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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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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지않은 죄


BY 박시내 2011-02-09

난 내 성격이 싫다.

 

우유부단하고, 남의 눈치도 잘 보고, 그리고 게으르다.

 

거기다가 굉장히 감성적이라서, 항상 감정에 놀아나기도 하다.

 

다정도 병이라고, 쓸데없이 정도 많다.

 

그리고 주어진 인생을 값지게도 못쓴다.

 

 

대학졸업하고 완구회사에 다녔더랬다.

 

당시 봉제완구는 수출이 잘 되었고, 호황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입사하기 몇년전부터 갑자기, 아주 갑자기 상승세를 탄 모양이었다.

 

봉제완구가 원래 일본이 주류였다가, 일본의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한국으로 건너왔고

 

그 뒤 중국으로 넘어간것처럼 말이다.

 

내가 회사에 들어갔을때, 디자인실엔 디자이너가 30명쯤 되었다.

 

개발실이라는 이름 하에, 실장 두명이 관리를 하고있었는데,

 

그중 김실장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전수학교같은 고등학교나와서 아주 작은 무역회사의 개발실 - 당시엔 아마도

 

일본의 완구를 카피하는 일이었겠지 - 에 직원도 몇명안되었었다.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의 바이어들이 일본을 제치고 저마다 한국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갑자기,,아주 갑자기  거대 무역회사로 커져버린것이다.

 

그곳에 20대초반부터 있었던 김실장이 내가 입사했을땐 30대 중반이었다.

 

그 회사는 미주파트,유럽파트, 그리고 국내 내수시장..이렇게 운영하면서

 

엄청나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내가 입사했을땐 대졸신입을 뽑았지만,  그 전부터 앉아있었던 디자이너들은

 

전문대, 고졸출신들이었다,

 

김실장은 북한의 김정일도 울고갈 정도로 좀 그랬다.

 

이 여자의 눈에 잘못찍히면 아주 고달프기도 하거니와,  폭군처럼 군림했다.

 

자신은 30대 중반이 넘어가는,,그리고 결혼도 못하고 있는 스트레스를 디자이너들에게

 

엄청 쏟아냈다.   20대 젊은 디자이너들이 입고온 옷이 탐나면, " 누구야.. 점심시간에

 

나가서 네가 입은 옷이랑 똑같은 거 사와"  이러기도 자주했고

 

또,, 시장에서 단추등 부자재를 구매해오던 미스전이라는 아가씨를 시녀처럼 대했다.

 

미스전은 시장에 가지않은날엔 디자이너들을 도와 일을 하다가, 하도 싹싹하게 김실장의

 

수족노릇을 잘하여  아예 디자인만 하라고 앉혔고, 구매담당아가씨를 새로 뽑기도 했다.

 

미스전은 김실장에게 입속의 혀처럼 굴었고, 점심시간엔 김실장의 반찬심부름도 하는데다가

 

"미스전 커피뽑아와,,미스전,,미스전,,,"을 부를때마다, 항상 웃는 얼굴로 김실장을 대했다.

 

미스전은 정말 내가 보기에도 천사표였다,  일도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작은 키에 종종거리며

 

지하 원단창고며, 샘플실이며, 쇼룸이며, 패턴실이며... 정말이지 꾀한번 안부리고 열심히 일을

 

했다, 

 

나는??  처음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여러 획기적인 개발을 하여 사장 눈에도 띄였지만,

 

쉽게 싫증내는 성격으로 인해,, 적당히,, 적당히 놀며 일을 했다.

 

그런데, 김실장은 디자이너들을 대여섯명씩 묶어 팀장을 하나씩 붙였는데, 그것은 뒤늦게

 

합류한 4년제 출신을 배제하고자함이 엿보였다.

 

그리고 일을 줄때에도 김실장 자신이 일을 나눠줬는데, 아이디어가 좋고, 사장이 눈여겨

 

보는 디자이너들에게는  일부러 영양가없는 일만 주었다.

 

가령, 기존의 완구에 색깔만 바꾸는것이라던가, 싸이즈만 바꾸는것따위들.

 

그리고 약간은 맹하면서 자신에게 간신처럼 구는 사람들에겐 좋은것만 줬었다.

 

개발이 예전과 다르니, 사장은 영업부(직접 바이어들과 상담을 하는) 과장들과

 

디자이너들을 짝지어, 좋은 디자인을 뽑아내려했지만, 김실장은 디자이너들의 자리를

 

돌며 " 야.. 이거 뭐야?"   "이거 김과장님바이어 상담건인데요.."  ",,야..하지마"

 

이렇게 사람을 돌게끔 만들기도 했다.  영업부에서는 전화가 빗발치고, 만들고있으면

 

"내말 안들려 만들지말라고.."   이런식이었다.

 

김실장땜에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속출했다.   결혼식전날에도 정상근무를 시키지않나..

 

그래서 내 후배하나는 겨우 두시간 빨리 퇴근하며(다음날이 결혼식날) 울면서 갔다.

 

어떤 새로온 예쁜후배가 귀걸이를 좀 큰걸 하고왔다고 "..야,,넌 회사에 누구 꼬시려고

 

다니냐? 귀걸이 빼!"   정말이지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고, 명색이 디자인실을 공장화 시키고

 

있었다.. 그 당시 후발업체인 오로라월드는  디자인실이 어땠는가?  언젠가 테레비전에서

 

성공신화에서 나왔는데, 바로 잡힌 모습이었다,  커가는 회사는 뭐가 달라도 다른것이다

 

암튼,, 난 3년 일하고 다른 회사로 옮겼지만, 그 뒤의 그 회사는 사장이 다른 사업에 손을 대면서

 

완구쪽(어차피 사향길이니까) 은 점점 줄여가게되었고,  김실장의 간신노릇을 하던 미스전은

 

김실장을 내 쫓아버리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어느날 하루아침에 손바닥을 뒤집어버린 미스전은

 

아마도 복수의 칼날을 계속 갈고있지않았을까?  이렇게저렇게 우습게보며 하녀취급을 해도

 

항상 웃는 모습이었던, 미스전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때도 있다.

 

미스전은 아직도 그 회사에 남아있다...이젠 전실장이 되어서...

 

모든 완구회사가 중국으로 갔다.  공장이 중국으로 바뀌니, 디자인실도 중국으로 가야했다.

 

미스전은 결혼도 했고, 중국까지 가서 지금까지 의지의 한국인으로 살고있다.

 

 

한 우물을 파야하는것..  이것처럼 중요한게 또 있을까?

 

시작은 미비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처럼.

 

난 너무 많이 중도포기를 했다.  이거는 이래서..저거는 저래서..

 

난 지금 아무것도 아니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