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369

자리양보


BY 매실 2011-06-01

요즘은 버스전용차선이 생겨서 좋긴해도 시간을 가늠하는덴 전철이 정확해서

약속이 있으면 주로 전철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얼마전에도 전철을 탔는데 잠시 두리번거려 보아도 빈자리가 없길래 그냥 포기하고 서있는데

한참 손잡이에 매달려 있다 보니 옆에서 누군가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돌아보니 20대초반의 청년들이 여럿 서있다.

저~기 빈자리가 났으니 앉으시란다.

 

내가 아직은 자리양보 받기엔 젊은 것같은데 청년들이 자기 앞에 난 빈자리를 마다하고

나에게 양보하는게 너무 황송하기도 하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빙그레 웃고 섰는데

옆에 섰던 내딸이 어서 가라고 떠민다.

 

그래서 일단 가서 앉았다.

옆에 앉아 계시던 60세 되셨다는 아주머니께서 당신이 청년들에게 나를 불러달라고 했단다.

 

그럼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 나이가 가장 어정쩡한 때에요. 우리는 노약자석에 함부로 못 앉아요.

지난번에 허리아파서 병원 가느라고 거기 앉았다가 70대 할아버지한테 봉변 당했잖아요

막 소리를 지르시면서 젊은 것이 여기 왜 앉았냐고 하는 거에요.나도 너무 힘든데...ㅠ"

 

ㅎ젊은 것? 하기사 70대 노인에겐 60세도 젊은 것이겠지.

 

하지만 '우리 나이가...'로 시작한 그 말씀이 내내 맘에 걸린다.

혹시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여서 60세쯤으로 보인걸까? 아니면 50대 후반쯤?헉스...

나는 이래봬도 아직 4학년인데...

 

지난번에 미용실에서 잘못 자른 너무 짧은 머리 때문에 그렇게 보였나?

내가 저 아주머니처럼 주름살이 많은가?

 

편하게 자리 차지하고 앉은건 좋았는데 내내 그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참 묘한 기분이다.

 

"요즘은 젊은 애들도 절대 자리 양보 안해요. 군인들도 안 일어나는데요 뭐"

"....."

나는 아직 젊은이들더러 자리 양보 안한다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라서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군인들도' 요 부분에서 또 맘에 걸린다.

내아들이, 우리나라처럼 군인이 고생하고 수고하는 나라도 없는데

또 민간인들이 군인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나라도 없다고 불평하던 생각이 났다.

 

어느 나라는 군인이라면 국민들을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대접해주고 경의를 표한다나? 그래서 부럽다나?

 

그래서 역성을 들기로 했다.ㅎ

 

"군인들도 나라 지키느라 힘든데 앉아야지요. 얼마나 힘들면 안 일어나겠어요?

맨날 고생만 하다가 모처럼 휴가받아 집에 가는데 힘들어서 앉아있겠죠"

 

"하긴 그렇죠? 그래도 노인은 더 힘들어요"

그것도 맞다.ㅎ

 

아줌마인 내가 맞장구치며 군인들을 싸잡아 흉보지 않고 반대로 역성을 들어서 그런가?

갑자기 앞에 섰던 여러 청년들의 의아해하는 듯한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짜슥들...엄마맘은 다 그런거얌

 

가끔 자리 차지하고 앉은 군인사병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면

에고...집에 가면 귀한 아들인데 얼마나 고생을 할꼬? 피곤하니 앉아서 자고 싶기도 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내아들을 군대 보내고 보니 엄마의 마음으로 그랬다.

 

내아들이 휴가를 나올 때면 자동차로야 얼마 안 걸리는 거리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또 전철을 2시간 이상 타야하는데

군인신분이라서 빈자리가 있어도 절대 자리에 앉을 수가 없다고 했다.

혹시라도 앉았다가 선배들에게 들키는 날에는 정복입고 자부심에 손상을 입혔다고 야단맞는단다.

빈자리가 없으면 몰라도 있는데도 폼생폼사 멋내다 돌아가시겠다.

 

야간 경계근무를 서느라 어느 하루도 편히 못 자고 조각잠을 자는데 

그 피곤한 몸으로 내내 서서 오려면 여간 힘들지 않을 것같았다.

 

그래서 내가 궁리해낸 것이 버스와 전철 타지않고 공항리무진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약간의 과보호이긴 하지만 내자식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고 싶어서 내가 낸 아이디어였고

매번 그렇게 했다. 차비는 좀 비싸도.

 

그러니까 좌석이 남아도는 리무진버스에서는 남의 눈치 안 보고 편히 앉아 자면서 올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장거리 리무진 버스에서 혼자 계속 서있겠다고 우길 순 없는 노릇이니까.ㅎ

아마 기사분이 안전문제 때문에라도 뭐라고 하지 않을까?

 

그러니 내아들처럼 저렇게 할 수 없는 지역에 있는 아들들은 버스와 전철을

몇 번이고 갈아타며 집에 가야할텐데 얼마나 힘들까?해서 내가 자리 양보 안 하는 군인들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군인이 앉아있으면 혹시 내눈치라도 볼까봐 아예 멀찌감치 떨어져 선다.

 

다른 젊은이들도 다 각자의 사정은 있게 마련일테니 아예 통로쪽에 자리잡고 서는게

몸은 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

그러다 운이 좋아 자리가 나면 앉는거고 아님 말고.

 

그러자면 내가 70대까지는 노약자석으로 가지않고 서서 버틸 체력이 돼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