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젠 머리 쓰는 게 귀찮아. 어떤땐 복잡한건 생각조차 하기도 싫어
때로는 그냥 머리가 멈추는 느낌이야"
컴퓨터 배우러 다닐 때 옆자리에 앉았던 머리 좋은 언니가 말한다.
그 곳은 그냥 일반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직업훈련을 하는 곳이라
수업진도가 엄청 빠르고 공부시키는 분량도 많았는데
나보다 두 살이나 위인 이 언니는 이과적인 능력이나 창의력과 미적감각(홈페이지 만들 때 필요한 요소)이
뛰어나서 우리를 가르치던 젊고 까칠한 선생님의 칭찬까지 받던 이다.
그 실력으로 지금은 홈페이지제작하는 작은(?) 사업도 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도 저런 소릴 한다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ㅎ
무척 위안이 되기까지 한다.
또한 그 언니는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지금 갱년기를 겪고 있는 나에게서 위안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내가 무척 강단이 있었던지
주5일간 종일 수업을 다 해내고도 틈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칠줄 모르던 나의 체력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한다.
우리애들이 집 떠나 공부할 때라 부르면 늘 달려가야했고
또 그 와중에 나들이도 틈틈이 잘 했었던가보다.
-난 아직도 여행에 목마르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은데-
내가 생각해도 그 당시까지는 하기 싫고 귀찮아서 못 하는 일이 없었던 것같다.
오히려 핑계가 많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언니는 그 좋은 머리를 언제 써먹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잠이 많고
-보통 12시간 안팎은 자야 컨디션을 유지한다고 남편과 아이 아침밥을 평생 못 해주고 있다고-
체력이 약했다.
잠을 조금만 덜 자도 벌써 얼굴에 표가 나고 병이 나니 보는 내가 갑갑할 지경이었는데
요즘 나는 조금만 힘들면 몸살이 나서 뭔 일을 못 벌인다.
그리고 늘 고단하다. 출근하면서도 '아...푹 쉬고 싶다' 퇴근할 때도 '집에 가서 좀 누웠다 밥을 해야지'
이러고 있다니까 그 언니가 나를 보며 너무나 화사하게 호호호 웃는다.
-이 언니가 결코 남 잘못 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이제 나와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 걸로 충분히 이해한다.-
오지랖이 넓어서 누군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면
언제든,어디든 달려가던 내가 서서히 꾀가 나기 시작해서
센터에 점점 늘어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여기저기서 뭔가 부탁을 해오면
어디까지 도와주고 어디까지 거절을 해야하나? 힘드네. 아 내가 자기들 공짜 비서야? 뭐야?
이런 생각부터 드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깟 갱년기 증상에 이렇게 나도 무너지는건가?
그러니 더 나이들면 어떻게 내 육신을 감당하고 살건가?휴~
전에 듣기로, 나이가 들면 지식의 평준화, 건강의 평준화, 미모의 평준화....그렇게 모두 다 점점 평준화 되며
노인이 되어간다고 하더니 그때는 사람이 다 능력이 다르고 외모가 다른데 어떻게 평준화가 일어날 수가 있어?
하며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 했는데 이제는 좀 수긍이 간다.
그러니 이제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타난다는 원숙미와 좀 더 속을 넓게 쓸 마음씀씀이의 평준화가
나에게도 일어나도록 착하게나 살아야할까보다.
고집 세고 밴댕이 속알딱지를 가진 노인이 되면 누가 좋아하겠나?
늙어갈수록 삶의 안정을 누리고 여유와 자유시간을 가질 것은 좀 기대가 되지만
체력이 바닥나는 것은 좀 두렵다.
아무리 자유시간이 많으면 뭐하나? 기운이 없으면 아무 소용도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