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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BY 박시내 2010-09-29

엄마가 태어나던 해에 외할아버지는 자살을 했다.

 

외할아버지는 서대문쪽 땅을 거의 다 갖고있는 부농의 둘째 아들이다.

 

아들만 둘인 집의 둘째인 외할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다섯을 낳아 기르면서도

 

철이 덜 들었는지, 허구헌날 기방과 술집을 드나들었다.

 

어찌나 돈을 헤프게 쓰는지,  술집에서 집으로 돌아오는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돈들이 땅바닥에

 

줄줄 떨어져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외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이런 자식을 어떻게 바라봐야만 했을까?

 

모든 재산을 큰아들에게 올인해버리는것으로 자식의 버릇을 고치려했던 외증조부.

 

어차피 큰아들에겐 아들이 없었고, 외할아버지의 큰아들이 장손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는 홧김에 자살을 해버린거였다.

 

그리고 얼마안가 외증조부도 죽고,  외할머니 혼자 다섯명의 자식들과 힘들게 살아야만했다.

 

큰아들이 조금 떼어준 재산(초가집 - 그 당시엔 초가집이 대세 - 한채 살 정도의 재산)을 먼 친척에게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빌려준다.  

 

 

큰아들내외(외할아버지의 형과 형수)는 딸만 다섯을 낳았다

 

제일 큰딸은 시골에서 갓 올라온 깡마르고 까만피부의 남자와 결혼을 하는데 일명 데릴사위였다.

 

이 사위의 입담과 재롱(?)이 얼마나 과한지, 장인장모는 열아들 안부러운 사위의 존재였다.

 

서대문일대의 큰 땅을 물려받아 흥청망청쓰는 사위..그러나 입속의 혀처럼 구는 사위에게

 

장인장모는 할 말을 잃을 뿐이었다.

 

푸줏간의 고기가 떨어져도 이 집엔 고기가 썩어나간다는 소리...

 

어느새 깡마르고 까만 시골뜨기는  얼굴에 개기름이 철철 흐르는 돼지가 되어버린다.

 

 

외할아버지의 장남을 양자로 들이라는 외증조부의 명령에도 꿈쩍안하던 두 내외.

 

그 곁엔 간신처럼 구는 사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많고 많은 전답과 재산은 아마도 사위가 늙기 전에 몽땅 다 없어져버렸다는 후문이 있다.

 

 

외할아버지가 자살하고 나서부터  이집의 장손이며, 나의 큰 외삼촌은 비뚤어지기시작한다.

 

항상 술에 쩔어, 집에 돌아오면 마누라부터 잡고, 눈에 띄는 사람들을 들들 볶는다

 

그때 함께 살았던 엄마는 어렸을때의 기억은 가슴두근거림이었다고 한다.

 

저 멀리서 오빠가 나타나면 친구들이 "야..야..네 오라버니 오고있다.." 하면 얼른 집으로

 

뛰어들가 방 한구석에 찌그러져있어야만 했다.

 

오죽하면, 한국전쟁때  비행기에서 폭격이 시작되는데도 외숙모는 마당에서 계속 절구를 찧고

 

있었다고한다.  

 

"나좀 죽여라... 살기 지긋지긋하니,,나좀 쏘고가라..."

 

얼마후 폭격파편에 옆구리를 심하게 맞은 외숙모는 내장이 다 쏟아져나왔다.

 

 

엄마는 공부를 잘했다. 

 

집은 가난해서, 그리고 왜 가난할수밖에 없는지 알아서 슬퍼도, 학교만 가면 우등생으로 치켜올림을 받으니

 

학교만 가면 행복했다.    일제식민세대,, 차라리 엄마는 일본인을에게 더 많은 위안을 받았으리라.

 

 

한국전쟁중 피란갔다가 돌아오니, 엄마네 집은 그 새 색시집으로 쓰여졌다고한다.

 

어느저녁 외할머니와  작은 외삼촌,그리고 엄마 이렇게 셋이  방에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미군세명이 엄마를 가리키며,,"헤이, 색시!  헤이 캄온.."

 

할머니는 울부짖으며 엄마를 반대편 방문으로 도망가라며 악을 쓰고  외삼촌역시 일어나서 미군들을

 

저지한다.   그 와중에 영문을 모르던 ( 항상 색시들이 대기하던 곳 아니었나? ) 미군중에 한명이 권총을

 

꺼내  손잡이로 외삼촌의 머리를 강타하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순이야..도망가...도망가..."

 

엄마는 숨이 멎을것같은 고통속에  산을 올라갔다.  손톱에 흙이 끼고, 자꾸만 다리는 후들거리고,

 

등뒤에선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낚아챌것만같은 공포감,,,,

 

그 산 꼭대기엔  거지내외가 살고있는 움막이 하나 있었다.   그 내외는 정신지체자였다.

 

이제 밤이 되어 온 산이 적막하고 컴컴하니 무서움이 몸안으로 스며드는듯했다.

 

엄마는 움막안으로 들어갔다.  거지내외는 낯선사람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힐끔 보고는 아무일도

 

없는듯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엄마는 최대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이대로 날이 새기만을 기다릴뿐이었다.

 

 

아침에 집으로 내려가니, 외삼촌은 머리를 붕대로 칭칭 감고 있고,  좀있으면 미군부대에서 범인을 찾아내

 

겠다고 했다.    외삼촌은 스무명넘게 죽~서있는 병사들중에 어젯밤에 들이닥친 세명의 병사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서양인, 그것도 머리를 똑같이 자르고, 똑같은 군복을 입고있으니, 외삼촌눈엔 스무명넘게

 

서있는 저 병사들이 하나같이 똑같게 생겨보였지싶다.

 

미군부대에서는 미안하는말과함께 외삼촌을 하우스보이로 취직을 시킨다.

 

 

그후 종전이 되고도 엄마와 외삼촌은 이 일로 후유증을 앓게된다.

 

엄마는 가슴떨림과 만성 불안증등등(아마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아닐까)

 

외삼촌은 위생병원에 몇달씩 입원퇴원을 반복하며 세월을 보낸다.  신경정신과에..

 

 

할머니는 전쟁중에 엄마를 시집을 보낸다.  전쟁이 언제끝이 날지도 모르고 처녀귀신은 면해야한다며...

 

엄마는 친한친구의 사촌오빠인 아버지와 결혼을 한다. 

 

이 친한친구가 누구냐... 바로  내 큰할아버지의 첫번째 첩이 낳은 딸이다.

 

부잣집친구네를 자주 놀러갔던 엄마는 방하나를 빌려쓰고있는 친구의 사촌오빠를 흠모하지않았을까?

 

가끔 호떡도 사주고, 말도 별로 없고.  미스테리한 오빠였지않았을까?

 

"우리 사촌오빠네도 잘 살아,, 작은아버지? 한국은행에 다니셔..."

 

친구의 말은 거짓이었다..하긴 한국은행에 다니시긴하지...뒷문에서 '신기료.....' 하며 구두수선하셨으니..

 

 

엄마는 결혼을 하고 큰엄마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새색시가 신혼때 듣기엔 거북스러움을 넘는 수위아니었을까?

 

"삼촌말야, 결혼하기전에 연상의 여인 사귄거 알아?  요~밑에 골목쟁이께에 살았더랬어..

 

저녁쯤해서 내다보면, 삼촌이 셈베이랑 오꼬시같은거 한아름 안고는 고 골목으로 쏙~ 들어가고 쏙~들어가고

 

했었지.. 얼마나 헐레벌떡 들어가던지.. ㅎㅎ"

 

큰엄마는 왠 심통이었을까?  그러면서..계속

 

"근데 삼촌이 공무원 아가씨랑 사귀게 되면서 그 연상의 여인을 멀리했지뭐야.. 어떻게 된줄 알아?

 

그 여자들끼리 만나 머리끄댕이 잡게 생겼대지?  연상의 여인이 뱃속에 배게같은거 넣고 나가서 '이 아이를

 

어떻게 할거냐고 소리지르고 했다지 아마?"

 

 

엄마에겐  미군들이 들이닥쳐 산으로 동망갔을때의 그 공포비슷한 또 다른 감정을 맛보았을것이다.

 

별 말이 없고, 무뚝뚝한 남편이 엄마는 첫사랑을 못잊는거라 평생을 생각하며 보낸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지극정성이었다. 

 

나 역시 결혼을 하여 살림을 하지만 엄마처럼 남편에게 하지못한다..아니 안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버지는 반찬이 입에 안맞으면 밥에 물을 말아 김치하나에 드신다.

 

그런 세세한 행동하나하나에 엄마는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볶았다.

 

'내가 맘에 안들어서...'     평생을 그랬다.

 

난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하긴 같은 사람이 아니니까, 너무 당연하지만, 난 그렇게 살지않는다.

 

'넌 그래,,난 이럴테니..'    이렇게 맘을 먹을수없었나??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키우게되고, 그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난게 아니었는가...

 

 

다음글은 톡하우에 실은 글이다...

 

모든 사람들은 아마도 '엄마'라는 소리만 들어도 눈시울이 붉어진다던가,


 콧등이 시큰하다던가, 할것이다.  이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들인가..


 나에게도 엄마는 있다.  너무나 무서운 엄마다.


 아무리 흡혈귀영화를 보아도, 에버랜드에서 독수리요새를 타보아도, 난 내


 엄마를 생각하면 이런 공포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호러 그자체다.


 이 생각은 엄마가 낳은 다섯명의 자식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으니 문제인것

 

이다. 


 엄마는 태어나자마자 외할아버지를 여의였다.  외할머니는 34세에 청상이


 되어서 6명의 자식을 키워야만했고 집은 늘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 현실이 싫어 공부를 열심히 하였으나 겨우 소학교밖에 나올 수가 없었다


 먹고사는게 더 힘들었기때문이었다. 욕심이 많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


 는게 화가난 엄마는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으리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


 며 엄마는 자식들한테 자신의 대리만족을 심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공부


 를 많이 못한걸 자식한테 강요했다. 그 자식이 장남이었다. 장남은 태생이


 그렇게 머리가 좋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는 장남을 다그치고.


 치마바람으로 학교를 오가며, 자신을 그렇게 투영하고 있었다.


 하루는 숙제를 하던 장남이 글씨를 엉망으로 쓰자 엄마는 공책을 찢어버린


 다, "다시 써!"  그래도 글씨가 바로잡아지지않자. 때리며 "다시 써"를


 반복하다가 결국 연필깎던 칼로 8살어린 장남의 손등을 찍어버린다.


 그 장남의 나이가 어언 환갑을 바라보게 되었고 아직도 손등엔 번데기만한


 상처가 나 있다.   그 어린 여덟살 꼬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순간


 생존을 위협받을만한 충격을 받았으며, 엄마라는 존재가 이미 엄마의 따듯


 한 품이 더이상 아니었을것이다.  그 후  이 장남은 엄마가 너무 무서워


 열심히 공부를 했고 엄마의 바람보다는 낮게, 그러나 사회통념상 아주 근사


 하게 잘 살게된다....


 

엄마의 엽기는 계속된다.  장남이 고등학생이 되었을때 그 당시 만연했던


 결핵에 걸리게 되고 일년동안을 집에서 휴학을 하면서 쉬게된다. 그때 남동


 생이 학교앞에서 노란병아리를 사갖고오게되고, 장남은 그 병아리를 애지중


 지 키운다.  결핵은 전염성이 높기땜에 사실, 식구들과도 밥도 따로먹었어


 야했고, 친구도 못만나고, 얼마나 외로왔겠는가... 학교앞에서 산 병아리는


 장남의 지극정성으로 커다란 수컷 닭이 되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마당에서 "꼬꼬꼬"하며 뛰어가는 장남..그 뒤를 종종종 따라


 가는 닭.. 참 예쁜 그림 아닌가... 그런데 어느날 엄마는 장남더러 그 닭을


 잡으라고 명령한다.  져녁에 먹어야한다며... 장남은 이미 엄마의 명령엔


 아무 토를 달 수가 없는 아들이었다. 부엌칼을 들고 닭을 끌고 뒷마당 수돗


 가로 간 장남은 칼로 닭의 목을 찌르고 또 찌른다..그렇지만 닭은 계속 퍼


 드득 할뿐 숨이 넘어가질 않는다.  이걸 지켜보던 엄마는 소리지른다.


 "이 곰같은 놈아, 목을 찌르면 죽냐? 목을 제치고 튀어나온 가슴팍을 찔러


 야지!!"  이렇게 잡은 닭은 저녁에 상위에 올라왔다. 노랗게 뽀얀국물이 두


 대접 나왔고, 하나는 아버지가 하나는 장남이 먹게된다. 그리고 나머지 퍼


 석퍼석한 고기는 그 외 식구들이 먹었다.


 

엄마는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더더욱 자식들한테 올인을 하게된다.


 하긴 내가 기억하건데 정성을 쏟아부운 자식은 장남 하나밖에 없는듯하다


 새벽마다 장독대위에 물한대접 올려놓고 치성을 드린다거나, 모든 꿈의 길


 흉은 장남의 일거수일투족을 의미한다거나. 그렇게 부유하지않았지만 엄마


 는 서울 내놓아라하는 과외를 알아봐서 과외를 시키며 저녁엔 도시락까지


 싸서 나르기까지 했다.  이렇게 할 수있었던 뒤엔 34세에 청상이 되신 외할


 머니가 있었다.  외할머니는 한달이면 반 이상을 우리집에 머물며 집안의


 허드레일을 다 했다.  애도 보고, 김치도 담그고, 빨래 청소,, 그 덕에 엄


 마는 잘 차려입고 학교치맛바람을 할 수가 있었다. 장남 밑으로 장녀가 있


 었다.  장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참 예뻣다고 한다.  별로 감정표현이 없던


 아버지는 둘째로 딸이 태어나자 너무나 좋아서 항상 무등을 태워 뒤산으로


 올라가곤 했다.  그때부터였나..엄마는 장녀를 싫어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에쁘다고 하니, 그 말은 듣기좋아, 양장점에서 옷도 맞춰입히고, 갖


 은 악세사리로 치장하여 데리고 다니곤 했다. 그러나 장녀는 엄마에게있어


 그저 예쁜 악세사리였다.  내 기억속엔 엄마는 항상 장녀를 미워했다. 항상


 때리고, 악쓰고. 악담을 했다.  장녀밑으로 차남이 있다. 차남은 아주 잘


 생긴 머스마였다.  엄마는 자신을 많이 닮았다며 굉장히 예뻐라했다.


 장남은 이미 엄마가 공포의 대상이었기땜에 항상 방구석에 찌그러져서 무표


 한모습으로 공부만 했고, 엄마는 이 살같지않은 장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하였다.그에비해 차남은 항상 웃고 떠들고 쾌활하고 거기다가 잘생기기까


 지하여, 굉장히 좋아했다.  장녀와 차남은 채 두살터울도 안되었다. 너무


 일찍 동생을 보게된 장녀는 엄마의 정이 그리웠을터인데 엄마의 사랑은 차


 남에게로만 가 있으니 당연 장녀와 차남은 눈만 마주치면 싸우게된다.


 엄마는 당연 차남편을 들고, 항상 맞는 사람은 장녀였다. 엄마는 싸움을 말


 릴때에도 부엌에서 칼을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자신의 배에 칼을 들이밀


 고  눈을 부릅뜨고, 아렛입술을 깨물며 악을 쓴다. 죽어버리겠다고..


 그 액션이 너무 리얼해서, 장녀는 마당으로 도망가고, 차남은 벽에 기대 울


 고 그 밑의 두 동생도 소리를 참아가며 울 수밖에 없다. 나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있지만 아이들끼리 사소하게 싸우는게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일이 아


 닌가?  물론 큰소리로 싸울때도, 어떨땐 육탄공격도 해가며, 소란스럽긴 하


 지만, 그럴때마다 난 그저 내버려둔다.  절대로 싸움이 길게 안간다.


 어른들의 싸움처럼 뒤끝이 있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공포분위


 기를 조성하곤했다. 


 

 

엄마는 어디를 외출을 하게되면 장녀와 차남에게 그 당시 유행하던 아주 근


 사한 옷차림으로 꾸미고는 당당한 모습으로 나가곤했다.  거기에 끼고 싶은


 밑의 동생들은 울며 메달려보기도, 떼를 써보기도. 삐쳐보기도..하지만 엄


 마는 자신의 악세사리가 후진걸 용납하지않았다.


 차남밑으로 3남이 태어난다. 3남은 아주 순하디순한 순둥이었다. 실은 엄마


 가 차남밑으로는 절대 아이를 낳지않으려고 계속 낙태수술을 하다가 생긴


 아이였다. 뱃속의 아이를 지우려고 간장을 들이켰다고했다. 그래서 태어난


 3남이었고, 목도 늦게 가누고,말도 더디게 하고, 7세가 되어도 바지에 응가


를 해서 윗형제들한테 엄청 놀림감이 되곤했다.  3남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


을수밖에 없던 엄마는 유독 3남을 아꼈다. 3남은 머리가 좋았다. 책읽는것


 을 유난히 좋아했고, 학교에 들어가며 계속 전교일등을 하게된다. 이것은


 엄마가 장남한테 그렇게도 바라고바랬던 일이었다.  3남은 글씨도 잘썼으며


 과외한번 안시켜도 공부도 잘하고, 형제들과 시비한번 붙은적도 없고,그야


 말로 있는듯없는듯한 존재이면서도 엄마의 바램을 백프로 실현해준 아들이


 었다.  3남이 중학교를 전교수석으로 입학을 하고 엄마는 기분이 너무좋아


 엄청난 양의 김밥을 만들어 교무실을 찾아가던 날이 기억난다. 김밥을 말며


 흥분된 감정을 숨기지못해 콧노래까지 부르며, 얼굴근육까지 실룩거렸던 그


 상황이..... 낳기싫어서 간장까지 들이켰는데 그 아이가 이렇게 내맘에 쏙


 들줄이야...했을것이다... 엄마는 3남밑으로 차녀를 또 낳게 된다.


 엄마는 3남을 낳고 계속 임신이 되고, 계속 낙태를 하게된다. 차녀를 가진


 엄마는 또 병원을 찾지만 의사는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너무 잦은


 수술로 인해 자궁벽에 기스가 많고, 또다시 수술을 하면 자궁에 천공이 생


 긴다고 했다... 엄마는 낙담을 하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잦은

 

임신과 낙태로 인해 결국 임신중독증에 걸리고 산달 한달전에 자궁이 파열


 되면서 병원으로 실려가 제왕절개로 차녀를 낳게된다. 그러면서 자궁도 들


 어내게 되면서 엄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해지기시작한다.


 엄마는 너무나 예민해지기시작한다.  너무나 욕심이 많았고, 자신의 힘으로


 그리고 자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안되는것또한 되게끔 하려고 했지만 자꾸


 만 어긋나는 모든게 끔찍하게 싫었나보다. 


 

 

장남은, 엄마가 그렇게도 열망하던 서울대를 떨어지고 지방대학으로 가버린


 다.  그 곳에서 여자를 사귀고 임신을 시키고 서둘러 결혼을 해버린다.


 그건 통보였다.  '내가 임신시킨 여자가 있다. 이로 인해 나를 안볼꺼면


 나 또한 그럴 의향이 있으니 한국 어딘가 아들하나 살고 있다는것만 알고


 계시라'는 짧은 편지를 엄마에게 보낸다.  엄마의 절망의 시작을 알리는


 첫 단추였다.  아들을 잃기싫은 엄마는 부랴부랴 아들과 임신5개월의 낯선


 처자를 불러올려 다독이며 결혼을 시킨다.  장남은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그 뒤로 일년에 두번정도만 부모를 보러왔다. 딱 거기까지였다. 자


 신의 할 일은... 집에 와도 식사할때만 부모를 봤다. 그외엔 방에 쳐박혀


 그 옛날 방 한구석에 찌그러져 공부만 하던 그 모습으로....장남에게 있을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참 안된부분도 있다. 엄마는 장남이 서울대에 가야한


 다며 아주 어렸을때부터 주입을 시켰다. 장남은 머리가 썩 좋지않았지만 나


 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알았을터... 서울대시험을


 보러간날... 시험지를 받았는데 백지로 보였다고한다. 너무 당황스럽고 너


 무 과중한 압박감과. 엄마의 기대감과, 이런것들로 인해 시험지가 백지로


 보였을터이다.  엄마는 그날 꿈에 마루유리창이 와르르무너져 깨지는 꿈을


 꿨다고 했다.  장남은 일찌감치 부모와의 인연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아니.


 이 정리는 아마도 손등을 칼로 찍혀던 8살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장녀는 벼락공부로 명문여대를 들어간다. 여전히 예뻣던 장녀는 메


 이 퀸후보로 오를만했다. 꽃에 나비가 꼬이듯 장녀를 만나려는 남자들이 학


 교 정문후문에 장사진을 치고, 장녀의 귀가시간은 항상 늦었다. 이때쯤부터


였나..  엄마는 장녀를 '시앗'으로 보기시작한게.....딸의 귀가가 늦고 남


 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지면 당연 엄마의 불안과 조심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당시 장녀에게 퍼부운 온갖 악담과 저주는 딸을 위해서, 내지는 딸을 염


 려해서..가 아닌 그야말로 학대였다.  장녀는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3학년


 때 그만두고 스튜어디스가 된다.  대학을 다니면서 옷 한벌로 입고다니고,


 항상 돈이 없어 힘들었기때문이다.  엄마는 딸 둘을 키우면서 굉장히 인색


 했다..자신을 위해서는 비싼 화장품과, 비싼 마담용 기성복을 철철히 사입


 어도 딸들을 잘 가꿔주지않았다.  장녀가 자신의 악세사리였던 그 시절에만


 가꿔주었지만..... 차녀는 엄마가 가장 증오하는 자신의 시어머니와 닮게


 태어났다. 차녀를 낳으면서 자궁도 없애야했고. 더더군다나 생긴건 시어머


 니와 닮았고.. 그러니 자연 차녀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가 없다. 차녀는 자


 라면서 자신이 태어난게 그저 죄송할따름이었다. 엄마는 말귀를 알아듣던


 말던 차녀를 붙들고, 해야할말안해야할말을 가리지않고 쏟아냈다. '너는 왜


 태어났니', '너를 안낳으려고 병원에 갔지만 의사새끼가 수술을 안해주는


 바람에....'   어린 차녀는 다섯번째로, 그것도 진짜 원하지 않은 가정에


 태어난 내 자신이 그저 미안해야하나보다...했다. 


 

그렇게도 치맛바람으로 학교문턱이 닳도록 뛰어다녔던 장남과 달리 차녀는


항상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야!, 학교에 가면 제일 구석에 앉았


 다가 와! 괜히 손들고 발표같은거 하지도 말고.. 선생한테 튀고 그러면 괜


 히 와이로바란다!"   엄마는 차녀의 초등학교 입학식날에도 같이 가주지 않
 

았다.   차녀가 5학년이 되었을때 인근에 새로 국민학교가 생기면서 그 국


 민학교 인근에 사는 아이들을 일괄적으로 전학을 시키는일이 벌어졌다.


 많은 엄마들이 교무실로 찾아와서는 '이제 얼마안있으면 졸업인데 이제 전


 학시키기 싫습니다'  이 한마디만 하면 전학을 안시켰었다.  차녀 또한 집


 에 와서 엄마한테 부탁을 했다. 한번만 교무실에 와서 말해달라고....하지


 만 엄마는 싸늘하기 짝이없었다."왜 귀찮게 하는데? 국민학교 그까짖거 아


 무데나 다니면 어때?"  차녀는 전학을 갔다.


 

엄마의 꿈나무였던 3남은 고등학교에서도 공부를 척척 잘 했고,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 아니면 책을 보았다. 어찌나 잡독을 하는지 온세상에 모


 르는게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3남은 항상 엄마앞에서 자기가 아는 지식을


 하나둘씩 말을 해주었고, 엄마는 너무나 흐믓했다.  3남은 대학역시 일류대


 를 들어간다. 비록 서울대는 아니지만 과외한번 학원한번 안다니고 혼자 공


 부해서 들어간 대학이니 더 값진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영기업체에 들


 어간 3남은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회사근처의 다방마담을 사귀게 된다.


 엄마의 실망은 거의 하늘이 무너지는 그 자체였다.  장남의 일만해도비록


 지나간일이지만 썩 내키지않았던 일이었지만 살갖지도않고. 내성적인 장남


 에 비해 눈에 넣어도 안아플 3남이 여시같은거한테 꼬임을 받은게 틀림이


 없다생각한 엄마는 갖은  노력으로 둘을 떼어놓으려고 하지만 결국 둘의 사


 랑은 부모참석없이 자기네들끼리 결혼식을 하게 된다. 단 한번도 엄마의 말


 에 토씨하나 붙인적없고, 부모의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아들이 하루


 아침에 너무나 써늘하게 변한것이다. 둘을 떼어놓으려고 아들을 정신병원에


 까지 입원시키기도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여자 아니면 다신 이런여자를 못만난다며 그렇게도 난리를 치던 3남은


 나이 50이 넘은 지금,,너무 최악이다.  씀씀이가 헤푼 여자는 공기업생활


 이십몇년에 빚만 수두룩이고, 과거 정신병원 기록이 있는 3남은 승진도 안


 된다. 


 

명랑 쾌할하던 차남은 항상 정신세계에서 방황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어


 느날 갑자기 머리깎고 스님이 되어버렸다. 


 

장녀는 힘들게 스튜어디스하며 모든 월급을 엄마에게 주었지만 엄마는 아무


 런 말없이 그 돈을 다 써버렸으며, 그 뒤로 장녀는 외국인회사에 취직하여


 벌어모은 통장까지 엄마는 뺏어버린다.  둘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닫고 급기


 야 장녀는 도피성 결혼을 해버린다.  그건 바로 외국으로 가버리는것이다.


 장녀는 외국에서 결혼생활을 일년밖에 못하고 결국 이혼을 하게된다. 애정


 없는 결혼이 온전한 결혼이던가?!  장녀는 다시는 한국땅을 안 밟겠다며


 꿋꿋하게 외국생활을 하고있다.   그렇다면 차녀는?  모든 형제들이 떠나버


 린 부모,, 엄마의 정신병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다. 정신병자는 하루 24


 시간 난리를 쳐야만 진정한 정신병자인줄로 알았던 그당시 차녀는 엄마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할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하루의 80퍼센트는 극히 정상적 

 

고 20퍼센트만 굉장히 이상했기때문이었다. 엄마는 사군자를 배우러 문화


 센터도 열심히 다녔고, 수영장도 다니고, 하루중 한시간 이상 신문을 읽고


 일본판 문예춘추를 구독하였고. 마당에서 화초도 가꾸고.  살림도 깔끔하게


 하였으니까......그러면서도 정신적으로 이해할 수없는 발작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행동을 너무나 이론적으로 합리화를 시키기때문에 이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없었다. 예를들어. 아버지에게 17살어


 동생이 있다.  우리가 삼촌이라고 부르고 아버지의 친동생이다. 아버지는


 이 삼촌을 대학공부도 시켰고, 둘의 친분이 좋았다. 삼촌역시 아버지의 생

 

일때나 명절이되면 집에 방문을 햇고, 아버지는 사촌또한 예뻐라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그 누구에게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것을 극도로 싫어했


 다.   딸들을 아버지의 시앗으로 보던 엄마인데 더한말도 필요없는것이다.


 어느날 삼촌이 다녀간날.. 아버지는 사촌아이를 무등을 태우고 참으로 행복


 한 얼굴이었다.  삼촌이 가고나서 엄마는 발작을 일으켰다.  '네가 언제 네


 자식한테 그래봤냐..'부터 시작해서 온갖 욕설과. 삼촌이 사갖고온 식용유


 두 통을 방에다 다 뿌려버렸다. 천장이며 벽이며 식용유가 흘러내리는데 저


 게 만약 빨간색이었다면 진짜 공포영화의 포스터감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분이 안풀린엄마는 "야..걔말야 네 동생이 아니지? 네 에미랑 너


 랑 붙어먹은 아들이지?'  악을악을 쓰면서 발악을 하던엄마.....난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를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다.  이 사람이 내 엄마라는 그 자


 체가 싫다.  나 또한 50가까이 살면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고, 돈까지 벌어


 야했으므로 온갖 이상스런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집에서 화초처럼 살림만

 

하던 엄마의 극단적인 상스러움과 엽기적인모습과, 정신병적인 모습들을 난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니 안할것이다. 


 엄마에겐 말대꾸란게 존재하지않는다.  아무리 엄한소리를 해대도 절대로


 말대꾸를 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바로 뒤집어지기때문이다. 온갖 악담과


 저주를 30분정도 퍼부우면 나름대로 화가 풀리는 엄마에게 말대꾸를 잘못


 했다가는 그게 3시간,,아니 3일,. 3주가 가기때문이다.  차녀가 중학생이엇


 을때 한창 예민해져있을때 엄마는 차녀에게 온갖 악담과 인신공격을 퍼부었


 다   엄마의 취미생활이 남을 헐뜯고 비웃고 빈정대고 업신여기는것이다


 그게 자식이어도 상관이없는것이다.."너는 얼굴에서 이마밖에 볼데가 없다.


 이빨은 괴물이빨로 튀어나와서 누가 널 데려가겠냐.. 네 다리가 굵냐구?


 후후...네 키에 굵은건 아니지 짧은게 문제지...안그래?" 항상 이런식이었


 다... 어느날 너무 화가 나서 몇마디 대꾸를 했더니 "어디서 말대꾸야!..


 네년 입을 찢어버리겠다!!"  하며 진짜로 두둘겨패면서 입에 손가락을 넣으


 며 찢는게 아닌가..............


 

아버지는 엄마의 그 집요함에 질려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대꾸조차도 하지


않고 그저 피해다닌다. 그러다가 빈방에 들어가 문을 잠궈버리면 여지없이


 부엌에서 칼을 들고나와 방문을 찍기 시작한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


 이 장면이 영화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진다해도 무서울것인데 내 집 안에서


 벌어지는걸 상상해보라.......엄마는 열차례 스무차례.. 계속해서 한군데를


 집중적으로 칼을 내리찍어 결국 구멍을 내고만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화가난다며 냉장고위에 진열했었던 양주병 열개를 몽땅 마당으로 던져 깨


 뜨리고, 냄비를 잡고 싱크대에 내리치는데 보통사람들은 아주많이 화가나도


 한번정도 내리칠때도 있다...엄마는 수십번을 내리친다. 그리고나서는 자신


 이 이렇게 화가 날 수밖에없는 상황을 아주 근사하게 합리화를 시킨다.


 장녀가 외국으로 도피하듯 차녀또한 도피하듯 결혼을 한다.  엄마는 마지막

 

남은 자식을 잃기 싫었는지 결혼을 시키려들지를 않았다. "야!결혼하면 뭐


 그렇게 좋은줄 아냐? 그냥 혼자 사는게 좋은거야" 입버릇처럼 했다


 매일 저녁만 되면 엄마는 과거의 일을 하나씩 꺼내가며 아버지를 들들 볶기


 시작한다.  그 옛날 엄마는 가난한 친정을 도우며 살았었다. 외할머니가 집


 에 와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때 김치며 쌀이며 돈이며 보냈다. 이 상황


 이 아버지한텐 무척 신경쓰이고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외할


 머니를 식모이상으로 부려먹었다. 그리고는 같이 마주앉아 수다떠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엄마한테 외할머니는 그저 소처럼 일만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차녀는 이상해서 "엄마는 왜 할머니랑 얘기를 안해?"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야.. 무식한 노인네랑 말이 통하냐?"  엄마는 안방에서 일본


월간지를 보고있고 할머니는 건넌방에서 우두커니 앉았는 장면이 정지된 화


 면처럼 기억되곤한다.  외할머니는 90이 다되어 이제 기력이 없어지자 가난


 한 외삼촌댁으로 들어갔고 얼마안되어 할머니가 돌아가실것같다는 기별을


 받고 엄마는 외삼촌댁으로 갔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민폐끼치


 싫다며 요강에 억지로 혼자 앉아 볼일을 보고 그 다음날 돌아가셨다고한다.


 

 


장례를 치루고나서 엄마는 그 뒤로 단 한번도 외할머니의 산소에 간적이 없


 었다.  평생을 식모처럼 부려만 먹은 자신의 엄마를 그렇게 보낸여자....

 

엄마는 차녀가 애기를 낳을때에도 곁에 없었다.  병원조차 안왔을뿐만아니


 라, 아이 얼굴조차 보고싶어하지않았다.."난, 애를 다섯이나 키웠어.생각


 만 해도 지긋지긋해..그런데 내가 애를 좋아할것같냐?"  차녀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혼자서 애를 돌보며 몸을 추스리며 너무나 슬펐다. 남편역시


 내집에서 이쁨받는 강아지, 남들도 예뻐한다'라는 속담처럼 차녀를 보는


 시선이 달갑지가 않았다. '흥,,너 네집에서 홀대받냐? 그러면 나 역시 너


 를 대우 못해주지...' 하는 심보가 엿보였다.  차녀가 둘째를 낳으러갈때


 에도 만삭에 운전을 해서 병원에 입원해서 아이를 낳았으며, 큰애까지 병


 원에 데리고 있으면서 몸조리를 해야만했다. 차녀는 그 상황에서 몸이 아


 프다는둥, 뭐가 어쨋다는둥.그런 배부른 소리를 할 상황이 못되었었다.


 남들은 시어머니가 해준다, 친정어머니가 해준다 서로 싸울지경이라는둥의


 호강스런 말을 하는데 차녀는 항상 혼자였다.  그 당시 엄마는 장미묘목을


 사러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다녔으며, 아버지와 해외여행에 필이 꽂혀서 동


 유럽 서유럽 호주 뉴질랜드로 돌아다녔으나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면서 어느날 큰애를 낳고 20일쯤 되었을때 느닷없이 전화를 하더니


 "야.. 우리가 내일 제주도에 놀러갈거니까 내일 아침에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집이나 봐라"   차녀는 핏덩이를 데리고 집을 봐야만했다.


 엄마는 늘 롯데백화점 본점엘 다니면서 화장품, 옷, 식료품등을 사면서 세


 월을 보냈다.  어느날 애기를 데리고 친정엘 갔는데 아기 우유가 똑 떨어


 진거다. 아기가 울고 보채는데 냉장고에 있던 우유를 꺼내며 "엄마 이거 아


 기 먹여도될까?"  했더니 소리를 지른다. " 야.. 난 롯데에서 산 우유외엔


 먹으면 설사해..빨리 뛰어나가서 사다 먹여!" 하는게 아닌가..


 

 


 이런 엄마가 치매가 걸렸다. 정신병이 치매로 간것이다. 이젠 기억도 못하


 고 걷지도 못한다.  침대에 누워 기저귀를 차고 대소변을 치워줘야하고, 세


 끼를 먹여줘야한다.  치매에 걸리면 본능만 남는다고 한다. 하루종일 얼굴


 을 찡그리고 계속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저주하고 "어떻하면 좋냐"만 반복


 한다. 테레비젼에 사람이 비춰도 " 저저..저 년  미친년아냐.." 또는 "저


 새끼는 왜 저렇게 생겼냐.."  하며 계속 욕만한다.


 위로 다 떠난 형제들.. 차녀는 아이들까지 데리고 이 집으로 이사를 들어


 온다.  엄마를 봉양하기 위해서다.  죽기보다 싫어서 그래서 이 집을 탈출


 하기 위해서 맘에도 안맞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파란만장하게 살았는데 그


 런 이집을 이제 자식들까지 데리고 들어와야만했다. 아버지가 불쌍했다.


 엄마가 지금은 저렇게 누워있게 되었지만 몇년동안은 미쳐날뛰며 집을 뛰


 쳐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세월을 아버지 혼자 감당해야만 했었다.


 

아버지는 장남에게 SOS를 했지만.."난 자식으로서 인연을 끊었습니다"


 차녀는 자식들한테 가장 미안한 마음을 갖고있다. 남편이 무능력하여 자식


 들한테 잘해준것도 없었고. 파란만장한 가운데 별거도 경험했으며 그럴때


 마다 차녀는 아이들한테 죄짓는마음뿐이었다.  이런가운데 아이들은 너무나


 바르게 자라주었다.  이런보상조차 없었다면 차녀는 이 생을 계속 살아갈


 아무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차녀가 20대였을때 다리가 부러져 응급실로 실려가 6시간의 대수술을 받
 

을때에도 찻길건너가 집이었던 엄마는 병원에도 안왔었다. 퇴원을 하고 집


 에서도 목발을 짚고 있었을때 차녀의 속옷조차 빨아준적도 없거니와 구박도


 그런 구박이없었다... 아버지가 75세에 대장암이 걸려 수술을 했을때에도


 눈하나 껌뻑이지 않았던 엄마...도리어 "야.. 기계도 쓸만큼 썼으면 고장이


 나는법이야.. "이러면서 아버지가 입원한 병실조차 가기싫어했다.


 

 

그런 엄마가 지금은 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과 차녀의 보살핌으로 나날이


 건강해지고 있다. 이 건강함은 육체의 건강함이다. 이제 뇌는 인지능력이


 제로이고 아무도 못알아보고, 낱말의 뜻과 이해를 하지못해 대화불가인데


 육체적으로는 밭일도 나갈 수있을정도이다. 이젠 자신의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손을 만지며 '이게 뭐지?'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이 지경까지 왔다.


 과거없는 현재는 있을 수가 없다. 엄마를 불쌍하게 바라봐지질않는다


 

 

그 옛날 엄마한테 단 한번이라도 대들어본적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억울하지

 

않을것이다.  그땐 내가 너무 비겁해서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감히 말 한마


 디도 못해서, 쌓인게 너무 많은데 지금은 엄마가 제정신이 아닌것이다.


 왜 그랬냐구, 날 왜 그렇게 힘들게 했냐고, 너무 외로왔었노라고..부르짖어


 보고싶지만, 이 말을 할 대상이 없는거랑 똑같아진것이다


 이 현실이 언제 끝이 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해서 멀쩡하게 살아있는 두


 노인네더러 얼른 죽으라고 할 수는 없는것아닌가..


 너무 힘이 들어 장남과 차남과 3남과 장녀에게 얘기를 해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다. "너,힘들면 나와. 누가 너더러 거기 들어가서 노인네 치닥


 거리 하라고 시켰냐?  우리는 하기 싫어, 너도 하기 싫으면 나오면 되는거


야..."


 

 


 

 


 

엄마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엄마가 불쌍하다고 연민을 가졌던적도 있었다.

 

하지만,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였던가?

 

내가 살기 빡빡해지니, 자꾸만 억울한 감정이 드는건,,당연한 일아니겠는가.

 

같은 여자로서의 엄마는 이해해도  엄마로서의 엄마는 이해하기가 싫은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