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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시어미의 야무진 꿈


BY 만석 2011-08-12

 

시어미의 야무진 꿈


첫 출강. 수술을 하고 난 뒤로, 그럴싸한 가방을 들고 처음 강의를 나선다. 크크크. 모르는 이들이 들으면 대학의 강사나 되는 줄 알겠다. 그러나 내가 들어가는 강의실의 출입문에는 분명히 <강의실1>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그러니 나도, ‘강의를 나갔다’는 표현을 써도 그리 과하지는 않을 터. 이왕이면 근사하게, ‘출강을 한다.’라고 해도 뭐, 크게 시비를 거는 이는 없겠다. 실제로 나는 시방 모양새가 케리어우먼 이구먼 흐흐흐.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다시 복지관에 나간다는 건 나에겐 너무 큰 의미를 준다. 죽네 사네 하던 사람이 병을 얻기 전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내겐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일이다. 더욱이 예전에 나가던 그 곳에서 을 해 왔다는 건, 적지 않은 인정을 받는 것 같아서 아주 유쾌한 일이라는 말씀이야.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차차 출강 반경도 늘리고, 시간도 늘려갈 계획이다.


“어머니는 부자 되시겠어요.”

복지관에 출근을 한다는 예보를 듣은 내 며느님의 말이다. 어찌 들으면 비야냥처럼 들리겠다. 아니면, ‘얼마나 받느냐?’고 묻고 싶은 걸 우회적으로 하는 말이라고도 들린다. 그녀의 말이 비야냥이라면 그건 그냥 ‘부러움’의 표현이라고 해 두자. 그리고 얼마를 받는지를 알고 싶다면 것도 말 해주지, 뭐. 어려울 게 있어? 감히 내놓으라고 하지는 않을 터이니.


“아~. 복지관에 나가는 건 자원봉사야. 이렇게 길을 트면 차차는 유료 출강도 하게 되는 길도 생기지.”

“아~. 좋으시겠어요. 그럼 신문사는요?”

“그건 겸해서 그냥 나가구. 매일 나가는 거 아니고 글 써서 컴으로 올리는 거니까.”

“네에~.”

그의 대답에서 ‘부럽습니다.’하는 마음을 읽는다.


왜 아니겠어. 지금은 아기 때문에 집에 붙잡혔지만, 저도 사회생활을 하고 싶지 않으려고. 허긴. 그 아이의 어릴 적부터의 꿈이 희한하게도 ‘현모양처(賢母良妻)’였다지? 어드런 게 현모양처인지 알기나 했었을까. 아무튼 그녀가 어렸을 때 꿈꾸었던 현모양처는 오늘 날의 현모양처와는 그 판세가 다름을 나는 잘 안다. 배불리 밥을 해먹이고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따른다고 현모양처는 아닐 터. 그러니 그녀도, ‘사회생활’을 꿈꾸겠지.


갑자기 고민이 생긴다. 며느님이 직장을 가지면? 그러면 이 시에미는 집에 붙잡히는 겨? 아닐 겨. 내 아들의 지론에 의하면 아이 곁에는, 그것도 어린아이 곁에는 반드시 엄마가 있어야 한다지 않는가. 허나 것도 이젠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가끔은 맞벌이를 하는 친구들 이야기를 부러운 듯이 하지 않던가. 며느님의 꿈이 바뀌고 아들의 의식변화가 사실이라면…. 어~라. 그럼 난? 나도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겨? 집에서 아가를 봐야 하는 겨?


손녀는 매일 아니, 매 시간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는다. 세상에 비할 것이 없이 귀하고 예쁘다. 그러나 아기를 하루 종일 맡아서 봐야 한다는 건 좀…. 더군다나 이젠 좀 컸다고 제법 떼를 쓴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에 고집도 부린다. 아구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머리가 실제로 미치려한다. 안 되지. 난 아직 젊은디? 얼마든지 사회활동을 할 수도 있고 할 곳도 많은디? 그럼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용이 해? 것도 아니겠다. 등이 굽고 허리 휘어서 하긴 뭘 해. 눈곱은 끼고 그릇의 때도 보이지 않을 때, 저희들이 싫어서라도 설마 밥을 시켜 먹으려고?! 하하하. 이 어줍잖은 시에미는 꿈도 야무져.  

 

책상에 앉은 할미와 놀고 싶다고 조른다- 아구 이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