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촌 언니 희야...
한번도 언니라 불러 본 적 없는 동갑내기 사촌이자 단짝같던 친구.
큰 집엔 형제들이 많았다. 여자 형제 여섯에 오빠 하나.
언니 셋 다음으로 희야, 그리고 밑으로 여동생 둘이 있었는데 그 중 희야가 제일 순둥이었다.
큰언니는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동생들을 관리하는 건 둘째 언니 몫,
셋째 언니는 괄괄한 성격에 둘째언니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두 동생은 어리다고 열외.
항상 모두들 불러제끼는 건 희야다.
심부름도 희야 몫이고 혼나는 것도 희야가 대부분...
참 억울하겠다 싶은데 오히려 희야는 담담했다.
그런 희야가 나를 언니라 불렀었다.
내가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학년이 더 높았기때문에 당연히 내가 언니인줄 알았다.
누구도 누가 언니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
매년 명절과 방학때면 시골집에서 몇 일씩 보냈었다.
깜깜한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은 당장이라도 쏟아질듯하여 무섭기까지 했다.
여름 밤이면 평상위에 누워 쑥타는 냄새를 맡으며 두런두런 얘기 소리에 잠들던 기억..
외양간에 붙어있던 재래식 화장실을 가지 못해 몇 일씩 볼 일도 못보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면 희야가 문 앞까지 따라가서 보초를 서주었고
추운 겨울엔 아궁이 무쇠솥에서 밤새도록 끓던 뜨거운 물을 세수하라고 직접 떠다주던 아이..
시골 집에 가면 희야랑 나랑 단짝처럼 붙어다녔다.
온 마을이 대부분 친인척이어서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인사하러 다녔는데
그때마다 희야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고 먼저 들어가 우리가 왔다고 알리기 바빴다.
몰래 나를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 숨겨논 먹거리를 챙겨주기도 했고
뜨끈한 아랫목에 배깔고 엎으려 있으면 어디서 만화책을 구해와서 보라고 디밀어 주기도 했다.
5학년때 쯤이었을까?
마침 옆에 계시던 친척 아주머니가 희야가 나를 언니라 부르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시더니 나이는 같지만 희야 생일이 몇 달 더 빠르니 내가 아니라 희야가 언니라 했다.
어른들 앞에서 딱히 언니라 부른 일이 없어 그동안 어른들도 우리 호칭을 몰랐던 것이다.
그 뒤로 희야는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난 언니라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참 착하고 순박했던 희야...
내가 시골집의 추억을 떠올릴때면 거기엔 항상 희야가 있다.
나에겐 고향처럼 푸근하고 정다운 그녀.
중학생이되고...고등학생이 되고...
할머니도 안계신 시골집에 더이상 방학이라고 놀러 가는 일도 없어지고
우리는 그렇게 차츰 서로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명절이면 각자의 시댁에 가느라 몇 년이 지나도 얼굴 한번 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저 아들을 낳았다...또 아들이다...셋재까지 아들이란다...
딸 부잣집 딸이라 유독 아들 욕심이 많더니 내리 삼형제를 낳고 다복하게 산다 소식만 들었다.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가끔 전해듣는 소식만으로 잘지내리라 생각하며 무심히 지내온 세월...
어느날....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젠 너에게 말해줘야겠다며 하신 말씀...
희야가 죽었단다....
가족 모두 차를 타고 놀러가다가 사고가 나서 남편만 살고 희야랑 아이 셋이 모두 죽었단다.
어떻게 그런 일이....
어떻게....
내가 충격받을 거 같아 알리지않으셨다며 장례도 주위에 알리지 않고 간단하게 치뤘단다.
희야....
한번도 언니라 불러주지 못했던 내 사촌언니 희야...
내 마음 속에서 넌 항상 나를 지켜주던 언니였어...
부디 하늘에서도 행복하기를...
가끔....언니가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