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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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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재미가 숨어있는 성북동


BY 매실 2011-11-18

원래는 북한산 성곽길을 걸으려고 올라가던 길이었는데

가다보니 들를 곳이 너무 많았다.

이태준작가 고택,최순우 고택,심우장(한용운 고택),길상사,간송미술관,구립미술관....

 

그러다보니 입산마감시간인 3시가 다 돼서야 입구에 도착을 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전시회 관람을 기다리는 줄이 동네어귀 큰길가에까지 길게 이어져있어서 왠지 우리도 거기

동참해야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봄가을에 한번씩 보름간만 문을 여는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에서 줄을 서느라

무려 3시간이나 보내는 바람에 너무 늦어진 것이다.

 

그래도 후회되지 않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우리나라 옛 화가들의 그림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미술관인데도 무료개방을 한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웬만한 욕심꾸러기라면 한 몫 단단히 잡으려고 할텐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기회를 무료로 제공하다니...

저런 사람이 바로 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신윤복 화가의 미인도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은 그가 당대의 천재화가였음을

단번에 눈치채게 한다.

그 시절에 파스텔톤의 색깔은 무엇으로 냈는지도 궁금하고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선으로 그린 그림으로부터 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서 튀어나올 것은 느낌이 든다.

정말 사랑스러운 그림들이다.

 

그의 그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인파들 속을 비집고 보느라고 고생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감동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그런지

미술책에서만 보던 그림들이 겨우 A4용지 반절만한 크기로 작은 것도 신기하고

오래되어서 종이가 노오랗게 변한 것도 참 귀해보인다.

 

미인도는 사이즈가 큰 족자타입이었는데 그 속에 있는 여인의 눈망울이 호수처럼 깊어서 

마치 나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그대로 보존했다는 미술관 건물도 정말 친근하고 편안하다.

전시된 그림이 생각보다 무척 많다.

 

굵은 나무며 꽃들이 맘대로 자라게 내버려둔 넓은 정원도 딱 내스타일이다.

비밀의 화원 같은 느낌이 든다.

 

나들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역시 먹거리

오른쪽 부자동네와 왼쪽 서민동네를 가르며 올라가는 길가에는 허름하면서도 정겨운

맛집들이 즐비하다.

간판도 인테리어도 어찌보면 촌스러운데 그게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오랜 역사가 느껴져서 진짜로 더 맛있을 것같은 느낌마저 든다.

 

올라가다가 성북동 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역시 진한 육수에 만두와 칼국수가 섞여나오는 칼만두는 맛이 기가 막히다.

 

나오면서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했더니 주인장 할아버지는

"식사가 늦으셨네요. 시장이 반찬이지요.허허~"하신다.

 

저렇게 겸손하게 대답하시는 사장님은 처음이다. 신선한 느낌이 든다.ㅎ

 

서울시 시민문화재1호라는 최순우고택도 정말 아기자기하고 깔끔하다.

달동네 초입에 섞여있어서 얼핏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작은 집인데

어쩜 그렇게 보존을 잘 했는지 집안 구석구석이 반들반들 윤이 난다.

일제시대에 지어져 짙은 갈색을 띄는 서까래며 기둥들이 회벽의 흰색과 어우러져

너무나 깔끔하고 예뻐보인다. 격자유리문도 정갈하고 예쁘다.

그냥 집이 아닌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나도 그런 곳에서 살면 삶이 더 우아해질 수 있을까?

 

이태준 작가 고택은 지금 카페로 변해있는데 고택의 대청마루와 마당에서 마시는

차맛은 더 기가 막힐 듯하다.

다음에 시간이 넉넉할 때 거기 앉아서 친구들과 오래도록 수다를 떨어도 좋겠다.

우리는 목적지가 따로 있기에 그 날은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마당엔 우물도 뚜껑을 덮은 채 보존이 되어있다.

구석구석 운치가 있는 한옥 카페.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현판이며 사진액자들이

친근하다.

 

부잣집들이야 요즘 어디서건 흔히 볼 수 있으니까 그렇고

나는 왼쪽의 서민들이 사는 달동네가 더 좋다.

30년 전에 보던 그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에 저런 곳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골목이 좁긴해도 깨끗하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집 마당에는 하얀 빨래도 널려있다.

왠지 사람사는 냄새가 제대로 나는 것같다.

 

성북동 나들이한 때는 10월 중순이어서 단풍이 한창이라 길상사 뜰이 너~~무나 예뻤다.

나는 태어나서 절이 그렇게 예쁠 수 있다는건 처음 알았다.

 

단청무늬가 요란한 건물을 싫어했기 때문인데 길상사에 있는 건물들은 역사의 깊이가

느껴지고 웅장하다. 알록달록한 가벼움이 없다.

 

대리석인듯한 돌로 덮인 마당 초입도 너무나 깔끔하고 싸리빗자루 자국이 선명한

흙마당도 너무나 단아해보인다.

느티나무 단풍도 멋지다.

구석구석 있는 벤치와 아기자기한 꾸밈도 예쁘다.

 

스님들이 기거하는 통나무집들이 있는 계곡길은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그림 같다.

 

내가 너무 예뻐~를 연발하니까 거기로 인도한 친구가 안도한다.

내가 기독교인이라서 혹시 거부감 느끼면 어쩌나 내심 걱정을 했단다.

 

그건 종교의 문제와는 별개가 아닐까?

그곳 사람들이 갑자기 나더러 개종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잠시 들러가는 것 뿐인데....

 

성곽길로 들어가지는 못 했어도 거기서 내려다본 아랫마을 성북동이 참 멋지다.

여기가 정말 서울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