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시집보내기 3
상견례를 하잖다. 날 잡아놓고 예식장까지 정하고는 뭔 상견례. 하자면 하지 뭐. 여러 번의 경험으로 이젠 겁도 나지 않는다. 경비는 신랑이 쓸 것이니 무슨 걱정이람. 그런데 딸년 왈,
“먼 데서 오시는데 우리가 대접해야 모양새가 좋지 않을까요?”
이런이런. 얘 좀 보게나. 벌써 제 시댁 편이네. 쓰라면 쓰지. 딸년이 시집을 간다는 데에야.
“상견례가 별 거냐?”해도, 딸년은 저보다 어미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쓴다. 제 체면이 있다나?!
호사스러운 장지문이 열리고 발을 들여놓다가, ‘아이쿠!’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젊다 못해 아직 어린 듯한 아낙이 고운 웃음으로 우리를 맞는다. 이를 어째. 안사돈의 말대로라면 댁에 계신 어르신과 같은 세대라지 않는가. 이쪽이 그리도 어려운 상대라면 내가 먼저 망가져줘야 한다. 그러면 좀은 편해질 테니까. 그렇잖아도 이어지는 침묵이 너무 무겁다 싶었으니 내가 먼저 입을 열 수밖에.
“제 사돈들이 다 외국에 계시고, 조실부모한 며느리도 있어서, 사돈들과 잘 지내며 같이 관광도 다니고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하고 제법 너스레를 떤다.
“지도 그랬는데예.”
“그래서 요번 사돈님들과는 좀 잘 엮여보자 했더니….”
“세대 차가 너무 나지예.”
그렇잖아도 주녹이 들 판인데 이 양반 쐐기를 밖네.
“예. 너무 젊으셔서 또 글렀나 봅니다. 하하하.” 이럴 땐 호탕하게 웃어주는 게 좋지.
그러자 딸년이 입을 연다.
“어머님이 너무 고우시지요?.”라고 동조하라는 듯 고갯짓을 하며 제 어미에게 눈길을 보낸다.
오메~. 얘가 벌써 시집 사람 다 됐네. 두어 코스의 요리가 들어오고 접시를 비울 무렵 다시 침묵이 흐른다. 영감이 무슨 이야기를 좀 꺼내줬으면 싶으나 바랄 걸 바래야지. 보아하니 바깥사돈도 내 영감만큼이나 입이 무거운가 보다.
“저울에 달믄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겠심더.”라며 안사돈이 웃는다.
사실은 경상도 특유의 톤이라 이 대목을 알아듣지 못했다. 뭐라 하셨냐고 물어 다시 들었다. 딸아이에게 물어도 좋겠으나, 자칫하면 귓속말이 되어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까.
“이제 하나인 아드님을 빼앗기게 됐습니다.”
“은지예. 지는 그리 안 할랍니다.”
죽어도 그리는 못하겠다는 듯이 몸을 꼬며 곁의 아들을 돌아본다.
“안사돈께서 아무리 애를 쓰셔도 그리 됩니다. 저는 이미 두 아들을 뺏겼습니다. 하하하.”
“안 되는데…”하며 옆에 앉아 그저 웃기만 하는 아들에게 강한 원정을 청하는 듯하다. 아마,
‘니는 내 맘 알제? 그라지 마라.’ 하는 눈길이다.
좀 더 강하게 어필을 해야겠는 걸.
“두고 보십시오. 곧, ‘그 늙은이 말이 맞네.’하시게 될 겝니다. 나중에 서운해 하지 마시고 일찌감치 각오하십시오.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아드님이 다칩니다.”
이 대목에서도 껄껄껄 웃어줘야 하는데, 가냘픈 한숨이 샌다. 안사돈의 심정이 바로 내 마음이었던 것을….
다시 침묵이 흐른다. 침묵이 길어지면 분위기가 더 서먹해진다. 바깥사돈에게 묻는다.
“그렇지요? 제 말이 맞지요?”하니 주저도 않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아입니더.”한다. 이크. 여기가 더 강적이었어? 이런이런! 갈수록 태산이로고.
“지는 주위에서 하도 그런 말을 마이 들어서 일찌감치 지 아들 내놨심더.”
옳거니. 이 양반은 미국식 대화를 하시는군. 바깥사돈을 아군으로 얻었고, 수준이 그 정도라면 이젠 수위를 좀 높혀도 좋겠는 걸?!
보림아~!.
네 고모가 시집을 가기는 가는 갑다. 그 입 무거운 할아버지가 상견례 마치고 한 마디 하시더라.
“안사돈이 어렵겠다.”고. 내가 다시 통역을 하자면,
“네 고모가 쉽지 않겠다.”라는 말씀이여.
근디 보림아. 어차피 며느리한테 시어머니는 다 그런 거 아니여? 네 엄마한테 물어보그라.
내는 고모 한티,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라.”혔다. 안 그냐?! 하하하. 웃자. 웃자고. 웃고 또 웃어야 속이 편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