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종의 일기처럼 추억을 되짚어가며 남기는 기록이다.
하나도 내세울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도 이러 저러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기록-
외국인에게 보여줄 곳이 어디가 좋을까 싶어 폭풍검색 끝에 택했던
경복궁,창경궁,창덕궁,북촌 한옥마을,그리고 남산타워
나혼자라면 탈일이 없었을 서울시티투어버스란 것도 타보고
그렇게 핑핑의 가이드 노릇을 하던 작년 여름은 진짜 엄청나게 더워서
잠시 버스를 기다리느라 정류장에 서있으면
얼굴은 물론이고 다리에도 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다시는 한여름에 집을 나서나봐라' 이러면서 다녔었다.
나도 서울을 속속들이 본 전문 가이드가 아닌지라
경복궁 갔다 창경궁 갔다 다시 되돌아왔다 갔다 하느라고
아마 너댓시간을 걸은 것같다.
나는 걷기엔 자신이 있어서 참을 만했지만
그 날 핑핑은 힘들었나보다.
저보다 훨씬 나이먹은 사람이 씩씩하게 잘 걸으니 힘들단 소리도 못하고ㅠ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건데 은근히 미안해졌다.
여행과 사진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고 나와 다니는 것도 나빠하는 것같지 않기에
그 후에도 부암동 카페촌까지 데려가기도 했었다.
눈꽃빙수가 유명한 카페,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 촬영지였던 한성이네집을
개조한 카페도 데려가고
싫다는 아이에게 블루베리 치즈케익 맛을 보였더니
밤이라 싫다던 말은 어디로 가고 끝까지 맛있게 먹던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난다.ㅋ
그 때 핑핑은 아직 학생이고 나는 핑핑의 '한국엄마'니까
이것 저것 걷어먹이고 비용도 다 지불했더니
자기도 엄마가 보내준 용돈 받았다고 반을 내겠다고 우기던 모습도 예뻤다.ㅋ
"핑핑이 이담에 돈 벌면 그 때 내라"고 했던 말이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실제로 현실이 될 줄이야~(나중에 취업하고 재방문함)
그 땐 헤어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그저 좋은 추억으로만 생각하고
연락이 끊길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세대차이에도 불구하고 코드도 잘 맞고 서로 이해를 잘 해주니까...
진짜 딸도 아니고 며느리도 아니고 우리는 그냥 친구다.ㅎ
여행 친구, 사진 친구
남이섬을 보여주려고 전철을 타고 가던 날
자신도 중국인 조카며느리가 있는데 참 이쁘고 사랑스럽다며
핑핑을 위해 같이 합류하고 싶다는 내친구와 만났다.
내친구들이 다 그렇듯이 밥값도 다 자기가 내고 커피값도 내니
아니 그럼 손님을 데려온 나는 뭐가 되냔 말이다.ㅠ
자동차까지 가져와서 그날 내친 김에 춘천 구경까지 다 시켜준 친군데
돈계산 할 때마다 서로 내겠다고 싸우고
그러다 진 내가 친구의 선물을 사서 싫다고 안 받는다는 걸 강제로 안기는
모습을 보며 핑핑은 계속 엄마 미소를 짓고 있었다.ㅋㅋ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나보다.
내친구들은 왜 이렇게 다 착한거야?ㅠ
핑핑이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외국어 특기를 살려(영어 일본어 한국어 그리고 중국어) 외국계 회사에 취업해
미국인 사장님과 중국인 사장님,한국인 바이어,혹은 미국바이어들을 통역하는
사장비서겸 통역가가 되었는데
사장님 수행비서로 한국엘 다시 오면서 또 만나게 되었다.
참 꿈만 같은 일이다.
중국은 해외여행자율화가 되지 않은 나라고 한 번 나가려면
서류뭉치를 엄청나게 제출해야한다던데 핑핑은 그나마 글로벌기업에 취업이 돼서
그게 가능했나보다.
그리고 바쁜 일정 중에도 마음씨 좋은 사장님께
'한국어머니' 뵈러 가야한다고 노랠 불러서 하루 휴가를 받아냈다고 했다.
사장님이 주신 선물까지 들고 돈 번다고 자기도 선물을 준비해서 왔다.
보지도 못한 중국사장님께 어찌나 고맙던지...
한국에 오더라도 설마 나한테까지 내줄 시간이 있으랴 하고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청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나고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눈물이 많아지는 나. 주책이야...ㅠ
우리는 서로 반가워서 터미널 마당에서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중국에서 한국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를 봤다고
촬영지인 제이드가든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해서 나선 길이었다.
별로 넓지 않은 곳이지만 송혜교가 되어서 사진도 찍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거기만 한군데 가보면 성에 차지 않을 것같아
아침고요수목원도 데려갔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단풍을 보며
'우와.....이쁘다 이뻐' 이렇게 소릴 질러서 나를 웃게 만들었다.
중국어나 영어가 아닌 한국말이 튀어나올 만큼 너무나 멋진 풍경이었으니...
아침고요수목원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질 만큼 아주 아름다운 곳이니까
언제 가봐도 실망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때가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었으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그리고 핑핑이 가장 좋아하는건 한국의 맑은 하늘이다.
중국 대도시는 매연과 스모그로 좀처럼 맑은 하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도 내가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을 보내도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하늘이 정말 예쁘다고, 한국 하늘 보고 싶다고 한다.
가평터미널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끊어주면서
이제 언제 다시 만나랴 싶어 마음이 참 쓸쓸했다.
만남은 좋은데 헤어짐은 참 싫다.ㅠ
서로 꼬옥 안아주고 다음을 기약하며 이별....
자기도 이젠 돈 버니까 자기가 내겠다는 걸
'핑핑 돈 많이 모아서 시집 가야지. 여긴 한국이니까 내가 낼게'했더니
호호 웃으며 그럼 중국에 꼭 오란다. 기다린다고.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겠거니 했는데
워낙 의리가 있고 착하고 예의바른 아이인지라 아직도 주기적으로 카톡을 보내온다.
매번 묻는 말이 '어머니 중국에 언제 오실 거예요?'
'내년에는 친구랑 대만에 한 번 가기로 약속했으니 중국은 후년에...' 그랬는데도
하도 물어서 이번엔 확실하게 '2016년에' 이렇게 말해두었다.
진짜냐고 좋아서 펄쩍 뛰며 자기가 휴가를 내고 가이드를 하겠단다.ㅎ
하지만 진짜로 핑핑을 가이드 삼아 나혼자 중국엘 가게 될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때 되면 전형적인 중국남부 미인인 핑핑이 일찍 시집을 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기면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는 해도 어린 아가씨한테 신세를 지기는 좀 그래서...
핑핑 같은 아이가 내 며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내아들과는 나이차이는 있어도 서로 거의 동성친구급이라 어쩔 수 없고
그래서 수양딸로 삼기는 했으나 중국과 한국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
얼마나 오래 보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ㅠ
또 언젠가는 내아들도 장가를 갈텐데 며느리가 혹시 오해하고 질투하면 안되니
내가 예의도 지켜야할 것이고....ㅠ
잃기 너무 아까운 친구다.
그냥 이렇게 가끔 안부를 묻는 친구로 남아서
나중에 핑핑이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한국에 놀러와도 좋겠다.
같이 여기 저기 좋은 곳도 보러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