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누가 담가요?"
그이가 묻는 뜻을 몰라서 "제가요. 왜요?"물었더니
"안 담가먹을 것같이 보여서 누가 담가주나? 어디서 얻어오나? 했지요"
내가 손에 물도 안 묻히게 세련되게 생긴건 결코 아니겠고ㅋ
그이보다 체격이 작고 약해보여서 그랬을까?
일을 잘 하게 생기질 않아서 그랬을까?
그런데 나는 식구들에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이는 걸
주부로서의 내 첫번째 도리로 생각하고 산다.
바깥일로 늘 바쁘고 원래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가족들을 위해 내가 그 정도는 해야만 할 것같은 생각으로 살아왔고
내가 해냈을 때 스스로 무척 능력있는 주부처럼 느껴진다.
원래는 음식보다는 청소나 정리정돈이 취미에 더 맞지만
일단 음식을 먼저 해놓고 나면 왠지 뿌듯하고 든든하다.
더이상 할 일이 없는 것같다.
그건 나에게 그만큼 어렵고 부담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핸드폰 안에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잊지말고
준비해야할 음식을 메모해놓고 잔다.
자고 일어나서 뭘 해야할지 까맣게 잊을 때가 있어서...
귀가 시간이 늦어질 것같아서 아침과 저녁을 다 준비해놓고 나가야 하는 날은
메뉴가 정해지기만 해도 무척 홀가분하고, 생각이 안나면 참 괴롭다.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외국음식이 아니라면 나는 집밥이 더 좋고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야채가 너무 좋다.
내가 가꾼-나혼자 다 한 것은 아니고- 채소를 손질해서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도
기쁘다.
내가 담글 줄 모르는 집된장 집고추장을 누가 퍼주면 또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매번 색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남편은 툭하면 외식하자고 나를 꼬드기지만
그럴 때마다 대부분은 내가 뭐라고 한다.
남들은 밥하기 싫어서라도 남편이 외식하자면 좋아한다는데
집에다 밥 놔두고 외식하자고 하면 나의 정성을 무시당하는 것같아 기분이 나빠진다.
원래 나는 요리에 별로 소질이 없어서
무엇이든 집에서 자기손으로 다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저장음식까지 척척 잘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못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자꾸 곁눈질해서 배우려고 노력하고 따라했더니 지금은 아주 조금쯤 흉내를 내게
된 것같다.
지금도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어보고 맛있으면 얼른 따라해본다.
그러면 나의 레파토리가 한 가지 늘어나는 것이다.
내손으로 처음 김장김치를 담갔던 날
그제야 내가 제대로 된 주부가 된 것같아 얼마나 뿌듯하던지...
매실엑기스를 담글 엄두가 나지 않아 묻고 또 물어가며 처음 해냈던 때도 그랬다.
지금은 별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으니까 마치 내가 베테랑주부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다른 일엔 좀 과감하고 잘 저지르는 편인데 이상하게 음식,특히 저장음식은
시작할 엄두가 잘 나질 않고 어렵다.
혹시 맛이 없어서 다 버리게 될까봐.
평생 담가본 적 없는 간장게장도 나의 남은 숙제 중 하난데
핸드폰 메모장 속에 메모해놓고 열 때마다 한번씩 읽어보기만 하고
아직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언젠가 간장게장에 성공하는 날 얼마나 흐뭇할지...
그런데 그 날이 언제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