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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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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에 기지개를 펴다


BY 만석 2016-03-16

 

이 봄에 기지개를 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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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행을 통해서 내 행복에 감사하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그러나 의도치 않아도 우리의 주위에서 가끔씩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속으로 질타했다. ‘나에게.’가 아니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불행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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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세계의 이목 속에서 바둑대전(大戰)을 벌릴 때, 나는 그 대전의 진행이나 결과보다 그의 입지전적(立志傳的) 삶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내가 바둑을 좋아한다든가 남다른 깊은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실어증(失語症)을 앓았다는 그의 삶에 더 관심이 있었다. 것두 12세의 어린나이였다 하니, 부모님의 걱정은 얼마나 컷으랴. 잘 이겨내고 그가 득음(得音)을 했을 때, 식구들의 기쁨이 어떠했으리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나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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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胸部外科) 명성의(名聲醫)인 조재일박사는, 수술 전에 환자의 식구들을 모두 불러 앉힌다. 앞으로 전개될 수술 전반에 걸친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보호자는 물론 자녀들 등 환자의 수술에 관심 있는 친지들이,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을 앞둔 환자나 보호자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린 나로서도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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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도 아닌 것이 남에게 내 병을 알리고 싶지 않았으니, 널리 부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영감과 사 남매를 앉혀놓고 의사는 진행될 수술을 설명하고, 서류를 내밀며 모두에게 사인(sign)을 하랬다. ‘설명을 잘 들었고, 수술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뭐, 그런 양식 같았다.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테클을 걸겠는가. 내 목숨이 그의 손 끝에 달리지 않았는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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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하나 난관은 식도를 절제하다가 성대를 잃을 수도 있다 했다. 그러니까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앞에서, 성대를 잃는 것쯤은 크게 걱정할 일이 되지 않았다. 우선 살고보자는 심사(心事). 이제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절망에, 나는 그 시각부터 누구와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식도암 수술을 받다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다. 결과론적(結果論的)으로 보아, 내 긍적적(肯定的)인 그 사고가 날 살려낸 것라는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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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식도암수술도 잘 되었고 다행스럽게 성대도 무사했다. 이제껏 없었던 일을 해 냈다며, 조박사는 내가 보기에도 그 명성의 답지 않게 기뻐했다.

차차 시간이 지나면 부은 곳이 가라앉을 것이고, 탁한 음성도 되돌아온다.” 했다. 그러나 몸은 어느 정도 추스렸으나 맑은 목소리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목숨만 건지자던 바램이 자꾸 욕심을 불렀다. 복지관으로 노인대학으로 다니던 강의를 놓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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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성대수술을 받았으나 애시당초의 목소리로 복구되지는 않았다. 몸이 피로하다든지 감기라도 올라치면 음성이 먼저 변했다. 강의를 다녀오는 날엔 그 회복에 며칠씩 걸렸다. ‘제 주재를 알아야지.’. 결국 강의를 포기했다. ​친구들과의 모든 모임도 끊었다. ​동창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차츰 더 사람을 만나는 일에 두려움이 생겼다. 설령 만난다 해도 말을 섞지 않았다. 나는 차츰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의사소통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말한다.

엄마 말에는 문제가 없어요. 외할머니를 닮아서 목소리가 작은 것뿐 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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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아닌 척하고 즐거운 척을 해보지만, 근간에 다시 성대 수술을 받고는, 실망이 커서 자꾸만 주녹이 들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했던가. 모임에서도 동창회에서도 강의실에서도 이젠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나 비록 TV를 통해서지만, 이세돌9단을 바라보며 용기를 내 본다. 타인을 통해서 나는 그래도.’라고 자위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긴 하지만, 용기를 갖는 계기가 되었음에 감사한다. 목소리로 벌어먹어야 하는 건 아니잖는가. 아직 움직일 수 있다는 건 큰 밑천이다.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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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고 마당에 내려서니 이런! 이런! 넝쿨장미의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순이 제법 불었다. 겨우내 말라 고사(枯死)하나 싶던 꽃잔디가 제법 푸른 빛을 띈다. 지하실의 화분에서도 뾰족한 새순이 돋아 오른다. 나도 일어나 기지개를 펴자. 오늘부터 빡시게 집안 정리에 들어간다. 겨우내 묵힌 장롱의 먼지도 닦아내고 홋이불도 벗긴다. 거실 구석구석의 먼지를 흠쳐낸다.

아구야~, 나는 긴긴 겨우내 이렇게 게으름을 부렸구먼. ~. 몸살이 나야하는데 기운이 뻗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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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아~!

할미 일어났어야~.

봄이 오긴 오는갑다^^

                       

                  ( 기지개 펼 준비 시~작! )                                

        키 작은 할미는의자에 올라서서도 까치발을 하고 ㅜㅜ. 키 큰 할배는 산책을 보내고. ㅠㅠ.

        영감  시키면 내  맘에 안들어서리. 고생을 사서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