 무서운 소리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다.

사실 개가 뭘 가장 겁내는지 난 모른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보신탕이라는 말은 아닐 거다. 그래도 내 기준에서 개를 제일 겁줄 수 있는 말은 그 말뿐이다.

너 누구네 개야?”

나는 쫓아가면서 개를 몰아댄다.

울타리도 높고 캡스까지 설치한 병원 집 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난 개 주인이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말한다. 마침 개 주인이 집밖에 세워둔 차에서 트렁크를 열고 뭔가를 하고 있다. 내 으름장에 개 두 마리가 얼른 주인 곁으로 달려간다.

개 좀 묶어 놓고 키우세요!”

내가 한 소리를 한다.

여자가 얼른 미안하다고 한다. 심기는 좀 불편한 목소리다. 기분이야 좋지 않겠지. 하지만 자기만 불편한 건 아니다. 나도 자기 못지않은 불편함이 겪고 있다.

땅을 파고 흙을 일구고 잔뜩 손정성을 들여 작물을 심어놓고 뿌듯한 마음으로 일어선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다시 밭을 찾는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마주치는 게 있다. 개발자국과 똥 무더기다. 갓 일구어놓은 땅이 개발자국과 놈들이 싸놓은 똥 무더기로 늘 엉망이 되어 있곤 했다.

그것을 보는 그동안의 내 마음을 여자가 가늠이나 해봤을지. 아마 그랬다면 개를 풀어놓고 키우지는 않았겠지. 남이 애써 가꾸는 밭을 엉망으로 만들도록 방치하지는 않았겠지. 어떤 때는 쥐약을 사다 생선에 발라 뿌려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때가 있다. 그 마음을 여자가 알기나 할지.

의사를 남편으로 둔 여자라면 배운 것도 있을 텐데, 농사꾼의 마음은 모르는 모양이다. 주변이 죄 농사꾼들인데. 당당이 개를 풀어놓고 키우는 것을 보면. 높은 담장을 하고도 그것으로 모자라 캡스까지 하며 꼭꼭 문을 닫아걸고 살다보니 이웃의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나보다. 울타리 안에서 자기 마음만 들여다보고 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