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부족한 어미로소이다
내겐 아들이 둘이 있다. 딸도 둘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있었었다.’라는 표현이 옳겠다. 지금은 며느님들의 남편으로, 사위님들의 마눌님으로 사니까 말이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그 시대에, 욕심이 많은 나는 그렇게 사 남매를 두었구먼. 그 아이들 자랄 땐 힘이 들어도 재미가 있었고, 늘 부족했지만 맘은 부자였다오.
아들들은 사네답고 정의롭게, 그리고 딸들은 딸답게 곱고 예쁘게 자라기를 이르고 가르쳤다. 그러나 네 남매에게 고루 공유하는 바램의 일 순위는 ‘신분상승’이었다. 반상(班常)의 문제가 아니라 제 부모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라는 염원이었다. 우리 내외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여유로운 고지에서의 삶을 원했다. 그건 아들이나 딸이나 차별 없는 기대고 희망이었다.
그런데 딸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자식교육’에 차별이 있었다고 앙탈이다. 아들과 딸의 교육이 달랐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막내아들까지도 제 형과 차별이 있었다며 불만이 대단하다. 내 딴에는 막내라고 지나친 사랑으로 길렀는데 말이지. 그러니까 두 딸과 한 아들이 큰아들과의 차별이 컸다는 것이다. 장자로서의 특권이 있었고 하늘만큼 큰 특별대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어미에게 장성한 딸이 말한다.
“엄마는 우리들 속옷을 방이나 베란다에서만 말리라고 하셨어요. 속옷이라 더 강한 햇볕에 말려야 하는 건데. 엄마는 속옷에 수건을 씌워 말리게도 하셨으니 우리 속옷은 얼마나 비위생적이었을까. 그걸 왜 숨겨 말려야 하고 부끄러운 일인 것처럼 몰래만 말려 입으라고 하셨는지.”
그랬다. 사내아이들이 드나드는 가까이에는 딸아이들의 속옷을 널지 못하게 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왜 크게 잘 못이라는 게야. 저희들도 아들 딸 낳아서 길러보라지. 한창 자라는 아들들에게 딸들의 속옷을 내 보이고 싶은가 말이지. 그게 나만의 이상심리(異常心理)였을까. 호호늙은 지금의 이 나이에도 나는 딸들의 이 항변에 동의(同意)하지 않는다.
“결혼하기 전엔 여자들 속옷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라고 아들이 말했더니 한 친구가,
“너는 누나도 있고 여동생도 있는데 그게 말이 되냐?”하더란다. 그랬더니 여러 친구들이,
“그랬을 거야. 어머님이 여간 철저하신 분이시냐. 쟤 어머님은 그러셨을 거다.”하더라고. 졸지에 철저한 어미가 되었지만, 듣기에 과히 껄끄럽지는 않았다.
그래서 세 아이들에게만 '못된 엄마'로 낙점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나, 큰아들은 큰아들대로 불만이 많다. 장남으로서의 사명감과 맏이로서의 책임감 외에는 특별한 대우도 없었다는 게야. 그래서 동생들은 모두 먼 거리에서 살지만, 본인은 장자라는 이유로 지금도 본가(本家)를 멀리 떠나지 못했다 한다. 그런 거 였어? 좋은 동네로 가기에는 제 능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고?
난 그동안 뭘하고 살았을꼬. 딸들에게도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엄마이고, 아들들에게도 눈 밖에 났으니 나는 도대체 뭘하고 살았단 말인고. ‘어질고 좋은 어미’로 기억 되고 싶었다. 이웃에 널리 베풀며 살지는 못했지만 내 아이들에겐 아낌없이 주고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말이지. 잘 못 살았는가 보다. 좋은 대접은 받지 못해도 어미의 청춘이 저들로 인해서 고달팠음은 알아줬으면 싶다.
보림아~!
할미가 이젠 제대로 늙은이 형세를 하는갑다. 새벽잠이 달아났구먼. 다시 잠을 청하다 생각하니 할미는 헛살았다 싶다. 삼촌이나 고모들한티서 그런 소리를 들으믄 아주 많이 슬프네?!
에구~. 할미는 ‘많이 부족한 어미’였나 벼~. 다음 생엔 내 자식들에게, 좀 더 나은 어미가 돼 봤음 좋겄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