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여행과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내게 네팔 아가씨가 묻는다.
3D 업종은 여자가 일을 하기에 벅차기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들 중에 여자가 흔치 않은데
저 친구는 제법 야무지고 똘똘해서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는 것같다.
네팔에서 대학도 나왔단다.
열심히 일해서 돈도 잘 벌고 가방이며 구두며 준명품도 잘 걸치는 그야말로 골드미스다
"제가 1월 1일에 회사를 쉴 수 있어요. 선생님 나랑 어디 같이 갈 수 있어요?"
"어디가 가고싶은데요?"
"남이섬이요. 제가 드라마 봤어요. 거기 꼭 가고싶어요"
그런데 12월 31일에는 송구영신 예배를 12시 넘어서까지 드리기 때문에
아침일찍 어디로 나들이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좀 망설여졌다.
크리스마스다, 주일이다 해서 계속 강행군을 한 터에 송구영신 예배까지 드리면
그냥 푹 자고만 싶을텐데...
외국인노동자들은 야근과 주말 특근을 밥 먹듯 하기 때문에
좀처럼 어디 멀리로 나들이 하기가 쉽지 않은데 모처럼 쉬는 날에 드라마 촬영지에 가고싶다는데,
게다가 여기서는 차를 타고 1시간만 가면 도착하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데 끝내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마치 어린애처럼 뛸듯이 기뻐한다.
"정말 좋아요~호호"
그렇게 해서 그 곳에 가고싶다는 내외국인들을 몇 명 더 모집해서 교회 승합차를 빌리고
회비를 걷어서 남이섬에 다녀왔다.
봄가을에 가면 더 좋았겠지만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겨울에 가서 '겨울연가' 주인공 처럼 영화 한 편을 찍어도 나쁘지 않을 것같았다.
이렇게 팀을 짜기도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인지 다들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했다.
날씨도 겨울치고는 크게 춥지 않고 햇빛도 좋아서 더 좋았던 것같다.
남이섬 선착장 근처에서 닭갈비집에 주차를 하고 점심을 먹고 배를 타기로 했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양은 터무니 없이 적었지만 닭갈비라는 생소한 음식이 좋았던지
어떻게 만드는 거냐? 맛있다. 이름이 뭐냐?...반응이 좋았다.
담합을 했는지 그 일대 음식값과 양은 동일하다는데 인심이 참 야박하다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지만 모처럼 들뜬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열심히 사진들을 찍고 같이 못 온 친구들을 아쉬워하며 그렇게 남이섬 가는 배에 몸을 실었는데
그 예쁜 모양의 배를 타는 시간이 고작 5분 정도로 짧기 때문에
배난간을 부여잡고 안 내리고싶다고 더 타고 싶다고....
배안에서도 사진들 찍느라고 실내로 들어가지 않고 갑판위에서 경쟁하듯이 멋진 포즈로
연신 사진들을 찍어댔다.
남이섬에서 질척거리며 녹아내리는 눈도 밟고 이글루 체험도 하고 겨울연가 주인공들의
큰 브로마이드 앞에서 사진도 찍고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르고 어이없도록 짧은
메타세콰이어길도 걸어보고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도 마시고
둘씩 짝지어 수다떨며 강가를 따라 섬일대 산책도 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배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출출하기도 하고 날도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저녁을 먹고 헤어져야할 것같아 중간에 베어스타운 근처의 맛집에도 들렀다.
차가운 물에 만 김치말이 국수를 먹는 우리 한국사람들을 보며 진저리를 치던 네팔사람들은
다들 곰탕을 시키더니 맛있다고 국물을 바닥까지 싹싹 먹는다.
평소에도 채소보다는 고기를 주로 좋아하는 사람들인지라 입에 잘 맞나보다.
곰탕,곰탕...이름을 외운다. 다른 데 가서도 주문할 때 알기 위해서란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쉽지가 않단다.
그런 게 바로 우리가 해외에 가면 느끼는 것이지싶다.
그렇게 배까지 부르니 하루 종일 별로 한 건 없지만 아주 흡족한 얼굴이다.
다음에 또 가자고 날짜 잡자고 난리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덩달아 여행을 했으니 나쁘지 않아서 그러마고 대답을 해뒀다.
남자들은 전철역앞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여자들은 밤길이 위험하니 회사 숙소까지 데려다주고 나니
깜깜한 밤이다.
마치 내딸 같아서 외진(공장들은 대개 주택가와 떨어진 외진 곳에 있게 마련이라) 공장에
콜택시를 타고 가는 것은 위험하니 내가 거기까지 데려다 주마 했더니 "선생님, 참 좋아요" 이러고 고백도 한다.ㅋ
"선생님은 왜 여자만 좋아해요? 우리도 좋아해주세요" 청년들은 웃으면서 약간 질투를 하기도 한다.
피곤해도 내가 아주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면 되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좋았던지 네팔에 다녀오면서 특별한 선물을 사다주기도 했다(핸드메이드 숄더백)
그리고 많은 사람 중에 눈에 띄지 않아서 그냥 지나칠라치면 꼭 큰소리로 불러서 인사를 한다.
그들도 진심으로 자기를 대하는 것은 다 느끼나보다.
내자식이 외국생활을 많이 하다보니 남의 일같지 않아서 나도 그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건데
나를 뭐 특별히 착한 사람인양 대할 때는 좀 쑥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