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935

내가 남편을 사랑하기는 했던가?


BY 만석 2014-12-20

남편을 사랑하기는 했던가.

 

부부가 살다가 늙어지면 병은 나게 마련이다. 요는 누가 먼저 병을 얻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다. 친정의 큰오빠는 우연히 집에 들어온 노인에게, 결혼을 앞둔 내 사주팔자를 물었다.

복이 많은 처자네. 이 결혼하면 효도도 많이 받을 것이고 특히 노후가 찬란하다.” 했던가. 사실을 말하자면, ‘땅부자에 곡간부자라는 중매쟁이의 입담보다, 찬란한 노후가 더 매력적이었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아마, 얻어 마신 유자차가 노인에겐 퍽이나 달았던 모양이다.

 

,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듣기 좋은 소리이니, 이왕이면 믿고 싶었던 건 당연지사겠다. 특별한 복이라는 것은 남편보다 먼저 세상을 떠서, 남편의 큰 사랑에 그 뒷마무리까지도 뭇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라나?! 그러더니 지(?)가 먼저 자리를 보존하겠다는 말이지. 그건 안 되지. 내가 찬란한 노후라는 걸 믿고 산 게 몇십 년이냐는 말씀이야. 나이 팔십이 낼모레인데 이렇게 내 기대를 깡그리 뭉게려구? 이 첨지는 아직도 철이 덜 든 겨? ~.

 

이쯤에서 병을 얻어 적당히 효도 받다가, 조용히 가는 것도 억울할 건 없는 나이이긴 하겠다. 그러나 그건 자식들이나 주위의 뜻이고, 마누라의 입장에서야 어디 그런가. 의식도 없고 가슴은 공중으로 널을 뛰고, 계기판의 산소포화 수치도 자꾸만 내려가니 속이 타는 건 마누라다.

선생니~!” “간호사선생니임~!”

쉰소리만 내던 내 목에선 절규의 쇳소리가 절로 난다.

 

간호사들이 달려오고 의사들도 뛰어든다. 산소통이 달리고 마스크가 걸리고 팔과 다리를 들었나 놨다. 털썩 떨어지는 영감의 팔에 살점을 비틀어 반응을 읽는다. 영감은 요지부동이다. 나도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는, ‘주여~!’만 중얼거리며 부동일 수밖에. 터질 듯 부풀었다가 내려앉는 영감의 가슴만 그의 고통을 말한다. ‘~. 저렇게 가는 거로구나.’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먼.’ 하지만. 안 되지. 그렇게는 못 보내지. 내가 누군데. 아니 당신이 누군데.

 

널뛰기를 하던 영감의 가슴이 제자리를 잡자, 주루루 침대를 끌어 중환자실로 옮긴다.

보호자는 여기까지예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자리가 정리되면 면회가 될 거예요.”

시간은 유수와 같다는 건 공연한 염불이다. 아무리 기웃거려도 기척은 없고 딸아이가 자꾸만 내 어깨를 감싸서 의자에 앉힌다.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이 어미의 조바심이 얼마나 볼성사나운 꼴인 지도 모르는 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좀 우아하게 굴었더라면.

 

“000보호자 입실하세요.”

영혼 없는 중환자실의 외침에 체면도 없이 아이들의 앞장을 서서 중환자실을 들어선다. 여전히 남편은 나를, 아니 아이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숨소리는 편안해 보이고 계기판의 숫자와 널을 뛰던 그라프도 순조롭다.

나야. 눈 떠서 나 좀 바라보시지!”

아마, 내 말에 명령의 힘이 실렸었지 싶다. 알아듣고 쏘아보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20분 지났습니다. 환자의 안정을 위해서 협조해 주세요.”하는 간호사가 아니, 간호사선생님이 야속하기만 하다. 중환자실을 나서며, 등을 밀어내는 간호사에게 몇 번이고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나 그녀들의 얼굴은 판밖이 같이 무표정이다. 아니, 너무 차가워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면회는 오전과 오후의 2. ~. 저녁까지? 그때까지 어찌 기다리나. 정신이 들면 혼자서 껌뻑거리며, 그래도 나를 얼마나 찾을 것을. 나를 말이지. 마누라를 말이야.

 

내 뜻과는 무관하게 내 집보다는 가까운 거리의 막내네 집으로 실려 간다.

여기 걍 있고 싶은데. 보호자는 중환자실에서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데에 있으라잖어.”

"엄마까지 쓰러지면 우리가 감당할 수가 없어요. 제발 갑시다.”

포장이사로 겨우 짐만 옮겨놓고, 점심을 주문하다가 일이 터져서 딸의 집은 아수라장이다.

 “오빠가 병원에 있으니까 아빠가 깨어나시면 전화 할 거예요. 맘 놓고 어서 주무세요.”

 

내가 남편을 사랑하기는 했던가?’

잠은 오지 않고. 지나간 세월을 더듬는다. 아이들 기르며 남편이라는 존재를 이렇게 심도있게 생각해 보지를 않았지 싶다. 그저 꼭, 반드시 내 옆에 그리고 아이들 곁에 있어야야만 하는 사람쯤이었던 것 같다. 보통의 주부들이 남편은 가정의 경제를 위해서 필요로 한다는 객담들을 한다. 그러나 나도 경제 활동을 하던 터라 동조하기 싫었는데. 그렇다면 남편의 존재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