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미의 놀이터
지난번에는 서울의 내 <놀이방 이야기>를 했으니, 오늘은 시골의 내 <놀이터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놀이방은 말 그대로 노는 방이고, 놀이터도 말 그대로 노는 터를 말함이겠다. 그러니까 노는 곳이 한쪽은 ‘방’이고, 한쪽은 ‘터’라는 게지. 법적으로나 문법적으로 어떻다는 건 난 잘 모른다. 그저 내가 그렇게 부르고 싶을 따름이다.
시어머님이 생전에 말씀하셨다. 시집이라고 와서 보니, 송곳 하나 꽂을 곳이 없었노라고. 시집을 들어서고 사흘 만에 김치죽을 쑤라 하셔서, 그게 혼사 뒤에 치르는 시댁만의 정례(定例)인 줄 아셨다고. 그러나 그로부터 매일 김치죽을 쒔고, 그릇을 채울 때마다 그 수를 잃어서, 당신의 것은 늘 차례가 오지 않았더라고.
그렇게 어려운 시집을 살면서, 시부모님은 억척으로 가세(家勢)를 일으켜 세우셨더란다. 외아드님(내 남편)을 풀숲에 머리 들이밀지 않게 하려고, 그 손에 낫자루 한 번을 쥐어주지 않았노라고. 그래서 서울로 유학을 보낼 형편이 되었어도, 부모님은 낫과 호미를 놓지 않으셨단다. 허긴. 내가 결혼을 하고 시골에 입성했을 때에도, 시부모님은 머슴보다 더 일을 많이 하시는 걸 보았었지.
시골의 시(媤)자(字)도 모르던 내가 시댁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시골의 일은 내 일이 아닌 채 살아야 했으니, 내 시부모님은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 그렇다고 그분들이 내게 역정을 낼만한 만만한 며느리가 아니었음을 나는 잘 안다. 경재력이 있는 며느리는, 그래서 시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리 탐탐한 며느리는 아니다. 더욱이 당신의 경제력이 탄탄한 내 시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셨을 게다.
실제로 시어머님은 당신의 재산이나 부동산을 아들과 논의 할 때면, 늘 나를 배제(排除)하셨다. 정담(情談)을 나누다가도 그것이 당신의 재산에 결부되면 나를 경계하셨다. 그렇게나 철저하시던 부모님은 아드님에게 많은 걸 하사하고 돌아가셨다. 당신이 없는 시방 당신이 원하던 대로 되지 않았음이 오히려 송구스럽다. 우리 집 경제가 내 손 안에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당신의 집과 텃밭이 내 놀이터가 됐으니.
다른 농토는 소작을 주었으니 그 소득이 얼마가 됐건, 시부모님의 소원대로 남편의 통장에 넣는다. 며칠이 못 가서 모두 출금(出金) 되어 내 손에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그게 시부모님이 원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집과 150평의 텃밭은 옹골지게 내 놀이터가 됐다. 물론 명의까지는 아니지만, 내 손에서 가꿔지니 내 터임에 틀림이 없겠다.
고추도 심고 상추도 심고 부추도 심어서, 요새로는 제법 밭다운 면모를 보인다. 가을 철 김장 배추와 무를 갈아 놓으면, 뒷짐을 지고 서서 헛기침을 해 보일만하다. 금방 딴 오이를 제자리에서 어석어석 씹어 먹는 맛을 누가 알까. 아직 토마토는 꽃도 피우기 전인데, 토마토 밭에선 토마토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가지? 작년엔 주책도 없이 너무 많은 모종을 하는 바람에, 가지에 치어서 미처 갈무리를 해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해서 내가, “쓸 데 없이 가지만 많이 달린다.”고 투덜댔더니 영감 왈, “당신이 작년에 구박을 해서 올해는 가지 맛을 보지 못한다,”하여 웃는다. 올해는 장마가 일찍 들어서 토마토며 오이 등도 수확이 어렵겠다.
수확을 따지고 수판알을 굴리자면, 주말마다 굴리는 자동차 기름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오고 가는 길의 여정과 열매가 맺는 걸 보는 재미가 제법 짭짤하다. 집으로 돌아 올 때마다 내 두 손과 영감의 두 팔이 버겁도록 수확을 해 온다. 고추며 상추며 치커리며 쑥갓이 한 가방이고, 오이고추와 피망과 노각이 한 가방이다. 호박은 장마에 때를 놓치는 바람에 씨가 찼으나, 껍질을 벗기고 속을 긁어 새우젓에 볶으면 제법 맛을 낸다. 또 깻잎은 어떻고.
허리 한 번을 펴지 못하고 풀을 뽑고 수확을 하고 삽질 호미질을 하지만, 귀가 준비를 할 때면 늘 분주하다. 올망졸망한 보따리를 영감이 차에 옮길 때마다 소리친다. 그만 일어나라고. 아직도 할 일은 많은데…젠장. 이것도 더 따고 저것도 더 캐고. 가져만 가면 이웃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은가 말이다. 농약을 주지 않은 것들이어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미경이 네도 경은이 네도 월요일이면 놀러 오라고 했는데…. 얻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은 배가 된다는 걸 영감은 모르나 보다.
수확한 것들을 차에 싣고 노을을 감상하며, 자유로를 논스톱으로 달리는 기분이라니. 영감은 기분에 맞춰서 트로트를 틀어주기도 하고, 추억의 팝송을 들려주기도 하고 샹송도 틀어준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면 어떻고 이박사의 트위스트 메들리면 어떠리. Connie Francis의 <Lanovia>면 더 좋고, Yvette Giraud의 <Le Pont Mirabeau>도 좋지 아니한가. 그의 <jeux interdits>는 더 좋고 7월이지만 그의 <AVRIL AU PORTUGAL>은 더 좋지. 것도 싫증이 나면 Elvis Presley의 <Houn Dog>도 Ann Marcgret의 <Slozwly>도 좋지.
이건 순전히 내 놀이터가 있기 때문에 덤으로 얻은, 영감과의 말년의 로맨스(?)다. 다 늙어빠져서 로맨스는 무슨 로맨스냐고 하겠으면 하라지. 내가 그렇다는 데에야 누가 말려. 그리고 그 놀이터는 내 시부모님이 내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 귀경하는 길가에 두 분을 모신 가족묘지가 있어서, 그분들에게 늘 감사하는 말을 건넨다. 그럴 때마다 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묵직한 게 목구멍까지 치민다. 살아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도가 이 나이에도 죄송한 게 너무 많아서다.
놀이터에서의 그 일이 내 체력의 한계를 넘는 적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의 타박을 듣지만 그래도 그곳이 좋은 데에야 어쩌리. 깍깍 거리는 개구리의 합창을 들으며, 붉은 노을이 어우러지는 장관을 감상하며, 나는 곧잘 서방님 따라서 시집오던 길을 새삼스럽게 추억한다.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든가 저기든가 OO꽃 곱게 피어있던 길….“ 이제는 가사마저 아련하다. 핸들을 잡은 영감의 얼굴을 살짝 훔쳐보니 그이도 싫지는 않은가 보다. 그이도 내 콧노래에 옛날 생각을 하겠지?!
(놀이터에서)
(내 며느님도 미래에 이 시어미만큼 즐거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