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도 만두를 좋아해
주말 늦은 저녁에야 아들네 세 식구가 들어선다. 영감은 금요일 저녁부터 목을 빼고 손녀 딸아이를 기다리는데 말이지. 그들이 언제나 주말에나 온다는 걸 이젠 알만도 한데 말이지. 허긴 나도 마당에 나가 담장 위로 머리를 빼고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지만.
아이가 들어서면 곧장 그림 그릴 준비를 한다. 가방끈을 팔에 걸고 턱을 올리고 멋을 부리며 걸어온다. 색연필을 챙겨 자리를 잡는다. 미리 걸어놓은 달력의 뒷장에 그림을 그기 시작한다.
“보림아. 가자. 낼 어린이집 가야지.”
낼 어린이집 가는 건 늘상의 일이다. 할아버지와 할미가 늘 손녀딸에 고픈 걸 이젠 저도 알아 챌 만은 하지 않은가. ‘좀 일찍 오면 어때서.’.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지만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일어나 가방을 챙긴다. 허긴. 뒷 약속이 있다면 그도 감지덕지로고.
아이가 서두르는 걸 보니 약속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세 식구가 대문을 나서고 주방엘 들어가니, ‘이를 어째.’. 쑥버무리를 들려 보내지 않았구먼. 며느님에게 급히 전화를 한다.
“에구. 쑥버무리 준다는 걸 잊었구나. 시방 내가 내려간다. 기다려라.”
“아, 어머님. 오빠가 그 앞에 있어요. 오빠를 보낼게요. 내려오지 마세요.” 며느님의 말투가 유난히 강경하다. 그렇다고 어찌 앉아서 기다리랴. 쑥버무리를 들고 대문을 나선다. 두어 발 내려딛는데 아들이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냅다 뛰며 골목을 가로지른다. 벌써 제 댁과 통화를 한 모양이다.
차라리 며느리 말대로 나가지 말 것을. 보지 않아야 할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구먼. 아들의 손에는 만두를 담은 비닐봉투가 들려있다. 분명히 그건 만두를 담은 비닐봉투다. 요즘 큰길 가에 만두가게가 새로 문을 열어, 나도 딸아이에게서 얻어먹은 적이 있다.
에구. 아범아. 하나에 천원인 만두. 두 개만 더 사서 드려 밀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저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대문쪽을 힐끔거리며 냅다 뛰었겠지. 딱한 녀석. 돈 이 천원이 그리도 컸더란 말인가. 어미도 만두를 좋아하는 걸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말이지.
그 아들은 입대를 해서 곱게 핀 개나리를 보며 엄마가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던 녀석이다. 또 곱게 물든 단풍잎을 말려 엄마에게 보내던 아들이다. 누가 내 아들을 그렇게 바꿔 놓았을꼬. 누가…. 나도 참 치사하다. 그깟 만두 두 개에 이리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다니.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일이다. 나도 자존심이 상하거니와, 내 아들이 욕먹는 일은 더 싫다. 그러게 효자와 불효자는 어미의 입이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아~! 참 싫다. 이런 상황이 싫다.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본다. 그런다고 그 기억이 날아가겠는가. 잊자. 잊자. 어쩌랴.
보림아~!
할미가 안 잊음 어쩔 겨. 그치?!
할미가 참으믄 평안한디. 그치?!
인생 뭐 있간디? 걍 그리 사는 겨.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