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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자유였다


BY 만석 2016-04-26

오만한 자유였다
  

참으로 오랜만의 자유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공간에서의 자유. 아무 것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족한 자유. 그래서 결과에 대해서 가타부타()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게 내게도 가능하다는 말이지. , 그동안 딱히 마음먹고 남다른 일을 한 것은 아니었으니 누굴 탓할 일은 아니지만, 작은 내 체구에는 너무나 힘든 세월이긴 했지.

 

오늘 영감이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동창회엘 나갔다. 병을 얻은 뒤로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동창회엘 나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의 동창회보다도, 대학의 동창회보다도 유난히 애착을 갖던 초등학교 동창회. 십여 년 이나 동창회장도 맡아 열성을 부리더니, 한동안은 심드렁했었다. 그러더니 어제는 이발도 하고 옷을 고르고 분주하더니, 드디어 아침에 집을 나섰다.

 

다녀오세여~!”를 외치고는 거실에 큰 댓자(大字)로 누웠다. 거실의 천장이 이렇게 높았었나 싶다. 누구를 불러 노닥거릴 것도 없고, 그냥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자 마음먹는다. 누운 채 두 팔과 두 다리를 저으며 어린아이가 되어본다. 이쪽 거실 벽에서 맞은편의 벽까지도 굴러 본다. 착실하게도 청소기를 돌리던 영감도 오늘은 아니었다. , 그쯤은 봐 줘야지. 크크크.

 

햇살이 좋은 마당의 꽃잔디가 오늘따라 그 빛이 유난히도 곱다. ~. 노랑나비 한 쌍이 나풀거리며 다가온다. 사실 꽃잔디 향기가 유난스럽걸랑. 저들도 커플이겠다. 하하하. 햇빛도 오늘은 유난스럽다. 머리 위에서 ~.’하고 사방팔방으로 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세돌이(푸들강아지)도 오랜만의 사모님(?)의 여유로움에 신이 난 모양이다. 뱅뱅 내 주위를 돈다.

 

오늘은 아무 일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영감의 화원에 물은 좀 먹여야겠다. 긴 호수를 풀어서 시원하게 화분의 꽃에 물을 먹인다. 나도 목이 타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구먼. 벽시계가 벌써 1시를 넘는다. ~. 그렇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겠다?! 자유도 좋지만 밥은 먹어 둬야지. 오랜만에 나만을 위한 성찬을 차려 봐봐?

 

~. 쉽게 먹자. 이왕에 얻은 자유가 아닌가. 간이도마에 빨갛고 노란 피망을 잘라놓는다. 누가 봐 주는 이들도 없으니 도마 위에 놓인 채 그대로 먹자. , 어떨라구. 양배추도 통에 넣어 둔대로 냉장고에서 꺼내놓는다. 누가 뭐랄 사람이 있냐구. 쌈장도 손질해서 병에 보관한 그대로 내놓자. 살짝 옆구리에서만 찍어먹으면 되잖아 히히히.

 

주섬주섬 여러 가지를 벌려놓을 필요가 없다. 현미밥 한 숟가락에 뭐, 여러 가지 반찬이 필요치 않다. 이만하면 나만의 성찬(盛饌)으로는 훌륭한 걸. 아구아구 퍼 먹고 나니 설거지도 수월타. 이 아니 좋을시고. 눈에 좋지 않다 하여 마시지 않던 커피를, 오늘은 우아하게 한 잔 넘기고 싶구먼. , 한 잔쯤이야 어떨라구. 이왕이면 며느님이 좋아하던 영국산 머그 잔을 채우자.

 

햇볕이 내리쬐는 베란다의 티 탁자에 앉아서 그윽한 커피의 향을 음미한다. 비록 믹서커피이긴 하지만(나는 믹서커피를 제일 좋아한다^^). 아주 바쁘게 살 때에도 커피타임만은 여유를 부리지 않았던가. 비록 밥을 먹을 때에는 들고 다니며 먹더라도, 커피는 자리를 잡고 폼(form)나게 마셨지.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그 짓(?)도 해 본다. 역시 믹서커피가 최고야.

 

시간은 참 잘도 간다. 딩굴며 보낸 시간이 7시를 가르킨다. 방에서는 전기를 켜야 할 시간이다. ~. 그러고 보니 영감은 언제 온다는 소리도 없었네?! 저녁은 어째?! 전화를 걸어 봐봐? 영감의 할마이동창들한테, ‘누구는 영감이 없냐!’고 한 소리 듣겠지. 그런데 이 영감은 전화도 못해? 밖이 어두워지고 있는데 말이지. 겁 많은 마누라인 줄 알면서.

 

방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걸어 잠근다. 평소에도 문단속을 잘하는 나지만, 오늘은 더 그래야한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건, 아마 세돌이겠지. 아니 바람인가? 오늘은 바람이 센 겨? 그런데 이 영감은 왜 안 돌아와? 김을 재며, 자꾸만 세돌이가 두드리는 현관을 바라본다. , 나는 아직 혼자 이기에는 어린가(?) 보다 ㅋ~. 나만의 자유. 12시간의 자유는 이렇게 끝을 보인다.

 

             오만한 자유였다    오만한 자유였다

                                 나만의 성찬입니다 ㅎㅎㅎ.                                꽃잔디에 물을 주다가 날아온 나비를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