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허리가 덧나서 요즘 윗층 외국인 근로자 무료 쉼터에서 쉬고 있는
네팔 청년 수베디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어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고
영어만 조금 할 줄 알아서 아직 한국실정에 어둡다.
내아들 또래고 붙임성있는 성격이라서 잘 대해줬더니
날마다 한 가지씩 부탁할 거리를 들고 찾아온다.
바빠서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 입장에선 어디 부탁할 곳도 없고 언어소통도 안되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서 들어주게 된다.
허리가 낫질 않고 계속 아픈데 이 약이 효과가 없는거 아니냐?
나는 빨리 돈을 벌어야 네팔에 있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낼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빨리 낫겠느냐?
왜 두 병원 의사 말이 각각 다르냐? 누구 말이 옳으냐?
자기가 본국에서는 몇 년 간 군대생활 하는 동안 한 번도 허리 아픈 적이 없었는데
지금 왜 아픈거냐?
아니 그걸 낸들 아나? 무료로 진료해준 의사선생님이나 전에 다니던 병원
의사선생님이나 견해가 다를 뿐 누가 옳은지는 나도 모른다.
약먹으면서 시간이 지나기를 좀 더 기다려보자. 달랠 수밖에 없었는데
날마다 내려와서 징징거리더니 이제야 좀 효과가 있는 것같다면서 화색이 돈다.
자기 친구가 뼈에 좋다는 뼈해장국을 사먹으랬다고 어디서 사먹을 수 있느냐고
식당을 알려달라고 했다.
인정 많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내남편이 나서서 데리고 가더니 뼈해장국을 사먹이고
도가니탕을 사먹이러 다닌 게 효과가 있었는지 푹신한 침대에서 자지말고
방바닥에서 자라고 조언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무튼 다행이다.
퇴근시간에 내려왔길래 또 뼈해장국 먹으러 가고 싶으냐 물으니
비싸서 안 먹겠다고, 그냥 약만 먹어도 된다고 사양을 한다.
없이 살아도 남에게 신세지는건 싫어하는 예의바른 청년이다.
전기 허리 찜질팩을 사고 싶은데 어디 가면 살 수 있는지 차로 데려다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시간이 없으니 인터넷에서 사주랴?물으니 가격이 어디가 더 싸냐고 묻는다.
인터넷쇼핑몰이 더 싸다고 하니 그럼 그러란다.
그래서 검색을 하는데 비싸도 안된다. 싸도 품질이 의심스럽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
몇 시간 검색후에야 마침내 가격도 적당하고 품질도 좋아보이는 것으로 선택을 했다.
나중에 배송이 왔는데 정말 가격대비 품질이 훌륭했다.
역시 우리나라 제품은 배송도 빠를 뿐더러 품질이 참 좋더라.
어제는 또 로션을 사야하는데 또 인터넷에서 사달란다. 재미들렸네?ㅋ
그런데 여드름이 잘 나는 자기 피부에 맞는 것으로 골라달라
품질은 좋으냐? 향은 어떠냐? 하도 주문사항이 많아서 혹시 물건을 산 다음에
변심하면 반품이 곤란할 것같아 그러지 말고 이번엔 마트의 화장품 가게에 같이
가서 고르자고 했더니 인터넷이 더 싸다고 했잖냐면서 고집을 부리네.
아이고...
인터넷에서는 화장품이 너무나 다양한데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직접 만져볼 수가
없어서 안된다고.
이번엔 그냥 마트에서 사고, 좋으면 나중엔 그 제품을 인터넷에서 사면 되지 않겠느냐고
달랬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화장품 가게에 가서 아주머니에게 저렴한 남자화장품을 좀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적당한 제품을 내놓는데 브랜드나 연한 향으로 봐서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이 녀석이 어느새 셋트에 딸려있는 작은 샘플 병을 열어서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만
손등에 발라보기까지 한다.
앗,그거 발라보면 그냥 그거 사야된다고 했더니 그제야 미안한듯한 미소를 짓는다.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웃더니 돈벌기 힘든데 폼클렌징은 비싼거 사지말고 그냥
샘플 공짜로 많이 줄테니 그거 가져다가 쓰란다.
그리고 스킨과 함께 셋트로 사지 않고 로션만 사도 딱반값에 주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이 녀석이 또 고집을 부린다.
두 가지 다 사겠노라고,그리고 굳이 양이 많은 폼클렌징 제품을 사겠다고...아흐 이런...
다 계산을 하고 그 샘플도 다 챙겨서 포장을 했다.
그리고나니 또 다른 제품에 눈길이 가나보다. 더 싼가 싶어서 그랬는지...
그건 십대들이 쓰는거고 가격도 더 비싼거다.
아주머니가 추천한 게 가격도 가장 적당하고 품질도 제일 좋은거다.
그리고 한국의 화장품들은 다 품질이 좋다. 했더니 그제야 발길을 돌린다.
이번엔 빵과 우유와 과일을 사야겠단다.
요즘은 비가 많이 와서 과일이 달지 않으니 사지말래도 굳이 먹고 싶어서 사야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나도 요즘 비싸고 싱거워서 과일을 생전 못 사먹는데...
그럼 포도를 사겠느냐고 물어봤다.
100g에 1900원인가가 써있으니 그게 가격인 줄 알고 친구것까지 두 송이를 포장해달란다.
헉스..내가 말렸다.
저건 100g의 가격이고 이건 무게가 600g은 되겠다고 해도 굳이 사겠단다.
그런데 물건을 저울에 달아서 포도 두 송이에 가격이 7천원이 넘게 나오자
놀란 눈치다. 아이고 구구단을 못 외우나? 내가 말릴 때 좀 듣지.
우유를 사고 주스를 한 병 사고나니 갑자기 빵을 안사겠다네.
생각해보니 집에 있는 것같단다.
가만보니 눈치가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같다.
생각지않게 포도에 너무 많은 돈을 써서 그런가?
우유식빵을 하나 사주니 굳이 자기가 내겠다고 돈을 내민다.
이건 비싸지 않으니 내가 사준다고 강제로 떠안겼다.
비싼 고기같은거야 못 사주지만 식빵 한 봉지야 뭐.
고맙다고 코가 깨지게 인사를 한다.
나는 봉지값이 아까워 빈박스에 포장을 하고 그는 버스타고 돌아가기엔
박스가 불편할 것같아 십원짜리 몇 개를 주고 봉지를 사서 들려주니
또 깍듯이 인사를 한다.
그렇게 함께 장을 보고 되돌려보내고 나도 집으로 돌아와보니 아뿔사! 그가 사려던
감귤주스가 내 박스에 들어있다. 주스중에 시지않고 제일 맛있다고 그거 사라고
권해놓고 내가 가져와버린 것이다.
문자를 했다.
주스를 모르고 내가 가져왔으니 내일 돌려주겠다고. 미안하다고.
전화비 아끼느라 그런지 항상 답은 없다. 그야말로 문자를 씹는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내용은 다 알고 있다.ㅎ
다음날 주스를 전해주니 내가 계산한 거라고 도로 가져가란다.
뭐야? 그럼 내가 계산할 때 이미 포기한거?
그래도 그냥 마시라고 줬더니 또 얼마냐고 묻는다.
자기가 돈 줘야한다면서 막무가내다.
비싸지 않으니까 놔두라 하고 도망치듯 내려왔다.
전에 내남편과 식당에서 도가니탕을 먹고 혼자 돌아가던날 그가 주문한 택배박스가
밤중에 도착을 해서 기사분이 내사무실 앞에 두고 간다길래
그더러 올라가기 전에 그거 잘 찾아가라고 잃어버릴까봐 걱정된다고 문자를 두 번이나 해도
묵묵부답이어서 결국 무슨 일이 있나하고 전화를 했었다.
무사히 잘 돌아갔느냐고,택배는 찾아갔느냐고?
문자에,전화에,..내 성화가 웃긴지 히히히 웃는다.
이미 찾아가지고 잘 왔노라고. 자기 어린애 아니라고. 고맙다고.ㅎ
한 번은 전화카드 영수증을 들고 오더니 그걸 자기 핸드폰안에 충전을 시켜달란다.
그 영수증에 써있는대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아무리 해봐도 계속 에러만 날 뿐
진전이 없다.
전화를 했더니 그건 내국인 전용카드라서 외국인 선불폰엔 입력이 안된단다.
산 곳에 가면 환불이나 교환을 해줄 거란다.
가서 환불하라고 하니 혹시라도 한국인이 구박할까봐(?) 자신이 없는지
그냥 버리겠다고 했다.
아니 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데 그걸 왜 버려? 내가 화들짝 놀라니 또 히히 웃는다.
비싸다고 버리면 안된다고 난리인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자꾸 웃는다.
그럼 내가 시간 될 때 가서 환불해다주마 하니 그럼 그걸 나더러 받아 가지라네.
아니 벼룩의 간을 내먹지 내가 그걸 왜 가져?
그 놈의 카드는 또 왜 그렇게 먼 데서 샀는지 전화로 위치를 물어 한참을 찾아가서야
환불을 해서 갖다주니 또 고맙다고 코가 깨지게 인사를 한다.
내가 이게 뭐하는건가 싶다가도 나의 조그만 수고에 그가 불편을 해결한다면
할 만한 일이다.
다음주면 그는 이미 정해진 일터로 떠나게 된다.
이제 친해질 만한데 정들자 곧 이별이다.
언제고 네팔에 꼭 한 번 놀러오란다.
그럼서 하는 말이 네팔에 테러리스트들이 아주 많단다.헉!
도대체 그런 곳엘 오라는거야? 말라는 거야?
그간 사귄 네팔인, 캄보디아인들이 많아서 나 이제 몇 년 후에 네팔이나 캄보디아 가면
아는 사람 천지겠다. 든든하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