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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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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엄마 밥먹이기


BY 박시내 2011-09-29

여름이 가고, 치매엄마의 증상이 좀 안좋아졌나?

 

재작년, 요양원에서 실려나와 병원에 입원했을때, 거의 중환자실로 갈뻔할정도였을때,

 

퇴원하고 집에 와서의 증상이, 밥먹일때 입을 안벌렸었다.

 

그리고 2년반이 지났는데.

 

20여일전부터, 입을 벌리는걸 못한다.

 

몇달전, 아랫틀니가 빠져버린후, 윗이빨로 아랫입술전체를 물고있는 형국.

 

침대를 세워 앉혀, 앞받이를 두른후, 밥을 먹인다.

 

밥이라기보다, 죽조차 갈아 거의 미음같은 수준.

 

"엄마, 아~ 아~ 해봐" 

 

이 말의 뜻을 알아듣질 못한다.

 

숟가락이 코 앞에 와도 그게 먹는건지 모른다.

 

그저, 아랫입술을 꼭 물은 채,  온 얼굴은 찡그린채, 신음소리를 낸다.

 

"오까상~, 오또상~"만 계속계속 읊조린다.

 

이렇게 말을 할때 숟가락을 입속에 넣는다,

 

입속에 죽이 들어가도 윗이빨을 드러낸채 아랫입술을 또 문다.

 

죽이 줄줄 흘러내린다.  숟가락으로 쓸어담는다.

 

열번이 넘게 숟가락이 입에 왔다갔다하다 겨우겨우 입속에 넣을 수있는 죽.

 

낮에 4시간 오는 요양사도 쩔쩔맨다.

 

물 역시 마시게 하는게 어렵다,

 

컵을 입에 대면 여전히 윗이빨로 아랫입술을 물고 요지부동이다.

 

억지로 물을 먹이다가 사레가 심하게 들어,  초상치룰뻔하지않았나!!!!!

 

일주일전엔, 급기야,  링거를 꼽아야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물공급이 원활하지않으니, 소변색이 갈색이다. 신장이 망가진다는 신호인가?

 

그러니,,,,,

 

이 상태의 환자가 요양원에 있다면 당연 초상이다.

 

아버지가 더 난리다.  옆에서 말을 걸고, 거의 재롱잔치수준이다.

 

겨우 웃음질때, 또 숟가락을 입에 넣을 수가 있다.

 

아버지의 삶의끈이 엄마아니겠는가?

 

아마도, 엄마가 잘못되면 아버지역시 시름시름 앓다가지않겠는가?

 

엄마가 사레가 심하게 걸려 죽다살아난 일주일전,  아버지는 저녁을 안먹고

 

급기야, 설사까지 했다.   쇼크를 먹은것같았다.

 

"아버지!  저 병이 낫는 병이 아니잖아요,  저 병이 나아서, 나처럼 이렇게 쌩쌩하게

 

되는게 아니잖아요.  마음을 다잡고 있어야할것 아니냐구요!!"

 

87세의 아버지는,  83세의 엄마가 어찌될까봐 전전긍긍이다.

 

이 병을 오래 지켜본결과,

 

엄마는 이미 영혼은 없는것이다.

 

식물인간이나 다를바가 없는것이다.

 

모습은 늙은 나의 엄마가 맞지만,  모습외엔 내 엄마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무도 알아보지못하고, 어떤 의미있는 말조차도 할 수가 없다.

 

단순한 질문에도 답을 할 수가 없다.  말을 못하는건 아니지만,

 

의사소통이란게 없기때문이다.

 

저런 삶조차 의미있다고 누가 말할수 있단 말인가??

 

다른 자식들은 다 도망가고,  어쩌다 와도 엄마를 보려하질않는다.

 

그 모습을 눈에, 가슴에, 마음에 담고싶어하지않겠지.

 

어거지로 시키는 식사의 의미는? 

 

30년전,  내 친할머니가 큰집에서 사셨다가,

 

김장철, 이웃집 김장 품앗이갔다가,  속대를 많이 드셨는지,

 

집에 돌아와, 체한것같다며, 며칠 끙끙대더니, 병원에 가셨더랬다.

 

병원에서는 "위장은 아직 건강하신데, 심장이 많이 안좋으시고, 치료도 할 수없으니

 

그저, 집으로 모시고 가서,편하게 돌아가시게 하세요"

 

이 대목에서, 난, 아버지가 내 엄마에게 하듯 친할머니를 대했다면 할머니또한

 

삶을 얼마간 연장하지않았을까?

 

내 아버지며, 내 삼촌들, 큰아버지는  병원에서부터 장례치룰 생각밖에 없었다.

 

큰집은 산동네 허름하고, 삼촌네는 장사를 하니 재수없을까봐, 결국 우리집으로

 

퇴원을 하신 할머니.

 

건넌방에 뉘여놓은 할머니를 그 누구도 보살피지않았다!!!

 

난 19살 재수생이었다.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고, 엄마는 건넌방에 가보지도 않았다.

 

큰엄마나, 작은 엄마나, 큰아버지나... 사람들이 뜨문뜨문 왔던 기억,

 

링거를 꼽았던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엄마는 건넌방에 들어가질않았다.

 

할머니는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쳐댔다.  낮에도 밤에도.

 

혀가 말려들어가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들었다.

 

입속에 물이라도 넣어줬더라면?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엄마는 할머니손목에 넥타이로 묶어, 책상다리에 연결해버렸다!!

 

우리집에 와서 누운지, 15일만에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장례는 집에서 치뤄졌고,  장례 며칠간 누군가 찍은 사진속에

 

식솔들은 웃고있다.

 

할머니 나이 76세.

 

 

그리고 일년후, 첫 제사를 큰집에서 하는데,

 

엄마는 당시 신혼이었던, 큰오빠네 전화를 했다.

 

울산에 사는 큰오빠.

 

"네 친할머니 제사랜다.  난 안갈꺼니까, 네들이 다녀와라!"

 

그 제사에 엄마는 안갔다.

 

울산오빠내외가 다녀왔는지는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 뒤,  올캐는 이 상황을 씹는다.

 

뭐, 이런 시어미가 있나 싶었을것이다.

 

이런 엄마가 치매가 걸려,

 

아버지가 하는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는 내 감정이 잘못된걸까?

 

아버지는 당신 어머니에겐 그리 하지 않았으면서?

 

그렇다고 아버지가  엄마에겐 또 애정있게 하였었던가?

 

제 정신이었던 엄만, 늘 아버지의 애정에 굶주려했었다.

 

 

이해할수없는 집이다.   내가 나고자란 이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