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생각하시라구요
“띠리리리 띠리리링~♪”
“양장점을 다시 하신다고요?”
“왜요? 살림이 어려워지셨어요?”
“애들이 뜯어가나요?”
“지금 그 나이에 바느질이라니요.”
올케는 내가 답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쏟아놓는다.
“하시지 마세요. 난 분명히 하시지 말라고 했어요?! 한 평생 ‘올케 때문에 힘든 양장 일 배웠다’는 원망을 들었는데, 이제 그걸 왜 또 하세요? 절대로 하시지 마세요. 바느질이라니요.”
그랬다. 사무직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러나 양장점을 운영하는 올케의 직업에 반해 올케 밑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바느질을 배웠다. 마침 성업 중이어서 사람이 필요했을 게다. 그래서 은근히 나를 끌어들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정작 내 속마음엔 올케의 수입에 더 큰 매력을 느꼈음이 솔직한 고백이다.
뒷심을 믿고 어려운 잡일은 피할 수 있었다. 와중에 ‘참 잘한다.’는 칭찬도 한 몫을 했을 것이고. 내가 뭘 해도 어설프게 하지는 않걸랑(ㅋㅋㅋ. 자찬自讚). 기술을 연마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고 계산을 했으니 어린마음에 용하다(ㅎㅎㅎ.것두 自讚). 암튼 남들보다 일찍 기술을 익히고 서울로 유학. 낯선 직장에서도 골고루 기술을 익히겠다고 뛰었으니…. 평상복, 레인코트, 무용복…. 아, 웨딩드레스를 배우려고 소공동의 그 유명한 ‘앙’씨의 수하에 입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장의 고수입을 제시하는 스카우드에는 절대로 응하지 않았음이야.
결혼을 한 뒤. 아이들이 생기고 살기가 팍팍해서 양장점을 열었다. 한참 맞춤옷이 대세였던 터라 부(富)를 누렸다. 이젠 성업도 싫고 돈도 싫다. 몸이 힘드니 맘도 힘들어서 그 올케를 원망한 적이 있긴 했지. 내가 아니어도 밥을 굶지는 않을 터인데도, ‘아는 게 도둑질.’이라고 손에서 놓지를 못하고 올케만 나무라지 않았는가. 사실, 그 덕에 아이들을 잘 키웠고 나까지 오매불랑하던 만학을 했으니, 올케를 나무랄 일은 아니로구먼. 그렇다고 이제 다시 양장점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는 게 좀 ‘거시기(?)’하긴 하지?! 머리가 허연 늙은이가 말이지.
“문 열었어요?”
“개업식은 언제예요?”
그러고 보니 친정 쪽에선 극구 반대를 하고 내 주위에선 문을 열라고 부추긴다.
허허. 어느 장단에 춤을 출꼬.
“문을 닫으니까 우리가 어디 갈 데가 없어. 시간 보낼 데도 없구 말이지.”
아항. 그렇겠다. 시방 우리 나이엔 경로당도 못 간단다. 경로당에선 막내로 심부름만 한다나?
보림아~!
좋았어. 할미 맘 정했샤. 양장점 문 연다이~. 보림이 꼬까도 맹글구, 네 엄마 원피스도 맹글어 입힐 겨. 할미 맘 잡았다이~. 냘부턴 셔터 올리고 앉았을 겨. 나이? 거,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잖여~. 내 맘은 아즉 꽃 같은 이 십대니께 내 맘 같이 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