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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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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복


BY 매실 2011-06-30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가장 마지막에 누리고 싶은 큰 복이 바로 죽는 복이다.

오죽해 99-88-234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을까?

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는 복이란다.

 

요즘은 뉴스에 등장하는 벼라별 사건 사고도 많아서

오히려 자리보존하고 있다가 죽는 것도 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오늘 만해도 가까운 서울시내에서 웬 산사태가 나서 자동차가 깔리고

그래서 여러 사람이 중상을 입고 사망자까지 나왔다고 한다.

뉴스를 보니 자동차가 폐차 지경으로 다 망가져있다.ㅠ

 

특히 우리 가족이 종종 이용하는 전철 1호선 선로까지 끊겼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겨우 요까짓 비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산사태가 나서 지나가던 자동차가 사고를 당하다니...휴~

 

내가 살다가 어느 한순간 어떻게 될 지 우리는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산다.

 

이십년쯤 전 그 무슨 태풍이었던가 강한 태풍이 닥쳤을 때

우리 사촌오라버니는 오토바이 타고 길을 가다가 전신주가 쓰러지면서

거기에 깔려 돌아가셨다.ㅠ

 

우리 이모가 시집가서 유복자로 낳아 데리고 재혼해서 온갖 구박과 설움속에

자랐다는 오라버니라 내마음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불쌍하게 자랐으면 어른돼서라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왜 남들 안 당하는 불행을 당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의 안된 일에 초치기 좋아하는 우리 시어머니는 그 때도

"어머 어쩌냐? 그건 팔자야, 얘" 이러면서 마치 샘통이라는 듯이 얘기했었다.

 

그럴 때 같이 마음 아파 해주고 그냥 잠자코 있어주면 안되나?

 

그러던 당신은 더 험하게 세상을 떴다.

53세의 젊은 나이에 시어머니가 되었는데도 우릴 볼 때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 너희는 나중에 얼마든지 누리고 살지않겠니?"

노랠 부르며 효도하라고 하더니 환갑도 못 채우고....ㅠ

 

심지어는 손으로 그린 영정 초상화를 이미 50대중반에 만들어서

방안에 가장 잘 보이는 정면에 놓았다.

그것도 없는 형편에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만든.

 

손으로 그린 초상화보단 생전의 사진을 확대하는 게 요즘 트렌드인데...

그 때 난 그 초상화가 정말 소름끼치게 싫었다.

 

시아버지는 정말 온가족 친지들 모두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오래 끄셨다.

세 번씩이나 풍을 맞아서 마지막엔 중환자실에서 이제 임종을 준비하시라는

의사의 선고를 받고도 5년 이상을 끌었고 혼수상태로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남들보다 몇 배를 더 끄셨다.

온갖 보약을 철철이 드셔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 게 그 분이 살아내야했던 명이었던 모양이다.

 

문병 오셔서 안타까워 하시던 건강하던 친지분들이 그 사이에 두 분이나 먼저 세상을 뜨셨다.

오는덴 순서가 있어도 가는덴 순서가 없다더니 그 말이 맞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그래도 내남편은 지치지도 않고 온갖 효도를 다 했다.

덕분에 내가 해야할 몫 또한 많았다. 

 

자랄 때 나무그늘에서 놀며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땅덩이 팔아서 쓰는 재미로 사셨던

무능한 아버지라 가족들 고생을 많이 시켰는데도 왜 그렇게 효도가 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집 자식들 보면 아무리 부모라도 싫은 소리도 하고 더이상 못 하겠다고도 하고

그러던데 아무튼 극진했다.

 

자식들에게 해준 건 별로 없는데 특히 결혼할 땐 정말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너무나 힘들게 하고 가셨다.

아들들 중에서 가장 함부로 대했던 맏아들 효도 많이 받으시고...

 

바로 윗집 아저씨는 80이 넘은 연세에도 정정하게 밭에서 일하다가 밭두렁에

곧게 누워 주무시듯이 돌아가셨다.

너무 갑작스러워 가족들이 허무해서 어떡하나? 걱정했더니

그 분의 평생 기도제목이 그거였단다.

자식들 힘들지 않게 끝까지 수족 잘 쓰고 일하다가 잠자듯이 천국 가는 것.

 

그 분은 평안도에서부터 하나님을 믿은 크리스찬인데 월남해서도 잘 믿고

정말 열심히 사신 분이란다.

80넘어서 까지 농사를 짓는다는 게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자식들도 형제간 우애가 좋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자식들이 부모 생각하는 것도 애틋하지만 내가 가장 부러웠던건

부모가 자식들을 아끼는 마음이었다.

 

살림이 넉넉진 않아도 자식들 고생할까봐 언제나 전전긍긍

어서 살림 일구고 일어나라고 물심양면으로 도우려고 노력하시는 모습

 

저런 부모라면 우리 시어머니 원대로 내가 월세를 살면서라도

시부모님 집을 새로 지어드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같았다.

 

살아생전 그렇게 자식을 위하시더니 돌아가실 때도 어쩜 그렇게 돌아가시는지...

 

나도 마지막에 내자식들 힘들지 않게 가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