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438

김장 이벤트


BY 시냇물 2012-11-26

 

해마다 겨울철이면 어김없이 치루는 큰 행사중에

하나가 김장이다

올해는 지인이 평택에서 농사지은 배추를 준다하여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전문 농부도 아니고 자기들 먹을 것만 하는데 밭에 심은 게

많다보니 자기 먹을 것만 뽑고 나머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뽑아 가라고 했다 한다

 

금요일에 남편과 차를 갖고 아침 일찍 평택으로 출발하여

자루에 배추를 담아 갖고 왔다

정확히 세어 보지 않아 포기수는 모르겠지만 얼추 50포기 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남편과 둘이서 먹을거면 굳이 많이 안 해도 되는데

작년에 가게를 접은 여동생네가 형편이 안 좋아 우리할 때

묻어 가야겠다길래 배추를 넉넉히 가져온 것이다

 

배추에, 무 반자루, 알타리 한 자루 반, 시금치, 아욱, 쪽파와

간수 뺀 소금까지 얻고 보니 차트렁크는 물론 뒷좌석까지

꽉 찼다

농약도 안 치고, 기른 채소들이라 더 고소하고 맛있게 보일 뿐만

아니라 친정엄마처럼 챙겨주는 지인의 마음씀이 고맙기만 하였다

 

알타리는 가져온 날 바로 다듬어 절여 12시까지 혼자서 미리

해넣었다 그래야 김장하는 날 덜 번거로울 것 같아서....

 

4층까지 남편과 둘이서 끌어올린 배추를 토요일에 혼자서 절이느라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원래 척추협착이 있어 앉아서 하는 일이나 허리를 구부리는

일을 하고 나면 쉽게 허리가 펴지질 않았는데

입에서 "에구구"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후에 작은딸램이 퇴근하면서 조카아이와 먼저 왔고, 동생은 직장이

끝나자마자 우리집으로 왔다

저녁엔 여자 넷이 주방에 모여 앉아 '하하 호호' 수다를 떨면서

양념거리를 다듬으니 모처럼 집안이 사람사는 것처럼 들썩였다

 

배추 절이는 그릇이 마땅치 않길래 그냥 욕조에 다 넣고 절였다

절임배추만 사다 해넣다가 처음으로 내가 절여 보려니

짜게 될까봐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모처럼 하는 김장인데 잘 해야 되겠다는 부담도 엄청 났고.

 

일요일 새벽5시에 일어나 배추를 꺼내 보니 간도 적당히

잘 절여진 것 같애 마음이 놓였다 목욕탕에서 동생과 둘이

배추를 씻어 건져 놓고 한 입 뜯어 먹어보니 고소하면서도 달달하고

아주 맛이 있어 역시 농약 하나 안 치고 기른 배추라

맛부터 다른 듯 싶었다

 

나는 식구들 아침 준비에 분주하여 동생이 무채도 채칼로 다 썰고

내가 아침에 미리 끓여 놓은 찹쌀죽에 고추가루를 넣고 먼저 불린 다음

고추물을 들여놓은 무채에 온갖 양념을 다 넣고 비비니

큰 통으로 가득 하나가 되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입가에 침이 고였다

잘 절여진 배추잎을 하나 뜯어 무채를 싸서 먹어보니 짜지도 않고

감칠맛 나는 기가 막힌 맛이라 동생과 둘이

"오우, 바로 이 맛이야"

하며 감탄(?)을 연발 하였다

김장할 때는 이런 게 더 재미있다

 

 

물이 적당히 빠진 배추를 내가 주방으로 옮겨다 주면

작은딸램, 조카 아이, 동생 셋이서 배추 속을 넣었다

먼저 우리 김치통을 채우고 딸램이 가져온 한 통을 채운 다음

김장봉투에 동생네 김치를 채우노라니 어느새 배추가 

속이 다 넣어졌다

 

나는 이것저것 필요한 것 챙겨주며 보조 역할을 하는 사이

점심 때가 되어 국끓이고, 목살 찌느라 또 바빴다

각자 가져갈 것을 챙겨 베란다에 내어 놓으니 베란다가

다 꽉찰 지경이 되었다

무엇보다 동생한테 이것저것 빠짐없이 챙겨주니

내 마음이 다 뿌듯해졌다

 

김장 뒷정리까지 다 한 다음 거실에 둘러앉아 보쌈으로

점심을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 따로 없었다

딸램과 조카아이도 젓가락이 부지런히 보쌈을 향하며

맛있다를 연발하였다

남편은 술을 못 마시니 동생과 나 둘이서만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시노라니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을만치

행복한 마음이었다

 

그동안 동생이 가게 접은 일로 인해 마음 고생하느라

친정과 뜸하게 지냈었는데 이렇게 다시 오니 너무 좋단다

나 역시 서울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낼 동생이었는데

연락도 없이 지내는 게 적잖이 서운했었기에

이번 김장이 더욱이나 뜻깊은 이벤트가 되었다

 

형편이 나아질 동안 내가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챙겨주고 싶다

그래야 언니로서 내 마음도 편해질테니까......

 

마무리로 우리 모녀 3대, 동생네 모녀 이렇게 여자 다섯이

찜질방으로 향해 피로를 푸니 더할 수 없이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제 맛있게 잘 익은 김장김치 먹는 날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