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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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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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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생각하시라구요


BY 만석 2014-05-19

나이를 생각하시라구요

 

띠리리리 띠리리링~

양장점을 다시 하신다고요?”

왜요? 살림이 어려워지셨어요?”

애들이 뜯어가나요?”

지금 그 나이에 바느질이라니요.”

올케는 내가 답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쏟아놓는다.

 

하시지 마세요. 난 분명히 하시지 말라고 했어요?! 한 평생 올케 때문에 힘든 양장 일 배웠다는 원망을 들었는데, 이제 그걸 왜 또 하세요? 절대로 하시지 마세요. 바느질이라니요.”

그랬다. 사무직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러나 양장점을 운영하는 올케의 직업에 반해 올케 밑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바느질을 배웠다. 마침 성업 중이어서 사람이 필요했을 게다. 그래서 은근히 나를 끌어들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정작 내 속마음엔 올케의 수입에 더 큰 매력을 느꼈음이 솔직한 고백이다.

 

뒷심을 믿고 어려운 잡일은 피할 수 있었다. 와중에 참 잘한다.’는 칭찬도 한 몫을 했을 것이고. 내가 뭘 해도 어설프게 하지는 않걸랑(ㅋㅋㅋ. 자찬自讚). 기술을 연마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고 계산을 했으니 어린마음에 용하다(ㅎㅎㅎ.것두 自讚). 암튼 남들보다 일찍 기술을 익히고 서울로 유학. 낯선 직장에서도 골고루 기술을 익히겠다고 뛰었으니. 평상복, 레인코트, 무용복. , 웨딩드레스를 배우려고 소공동의 그 유명한 씨의 수하에 입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장의 고수입을 제시하는 스카우드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았음이야.

 

결혼을 한 뒤. 아이들이 생기고 살기가 팍팍해서 양장점을 열었다. 한참 맞춤옷이 대세였던 터라 부()를 누렸다. 이젠 성업도 싫고 돈도 싫다. 몸이 힘드니 맘도 힘들어서 그 올케를 원망한 적이 있긴 했지. 내가 아니어도 밥을 굶지는 않을 터인데도, ‘아는 게 도둑질.’이라고 손에서 놓지를 못하고 올케만 나무라지 않았는가. 사실, 그 덕에 아이들을 잘 키웠고 나까지 오매불랑하던 만학을 했으니, 올케를 나무랄 일은 아니로구먼. 그렇다고 이제 다시 양장점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는 게 좀 거시기(?)’하긴 하지?!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말이지.

 

문 열었어요?”

개업식은 언제예요?”

그러고 보니 친정 쪽에선 극구 반대를 하고 내 주위에선 문을 열라고 부추긴다.

허허. 어느 장단에 춤을 출꼬.

문을 닫으니까 우리가 어디 갈 데가 없어. 시간 보낼 데도 없구 말이지.”

아항. 그렇겠다. 시방 우리 나이엔 경로당도 못 간단다. 경로당에선 막내로 심부름만 한다나?

 

보림아~!

좋았어. 할미 맘 정했샤. 양장점 문 연다이~. 보림이 꼬까도 맹글구, 네 엄마 원피스도 맹글어 입힐 겨. 할미 맘 잡았다이~. 냘부턴 셔터 올리고 앉았을 겨. 나이? ,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잖여~. 내 맘은 아즉 꽃 같은 이 십대니께 내 맘 같이 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