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으리랐다
다른 이들에게도 내 아이들에게도 세상 끝 날까지 짐이 되지 않겠다던 의지가, 한 귀퉁이씩 허물어지고 있다. 세상의 일이 어디 내 마음대로만 되더냐마는, 그래도 이 일만은 이를 악물고 해 내리라 결심을 했다. 그리고 ‘까짓 것!’하는 자신도 있었다. 정신을 놓치지 않는 한, 모두 보듬어 주리라 다짐도 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없는 채, 아픈 채를 하지 않고 굳세게 버텼다. 오히려 아이들이 지나치게 어미의 건재(健在)를 과신(過信)을 할라 싶어서 걱정은 했다.
‘우리 엄마는 강하니까.’
‘우리 엄마는 부족한 거 없으니까.’
‘우리 엄마는….”
쓰러져가는 어미 앞에서도 지나친 믿음으로, 어미를 돌아보지 않으면 어쩌랴.
‘엄살도 좀 부릴 걸 그랬나.’하는 걱정까지 든다.
그러나 이제는 대문을 들어서는 아들도 사위도 일꾼이 된다. 연장통을 뒤지고 베란다를 살피고, 컴을 들여다보고 핸드폰도 열어보고. 그만큼 걱정을 시킨다는 뜻이겠다. 벌써부터 나는 아이들에게 짐이 되어가고 있다. 본가(本家)는 본가가 아니고, 처가(妻家)도 처가가 되지 못한다. 한 주일 바쁘고 힘들게 직장생활을 했으면니, 주말에는 좀 편하게 쉬어야 할 터인데 말이지. 지난번에 눈 설었던 것은, 연장이며 부속자료를 공수(拱手)해서 처리하기도 한다.
오늘은 아들 네 세 식구와 막내딸 내외가 동시에 현관을 들어선다. 한꺼번에 왁자지껄하다가 다 빠져나가면, 더 허전할 것이라며, 순번을 정해서 다녀가던 녀석들이 어인 일인고. 영감과 내가 지독한 감기에 고생을 하고 났다는 전언(傳言)에, 문안 차 막내딸 내외(內外)가 예정에 없던 방문을 했다. 주말마다 오는 보림이 네와 골목 어귀에서 재회를 했다고. 오랜만에 고모를 만난 보림이가, 제 핏줄이라고 ‘눈 맞은 강아지’처럼 길길이 뛰며 좋아한다.
어제까지도 고운 소리를 잘도 질러대던 대문의 인터폰이 벙어리가 된 모양이다. 아들에게도 딸에게도 열쇠를 나눠 줬기에 망정이지. 짐을 내려놓은 아들과 사위가, 대문과 현관을 오가며 분주하다. 장정 둘이 매달리니, 뭔가 금새 해결이 될 것만 같다. 옳거니. 기술자가 따로 없네.
“딩동딩동~♪♪” 또 몇 달은 쓰려나보다. 시원찮은 두 늙은이의 청력을 걱정해서, 소리도 아주 우렁차게 돋아놓는다.
“거~참. 좋구먼.”
약속을 했었나? 올케와 시누이의 눈인사가 그렇구먼. 그러고 보니 내 며느님은 벌써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러놓았네. 제 살림인 양 냉장고를 뒤져 식탁을 채운다
. 호박나물이며 생선도, 제 집에서 익혀 왔단다.
“엄마. 아무래도 올케가 힘들지 싶어서 갈비탕 포장해 왔어요.”
막내딸은 사거리의 큰 식당에서 곧잘 ‘갈비탕’이며 ‘곰국’을 포장해서 들고 들어온다. 어메~. 진수성찬(珍羞盛饌)이로세!
내 손으로 거하게 차려서 그들을 먹여야 직성이 풀렸다. 돌아갈 때는 한 냄비씩 들려 보내야 마음이 족했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고기토막도 가방에 쑤셔 넣어줘야 흥에 찼다. 그러나 것도 이젠 내 힘에 벅차다. 몸이 늙으니 기운도 늙고 따라서 생각도 늙는다.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와르르 와르르 들리는 것 같다. 하나씩 둘씩. 어쩌면 좋다는 말인고.
에~라. 그래라.
“케세라 세라(Que sera sera)~♪♪.”다.
막내딸 말마따나 이젠 손들었다. 충분히 애썼다고 나에게 칭찬을 해 주란다. 이 나이엔 다 그렇게 산다나?! 아프면 아프다 하고 없으면 없다고 해도 흉이 아니란다. 얼굴의 주름도 부끄러워 말고, 쳐진 눈꼬리도 탓할 게 못 된다 한다. 그래. 이제부터는 그리 살자꾸나. 그러자.
보림아~!
그려도 할미는 서러워라~. 아직도 맴은 청춘인디….
미국 딸네서 집에만 오면 일꾼이 되는 아들과 사위. 며느리도 막내딸도 이제는
외출시 갖고 다니라고 시방은 인터폰 수리 중. 들어서면 바로 주방으로.
주소와 현관 열쇠를
이렇게 매달아 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