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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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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업동이


BY 매실 2014-05-20

애완미용실에 우리 메롱이(혓바닥을 맨날 내밀고 있어서 매리가 메롱으로 바뀜)를 찾으러 갔더니  

"어머니, 업동이 들어와서 놀라셨죠?"한다.

"네? 업동이요? 아..공장에 있는 래브라도 리트리버요? 걘 들어온 지 오래됐는데요. 벌써 이~만큼 컸어요"

"어머니 모르세요?아버님이 유기견 데려온 거요" 

"네?유기견이라니요?"

"아.....모르시는구나" 하더니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랬다.

 

남편이 자주 다니는 거래처 길목에 웬 시츄 한 마리가 차에 치였는지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있더란다.

다쳤나? 걱정하면서도 무심결에 지나쳤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웅크리고 있어서

차를 세우고 다가가보니 잘 움직이지를 못하더란다.

 

미용도 깨끗이 되어있는 걸로 보아 귀하게 기르던 강아지 같은데 잃어버린건 아니고

늙었다고 누가 내다버린 것같더란다.

잘 보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였다고 했다.

차마 버리고 돌아올 수 없어서 단골 애견미용실엘 데려가서 '아마 오래 못 살 것같으니 얘를

목욕이라도 좀 시켜달라'고 했단다.

 

얼마나 놀랐는지....ㅠ

다친 강아지도 불쌍하지만 이미 공장에 큰 개 두 마리에, 작은 개 한 마리에, 집에도 한 마리에

아니 이건 공장이 아니라 농장을 차려야지 원.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이젠 업동이까지...?

 

"어머니, 애가 너무 많이 헤매고 다녀서 발바닥 패드가 다 찢어졌더라고요. 백내장도 왔고

나이도 제법 돼서 건강이 많이 안 좋은데 상처난 곳 약도 발라주고 했더니 기력을 많이 회복했어요

어머니도 직접 보셨으면 절대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신신당부를 했다.

그 사람도 워낙 강아지를 예뻐해서 낳은 새끼까지 아무 데도 못 보내고 다 키우는 사람이다.

키우는 강아지들이 열마리쯤은 되니 애견용품점이 아니라 무슨 강아지 농장같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시치미를 뚝 뗀다. 무슨 소리냐고?

순간 그 사람이 착각했나? 남의 집 아저씨를 내남편으로?

아니지 맨날 보는 사람을 착각할 리가?

 

계속 다그치니 그제야 이실직고를 한다.

너무 나이 들고 아픈 데도 많아서 금방 죽을 것같으니 내가 데리고 다니다가

죽으면 잘 보내주려고 한단다.

정들이면 나중에 가슴 아프니 나더러는 볼 생각도 말란다.

 

그럼 도대체 어디다 놨느냐고 물으니 차에 싣고 다닌다네.허걱~

아니 밤낮으로 차에 싣고 다닌다고?

 

밤에는 공장 한 귀퉁이에 집을 만들어 거기에 두고 낮에는 무슨 홀아비가 애기 데리고 다니듯

그렇게 데리고 다니겠다는 거다.

 

아효...

강아지고 고양이고 간에 내남편이 너무 거두는 것도 난감하지만

죽을 정도로 아프다는데 내다버리라고 할 수도 없고ㅠ 대략난감이다

 

한 편으론 너무나 화가 난다.

아니 이쁘다고 미용시키고 중성화수술까지 시켜 귀하게 키우다가

갑자기 밖에 내다버리면 적응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애완견이

어디 가서 어떻게 적응을 하라고 내다버린단 말인가?

차라리 키우지나 말지.

얼마나 주인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으면 발바닥이 다 떨어져나갔단 말인가?ㅠ

 

원래 밖에서 키우던 강아지와는 달리

사람과 거의 똑같은 생활을 하던 애완견은 추위 더위에도 무척 약해서 바깥 생활을 못 한다.

게다가 꾀가 말짱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무척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만 못한다 뿐이지 사람과 거의 똑같이 느낀다.

 

안 키워봤으면 모를까 키워봤다면 그런 모든 것을 다 알텐데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까?

차라리 처음부터 아예 시작을 말지.

그랬다면 그렇게 불쌍한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을텐데...

 

나도 강아지를 별로 안 좋아하다가 남편 덕에 갑자기 키우게됐지만

그 이전에도 난 보신탕을 절대로 못 먹었고 내가 싫어할 망정 남이 동물 학대하는 것도

무척 싫어했다. 생명체가 있는 것을 학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우리 메롱이를 가족처럼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어디가 아파서 애를 써도 가슴이 아프고 다쳤을 때는 병원 가면서 살려달라고 울며 기도도 했었다.

이왕 우리 곁에 온 이상 늙어서 생명 다할 때까지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살게 해달라고.

지금도 뭘 잘못 먹고 장염만 걸려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데....

 

목줄을 놓쳐서 잠깐 잃어버렸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었다.

자동차를 피할 줄 몰라서 금방이라도 교통사고로 어떻게 되거나

반려견 싫어하는 사람에게 붙잡혀서 보신탕집으로 팔려가는건 아닌가

사색이 되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어두워져 가는 거리에서 간신히 찾았을 때는

정말 기뻐서 울 뻔했다.

같이 걱정해주며 찾아준 중학생아이들이 어찌나 고맙고 예뻐보이던지.

 

전에는 길에 걸린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습니다. 현상금 몇 백만원> 이런 플랭카드를

가슴깊이 이해를 못 했었는데 지금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늙고 병들었다고 내다버릴 거면 어리고 귀엽다고 키우지도 말아야지.

혹시 싫어하던 다른 가족이 내다버렸다면

아무리 강아지를 좋아해도 가족 누군가가 동의하지 않으면 함부로 키우지도 말아야한다.

강아지는 살아있는 생명체지 인형이나 장난감이 아니다.

 

남편 말대로 나는 새로 온 업동이를 볼 자신이 없다.

너무 가슴아플 것같아서...

그냥 남편이 하는대로 두고 볼 작정이다.

나더러 건사하라는 것도 아니고 죽어가는 생명 거두겠다는 남편을 극구 만류할 필요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