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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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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추억 몇 가지


BY 햇살나무 2010-09-25

어릴 때의 나는....무척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몸도 약하고 수줍음도 많던 나를 어쩌다보니 7살에 입학 시키게 된 엄마는

마침 담임이 된 아빠의 친구 분에게 부탁을 하였고,

선생님은 반에서 제일 씩씩한 여학생이었던  M을 내 짝으로 정해주시며

그 친구에게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라고 하셨다.

목소리가 커서 웅변대회에 나가면 항상 1등이었고 남자들에게 절대 지지않던 M.

그 아이는 나의 수호천사처럼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였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던가...

추석 다음 날 친구들은 한복을 입고 등교를 하자고 그랬다.

물론 부끄럼이 많던 나는 어떻게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가냐고 했지만

친구들은 추석인데 어떠냐며 모두 입고 갈꺼니까 한 사람도 빠지면 안된다고 그랬다.

약속한 날 아침까지도 한복을 입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무진장 고민하던 나는,

한명도 빠지면 안된다는 친구 말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복에 책가방을 메고 등교를 하였다.

그랬는데....그날 한복을 입고 온 건 나 하나뿐이었다.

막상 입고 나오려니 부끄러워서 차마 못입고 왔다는 친구...

설마 한복 입고 학교 오겠냐싶어 아무도 안입고 올꺼라 생각하고 그냥 왔다는 친구...

한복이 없어서 못입었단 친구...

아....그날 하루 난 어떻게 보냈을까...

난...그렇게 뭐든 약속은 하면 지켜야된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아이였다.

피아노학원이 흔하지 않던 그 시절,

반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아이는 별로 없었다.

난 음악을 좋아하던 엄마 덕분에 피아노 학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집에서 엄마한테 배운 실력으로 동요집정도는 칠 수 있는 정도였다.

6학년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키도 크고 멋진 남자선생님이셨는데

음...요즘 말로 카리스마가 짱이셨다...

화가 나서 우리를 야단치실땐 아무리 오줌이 마려워도 차라리 옷에 실례를 할망정

화장실 간다는 소리는 아무도 못했을정도니.

근데 선생님은 풍금을 잘 못치셨다.

우리반에서 유일하게 피아노를 칠 줄 알았던 나는 선생님 대신 음악시간이면 앞에 나가서 풍금을 쳤다.

뭐든 악보만 보면 척척 칠 정도의 실력은 못되었기에

다음시간에 배울 노래는 집에서 엄마에게 화음지도를 받아 연습을 해갔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된 첫 음악수업시간.

나는 당연히 내가 풍금연주를 해야할 거라 생각하고 미리 두어곡을 연습해갔었다.

그런데 2학기에 우리반에 새로 전학 온 학생이 있었으니...음대를 가려고 준비하고 있던 아이였다.

모퉁이 약국집 딸인 그 아이의 뛰어난 피아노 실력은 나하고 비길바가 못되었다.

하지만...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2학기 첫 음악수업시간 풍금 연주를 그 아이에게 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선생님이 그 아이를 나오라고 호명하는 순간 반아이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해간 기본화음연주와는 다르게 그 아이는 멋진 반주를 하였고 무사히 음악시간도 잘 넘어갔다.

하지만...상처입은 내 자존심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나를 위로하느라 남은 몇몇 친구들까지 다 돌려보낸 뒤,

나는 선생님께 독대를 청하였다.

평소 선생님 앞에서는 부끄러워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던 아이가 혼자서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고 찾아왔으니 선생님은 무척 놀라하셨을테지.

나는 앞으로 풍금연주를 안할테니 이제부터는 그 아이에게 시키라고 그랬다.

선생님은 그때서야 상황을 알아차리시고 당황하시며 2학기 첫수업이라

내가 미처 준비해오지 못했을까봐 그랬다고....미안하다고 그러셨다.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어찌나 서럽던지...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이후 졸업할 때까지 음악시간의 풍금연주는 내 담당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에겐 그런 당돌한 구석도 있었구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