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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면회와 시아버지 喪 (538일)


BY 박애경 2011-04-18

 어느새 아들 입대한지 백일을 넘어섰다.

 이제 18개월 남짓 군생활이 남았단 얘기지요.

참으로 긴  입대 100일째 주를 보냈으니~~~

 

 4월 9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병 첫면회를  가기위하여  3-4일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하였고, 4월8일 금욜엔 조기퇴근을 해서 음식준비를 하였는데~~~

1박2일 여섯끼를 식단까지 짜며 아들애가 좋아하는 국물 있는 것을 3-4시간씩 끓여서

통에 담고 건더기는 건더기대로 밀폐용 그릇레 차곡차곡 담았다.

이틀동안 집안에 들어앉아 먹기만 한다기에 간식도, 과일도 넉넉히 준비하고.

토욜 새벽 5시에 출발해야지만 면회 시간을 맞출수 있는 형편인데

금욜 밤에 춘천서 문상 할 일이 있어 준비한 음식을 차 트렁크가 넘치도록 싣고

밤 10시가 넘어 영월을 출발했다.

밤늦은 문상 뒤  언니 집에서 잠깐 눈을 부치고 토욜 아침일찍 양구로 향했는데

아들의 부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라 생각하니 길은 더더욱 꾸불거리고

부대까지는 양구 읍내에서도 20여분을 더 북쪽으로 가야하는 곳에 있었다.

8시 10분경에 부대에 도착하고 면회 신청을 하니 정문까지 짚차가 나와서 해당부대의

생활관 앞까지 호송을 해주었고 , 그곳 휴게실에서 잠시 기다리니 그리던 아들이 나타났는데

모자속의 얼굴이 얼마나 통통하던지 얼굴이 생경스럽기까지 했다.

눈물속의 상봉은 아니었지만 아들을 안아보고 쓸어보고 쳐다보고 너무도 대견하다.

드디어 외박증을 받아들고(그곳에서 아들애의 직속 포대장을 뵈었다.그분이 그날의 당직사관

이라 뵐 수 있었던 것이다) 군인 이병을 태우고 보부도 당당하게 부대정문을 통과해서

이병의 콧구멍에 사회바람을 넣어주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들애의 부대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 .산 .산  그리고 또 산이다.

 

 숙소는 읍내에 잡아두었기에 바로 숙소로 갔더니 초로의 깨끗한 여인네가 기다리고 있다가

트렁크에서 짐 내리는 걸 도와주면서 많이도 준비해 왔다고 놀라는데.

짐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자 하니 아들은 부대에서 먹었다고 하면서도

삼계탕 한마리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국물을 더 다려야겠다고 훈수를하고

딸애의 교복패션쇼를 보며 즐거워 한다. 오빠를 위해 딸은 교복을 준비해 갔던 것이다.

묻고 싶은 것도 많고, 시간도 많고, 갈때는 없고, 그시간의 우리에게 주워진 상황이었기에

난 느긋하게 아들 만난 포만감의 휴식을 취했고, 이병아들은 스마트폰의 매력에 빠져 시간을

쪼개고 있었던 한시간여가 오롯한 면회시간이었다고 할까!!!!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고기를 구워서 맛있게 먹고 입가심으로 김장김치를 찢어 공기밥을 비울때쯤

내 손전화가 울리기에 부대에서 온건가 하고 (부대 문밖을 나서면선 행선지 이동을 보고했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부대에서 전화가 왔었다.) 보니 형님 전화다.

"동서야! 양구서 아들 면회하고 있겠구나.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니 빨리 병원으로 와."

청천병력이다. 지난달에 뵈었을때도 건강하셨기에 갑작스런 상황은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우선 부대에 전화를 넣어서 상황을 전하고 외박증을 가지고 춘천까지 갈 수 있는지 타진을 했다.

교환병은 상황보고를 하고 결과를 알려 줄테니 기다리라는데 , 일각이 여삼추란것을 통절하며

이번엔 아들애 포대장께 직접 손전화를 하니 보고는 받았고,  윗선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란 말씀. 전화를 끊자 손전화는 다시 울리고 운명을 하셨단 전갈이다.

포대장께 다시 전화를 해서 돌아가셨단 말을 하자 그렇잖아도 3박4일 휴가처리 되었다고

죄송하지만 부대로 다시 들어와서 외박증이란 휴가증을 교환해 가야한다고 하신다.

 

 부랴부랴 풀었던 음식을 챙기는데 삼계탕 네마리중 두마리만 먹은 상태이고 국물은 진하게

두시간을 더 다려 놓았지만 다시 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라 주인 아주머니께 드시겠냐고

하니 드셔도 괜찮다고 하셔서 야채랑 등등을 드리며 짐을 싸는데 무엇보다 황기삼계탕을 원했던

아들에게 진국의 그 국물을 못먹인게  안타까웠다.

부대로 들어가니 포대장님께서 휴가증을 들고 주차장에서 기다리시면서

"어머님 더 빨리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며 머리를 숙이는데

난 이 한마디에 아들이 자대배치 받은 뒤에 전화나 편지글 한번 없던 포대장에 대한

서운함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으니~~~~

 

 부대를 출발해서야 생각나는 것은 남편이 우리들과 같이 있지 않단 것이었는데

면회 날짜는 3주전에 받아 놓은 것이었고 남편의 직장에 갑자기 피치 못할 일이 8일에

발생해서 그걸 처리한 후 토욜 늦게나 양구에서 합류할 예정이었기에.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안받는다. 사무실에 전화하니 다행히 자리에 있었고

"여보!! 아버님이 돌아가셨어."란 소식을 내입으로 전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장례식장에 도착하고서도 한시간이 지나서야 남편은 장례식장에 들어서고~~

 

 이렇게해서 아들의 첫면회는 할아버지 장례식으로 연결 되었고

이병 손자는 할아버지 영정을 들고 서럽게 서럽게  울면서 장례식을 치뤘다.

내게도 그애에게도 네분중의 마지막 한분이었기에 더 서럽고 안타까웠으리라.

 

 3박4일 휴가는 토욜,일욜이 포함되어 있어서 장례(11일) 다음날인 12일 19시까지 복귀였기에

다시 부대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부대 정문에서 이병을 내려주며 "이번 면회는 무효야. 조만간 다시 올게." 로 마무리 한다..

 

 이글을 정리하면서도 눈물이 난다. 아들이 서럽게 울던 장면이 생각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