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이할매의 미국여행기
일본을 생전에 처음 다녀온 친구가 있다. 그녀는 누구의 말에든지,
“일본에서는 말이야…”로 토를 단다. 그것이 장장 10년이 계속되자 이제는 오히려 친구들이 먼저 물어 준다. 일본에서는 어떻더냐고. 물론 우리는 비아냥이라는 걸 감지하지만 이 친구는 신이나서 말한다.
“일본에서는 말이지….”
나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곧잘 미국 다녀온 티를 내고는 한다. 그러나 본의는 아니다. 시방 미국을 내집 안방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이 좀 많은가. 미국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는데 내가 무슨 재간으로 미국을 더 말하겠는가. 그러나 다녀왔다는 보고는 해야 할 것이니 오늘은 나도 한 마디 해야지.
갈 때마다 느끼는 첫 인상. 그건,
“와우~!”하는 함성이다. 넓고 크고 풍요롭다는 대국에 대한 부러움이다. 딸이 사는 버지니아 한 주만 해도 남한보다 넓다 하니 부럽지 아니한가. 얼마나 오랜만의 방문인가 했더니 고작 2년 7개월만의 일이다. 그래도 낯이 설어서 모든 게 새롭기만 하다.
2년 전엔 대학시험을 앞둔 손녀딸 덕에 조용히 다녀왔지만, 지금은 그 대학생 손녀딸들의 시원한 안내로 제법 촌티를 내면서도 마냥 즐겁지 않던가. 잘 자라 준 것에 대견하고 그들의 넓은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함이 고맙다. 이제는 제 어미의 보호자로도 손색이 없는 그녀들은 지금 이렇게 멀리 있어도 내 딸에 대한 걱정을 접게 한다.
10년을 재직해야 그 스펙으로 노후의 연금이 보장 받겠다며 직장을 버리지 못하는 딸아이. 학력도 큰 스펙이라며 대학원에 나가는 그녀를 보며 나를 닮아 있음이 신통방통하다. 그만하면 쓸 만도 하건만 손주를 고급인력으로 키우려면 고급 영어를 배워야 한다며 그 와중에 상류사회에 뛰어들어 찬사를 받으니, 그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냐는 말이지.
마침 출장 중이어서 만나지도 못하고 화상으로만 인사를 나눈 사위가 나이가라폭포의 정면의 고급 호텔 12층을 예약을 해 둬서 양쪽 나이아가라를 발아래 두고 앉았으니 얼씨구 좋을시고.
“오메~. 만석이가 이런 호강을 할 주재가 되나?”며 마냥 행복했었지. 크고 넓고 풍요로운 나라는 폭포도 크고 넓도 장관이로구먼.
마침 대학을 졸업하는 손녀딸아이의 졸업식에 참석하려니 것도 비행기로 서너 시간은 날아야 하는구먼. 사각모자를 눌러 쓴 손녀딸의 그 미모가 더 출중하니 이 외할미는 절로,
“♪~ 에헤라 디여~”다.
거금의 식비가 문제더냐 디즈니랜드의 정문 고급 식당에서 저녁식사로 축하를 해 주고.
일부러도 모실 곳인데 디즈니랜드를 놓치겠느냐며 끌고(?)다니니 별 희한한 구경으로 시골 할매 할배를 현혹시키는구먼. 지하동굴을 지나는 전동차라기에 올라탔더니 이런 이런 세상에. 이게 지하로 통하는 ‘롤러고스터’라네?!
“아이고 할미 죽는다.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고함소리에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한다.
아직 어린 랑랑18세의 막내 손녀딸은 케릭터에 나오는 모든 공주들과 같이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디즈니랜드를 드나들어, 요번이 네 번째 여행이 된다네?! 잡아끄는 아이들 성화에 지는 척 무대에 오르고 ‘겨울왕국’의 여왕과 공주와 촬영을 했더니, 그게 이름하영 ‘엘사여왕’과 ‘안나공주’라나. 그런지 저런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사진을 들여다보니 꿈만 같구먼.
카나다에서 제일 거대한 개인주택이라는 ‘카사로마’성의 위엄은 장엄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너무 욕심을 부려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안주인의 자리를 내놓고 무일푼이 됐다니 거참 한심한지고. 뇌물로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백작의 명성이 무슨 소용이람. 짧고 굵게 산 그들의 화려한 삶이 요 작은 나라의 작은 촌부가 보기에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을.
장자라는 책임에 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강북의 골짜기에 사는 내 큰아들과, 39살로 작년에 결혼을 한 둘째 딸과 일본의 모회사(母會社)와 한국의 자회사(子會社)를 보름씩 드나드는 막내아들이 왕복 논스톱의 차비를 담당하고, 내 칠순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죄로 큰딸이 미국내의 경비를 맡았다 하니 어린아이처럼 마냥 행복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너희들도 아직 어려운데….”하는 내 걱정에,
“엄마도 우리 키우며 어려우셨잖아요.”한다. 그렇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대에 사 남매 낳아 기르기가 어디 수월했겠느냐는 말은 옳다. ‘그러나 낳으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라더니 꿈이었나 싶게 다 잊은 지 오래다. 그래서 미국여행은 그저 고마운 마음만 이로세.
또 사 남매만의 ‘채팅방’을 개설하고 늙은 우리내외를 위한 토론방으로 쓴다하니 것도 고맙고. 그래서 우리 부부 일상의 일투적을 상세히도 아는구먼. 달마다 큰아들을 통해 보내는 용돈이 저들은 적다 하지만, 네 녀석이 모으니 것도 적은 액수는 아니네?! 요번 미국여행의 용돈은 세 녀석이 7월과 8월의 용돈을 한데 묶어서 용돈으로 쥐어 주었으니 또한 감사한 일이로고.
보림아~!
할매가 호강하고 돌아왔다. 이제 다시는 미국 귀경하기 힘들겄쟈? 하루가 다르니 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