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2 방안
(카메라, 다혜의 수첩을 든 현태의 손에서부터 - )
현태 (소리) 이것이 그 여자가 떨어뜨리고 간 수첩이란 말이지?
(수첩을 들고 냄새를 맡아본다)
아, 아, 좋은 냄새가 나는데. 이건 분명 쳐녀의 냄새야!
(함부로 수첩을 들쳐본다. 수첩에서 네잎 클로버가 굴러떨어진다)
네잎 클로버라. 좀 낯간지럽군. 그래 넌 이 수첩을 용기가 없어서 돌려주지
못했단 말이지? 웬일이냐, 피리부는 소년. 넌 그 아가씨를 사랑하는 게 아니냐,
(수첩에서 학생증을 꺼낸다) 아아. 학생증이 들어있는데 성악과 삼학년 정다혜,
이봐, 그 여자 이름이 정다혜다. 이 아가씨가 맞냐?
(현태, 민우에게 학생증을 내민다. 받아드는 민우.
인서트 - 학생증에 붙은 다혜의 사진. 그녀의 이름)
민우 내가 그 여자를 넘어뜨렸어, 그 여잔 다리가 부러졌을거야.
형, 난 용기가 없었어, 미안해서 그 여자에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어.
현태 직접 말할 용기가 없다면 집을 찾아가서 돌려주면 될 게 아냐. 여기 주소가 적혀
있으니까 우편함 속에 집어 넣으면 되잖아. 자 가거라, 피리부는 소년.
주소를 보고 집을 찾아가 수첩을 돌려주고 오라구.
(현태, 수첩을 내준다. 엉겁결에 수첩을 받아드는 민우)
현태 자 가거라, 지금 당장!
(민우가 엉겁결에 일어서서 나가려는데)
현태 한마디만 더 듣고 가거라, 피리부는 소년! 네 첫사랑을 축하한다. 그러나 잊지 마.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높이 보면 비극이 온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독일속담이야.
여자도 밥먹고, 하루 한 번씩 화장실에 가고, 앉아서 오줌을 누는 동물이란 걸 잊지
마라, 피리부는 소년!
(문이 닫힌다,
창을 하고 있는 설희.
현태, 설희의 노래에 맞춰 장단을 치다가 문득 술상 위에 떨어진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다. 불현듯 네잎 클로버를 집어드는 현태. 그 얼굴에서 - )
신/13 다혜의 집 앞
(자전거를 몰고오는 민우
일본식 적산가옥이 촘촘히 들어선 어두운 골목.
전봇대에 가로등이 하나 덩그렇게 켜져 있다.
꿈결과 같은 골목길.
민우가 주소를 확인하며 오다가 다혜의 집을 발견하다.
민우, 담장 너머로 집 안을 들여다 본다.
불꺼진 창문들.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우편함에 집어넣으려는데, 안에서
인기척 소리. 민우, 멈칫 물러선다)
다혜 (소리) 엄마. 잠깐 물건좀 사가지고 올게요. 문 열어놓고 가요.
(민우, 황급히 어둠 속으로 숨는다.
문이 열리고 다혜가 나온다.
가로등 불빛이 다혜의 얼굴을 그림처럼 떠올린다.
다혜, 어둠 속에 숨은 민우를 보지 못하고 총총걸음으로 골목어귀의 구멍가게로
뛰어간다. 멀리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사 안는 다혜의 모습.
민우, 격한 충격으로 헐떡이면서 벽에 기대어 다혜를 본다.
이윽고 과일봉투를 안고 다혜가 총총히 다가온다.
민우 앞을 스쳐지나간다.
무심코 지나가던 다혜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민우가 가로등 불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다)
민우 저어 아,안녕하세요.
(다혜, 두어걸음 물러선다)
민우 저 며칠 전 교정에서 자전거로 넘어뜨린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저, 아가씨는 그때
수첩을 떨어뜨리고 갔어요. 그래서 그것을 돌려드리려구요.
다혜 아 -
민우 다혜씨 맞으시죠?
다혜 네.
민우 너무 늦게 돌려드려서 죄송합니다.
(수첩을 주는데 다혜가 수첩을 받다가 사과봉투를 떨어뜨린다.
민우, 당황하면서 사과를 주워모아 다혜에게 건네준다. 받아드는 다혜)
다혜 고맙습니다. 그럼 -
민우 안녕히 계세요.
(다혜가 안으로 들어간다. 문닫는 소리. 정적 -
이때 민우, 땅에 떨어진 사과 하나를 발견한다.
마치 그것이 다혜가 일부러 떨어뜨리고 간 선물인 듯 사과를 집어든다.
민우, 담 너머로 올려다본다.
창에 불이 켜진다. 창문에 일렁이는 그림자.
민우, 단숨에 사과를 먹는다.
미친 듯이 기뻐하면서 사과를 거푸거푸 먹는다.
민우, 킬킬거리면서 자전거를 탄다.
천천히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모습에서)
-- F.O.--
신/14 (F.I.) 지하철 역
(다혜가 지하철 계단을 내려오는데 현태가 느닷없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는다.
의하해서 쳐다보는 다혜)
현태 정다혜 씨죠?
다혜 .........
현태 잃으신 물건 없으세요?
다혜 ....없는데요.
현태 잘 생각해보세요.
(다혜 유심히 생각해본다.)
현태 아주 중요한 물건인데요, 행복과 행운을 상징하는 물건이죠.
다혜 ............
현태 제가 그 물건을 찾아드리면 제 소망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다혜 전 잃어버린 물건이 없는데요.
현태 약속하세요. 그 물건을 찾아드리는 대신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구요.
(다혜가 현태의 태도에 웃음을 터뜨린다.)
현태 웃으셨으면 일단 제 부탁을 승낙하신걸로 알아듣겠습니다.
(주머니에서 네잎 클로버를 꺼내든다)
신/15 목포집
(주전자에서 커다란 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따라 벌컥벌컥 들이키는 현태.
입가에 묻은 막걸리를 손으로 쓱 닦으면서 단무지 한쪽을 집어먹는다)
현태 민우라고 아시죠. 한 민우. 며칠전에 다혜씨를 자전거로 치어서 넘어뜨렸던
친구 말입니다.
그 친구 지금 말입니다 (비극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어제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였습니다.
다혜가 자전거에 치인 것처럼 -
의사 말로는 다시는 일어서서 걸어다니지 못할 거라고 하더군요.
(다혜, 당황한 얼굴)
현태 병원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걸어서 이 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네잎 클로버를 돌려드린대신, 저화 함께
병원에 잠깐 들러주시지 않겠습니까? 죽어가는 불쌍한 젊은 친구를 위해서 말입니다
약속은 약속입니다. (다혜를 보면서 ) 말을 듣지 않으면 강제로 납치해서라도
다혜씨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탁자 위에 놓인 핸드백을 들고 먼저 일어서는 현태)
신/16 병원
(힙포크라테스의 동상이 서 있는 석양의 병원 뜨락.
현태와 다혜가 언덕릴을 올라온다.
현태, 잔디 위의 벤치을 가리키면서 - )
현태 이곳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제가 가서 민우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병실보다 이곳에서 만나는 게 더 자연스럽겠죠.
휠체어에 태우고 제가 밀고 오겠습니다.
(다혜, 벤치에 가 앉는다.
저물어가는 석양빛, 가로등 불빛이 들어온다.
이때 응급실 문이 열리면서 휠체어에 탄 사람이 나온다.
다혜,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키는데, 푸른 환자복으로 입은 환자가 정원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문다.
민우의 모습이 아니다.
엉거주춤 앉으려는데, 등 뒤에서 민우의 목소리가 날아온다)
민우 안녕하세요.
다혜 (등을 돌리다가) 아......
민우 방금 현태 형에게서 다혜씨가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혜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니, 괜찮으세요?
민우 (어리둥절) 뭐가요?
다혜 아프지 않으세요?
민우 제가요? 전 아프지 않은데요.
다혜 허지만 그분은 민우씨가 다쳤다고 그러던데요? 차에 치였다구요!
민우 (웃으면서) 속으셨습니다. 현태 형이라면 능히 그런 거짓말을 쳔연덕스럽게 할 수
있지요. 전 말짱해요, 보실래요?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다혜 그럼 왜 병원에........
민우 아픈것은 제가 아니라 제 아버님입니다. 거짓말에 속으셔서 화가 나세요?
(다혜, 대답 대신 머리를 흔든다)
민우 잘됐습니다. 전 현태 형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는데요?
현태형의 거짓말 덕분에 다혜씨를 또 만나게 됐으니까요.
다혜 그분을 가셨나요?
민우 갔을겁니다, 그건 그 형의 버릇이죠.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신/17 주점 거리
(가늘게 비가 내린다.
현태가 목포집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서 들려오는 창소리)
신/18 목포집
(현태, 창소리가 들려오는 방문을 연다.
설희,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다.
거울 안에 비친 혀내의 모습을 보는 설희.)
설희 웬일이야,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현태, 대답 대신 방문을 잠그고 설희의몸을 부둥켜안는다.)
설희 안돼. 손님맞을 준비를 해야돼. 이거 놔!
(순간 현태. 설희의 옷을 벗기고 그녀의 입에 키스를 한다.
설희, 별수없다는 듯 길게 눕는다.
설희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는 현태.
현태의 머리를 가볍게 부둥켜안는 설희.
설희, 누워서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본다.
설희가 누운 채 창을 하는 데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