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어릴 적에 전자렌지를 사고 싶은데 남편이 기를 쓰고 말렸다.
가스불에 프라이팬 얹어놓고 데우면 되지 그게 왜 꼭 필요하냐면서.
남편은 차라리 나가서 술값이나 음식값으로 얼마를 쓰든 그런건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데
새로운 살림살이 사들여오는 걸 엄청 싫어했다.
이유도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못 사게 했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란다.
살림을 해보지 않아서 없으면 없는대로 살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모르나보다.
사람심리란 게 이상해서 못 하게 하면 더 하고 싶지 않던가?
내가 일하러 나간 새 학교에서 돌아온 애들이 가스불 다루긴 너무 위험하니
전자렌지가 있으면 훨씬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같고
시간도 절약될 것같은데...
내맘대로 샀다간 결국 큰 쌈이 나겠어서 그저 꾹꾹 참고만 있었더니 병이 날 것같았다.
보다못한 내동생이 시집가면서 혼수 장만할 때 제것과 똑같은 것을 사서 보내왔다.
어찌나 미안하던지....사실 그만한 돈이 없어서 못 산건 아닌데 본의아니게 민폐를 끼쳤다.
그것을 지금까지 잘 쓰고 있는데 전자파가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요즘은 자주 쓰진 않는 편이다.
그런 얘기를 두고 두고 했더니 이제 남편은 계면쩍은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더이상 살림간섭은 덜 하는 편이다.
자기도 두고 두고 묵은 얘기가 뭐 그리 듣기 좋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남편도 그렇고 제재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오히려 내가 새것에 대한 욕심이 시들해졌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다가 언제고 꼭! 필요하면 사지 뭐 하고 자꾸 미루게 된 것이다.
지난번엔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비싸게 주고 모터를 갈았는데
양문형이라고 모터값도 두 배로 비쌌지만 그래도 냉장고를 새걸로 교체하기엔 아까우니
모터값 뽑을 때까지만 더 쓰자 하고 수리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냉장실을 쾅 닫으면 냉동실이 스르르 열린다.ㅎ
아마 자석의 접착력이 약해진게 아닐까? 싶은데,
남편이 "에이~ 내다버리고 새걸로 살까?"이러는데 나는
"그냥 잘 달래가면서 쓰지 뭐. 항상 냉동실 꼭꼭 눌러주면 돼. 정 안되면 또 수리하고"
남편도 다니면서 보고 들어서 아는지
이제 어느 집에나 있는 김치냉장고가 우리집에는 없다는 사실을 미안해할 줄도 안다.
"김치냉장고 없어서 어떡해?"
"우리식구는 많이 먹지도 않는데 그냥 냉장고에 넣고 살면 되지" 이러고 만다.
사실 김치냉장고가 있으면 야채 과일 보관에도 좋고 김치를 적당히 익혀서
더 맛있다는 것도 아는데 이상하게 아까워서 자꾸만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
그 게 벌써 몇 년째던가?
요즘 웬만한 집들은 다 냉장고를 서너개 혹은 대여섯개씩이나 놓고 산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러려면 차라리 방 하나를 냉장실로 만드는 게 빠르지 않을까?ㅎ
한창 홈씨어터니 뭐니 해서 대형TV와 오디오를 셋트로 구매하던 시절에
우리는 30인치쯤 되는 소형TV를 샀고 아직 아무 말썽없이 잘 보고 있다.
이사온후로는 이웃과 왕래를 하는 편도 아니니까 흉볼 사람이 없어서 신경을 안 쓰고 살다보니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아파트란게 이웃과 서로 왕래하다보면 쓸데없는 살림살이 비교와 자존심 대결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일이 없으니까.
우리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 세워놓는 대형TV 유행이 지나고
납작해서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LCD TV가 대센가 했더니
지금은 전기도 절약되고 화질도 훨씬 더 좋다는 LED TV로 몇 단계 더 진화를 했다.
그 사이에 또 더 좋은 게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세워놓는 대형TV를 초창기에 사서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데
지금 내다버리자니 아직은 성능이 좋고, 팔자니 고물값이나 받겠고해서
어쩔 수 없이 두고 본다는 친구를 보니 차라리 더 구형인 우리집 것이 나은 것도 같다.ㅎ
'우리는 학구적으로 살려고 TV에 별로 투자를 안해' 이렇게 혼자 위로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 언제고 사고 싶으면 확~ 저지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