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의 이별
공항의 이별을 하고 왔다. 조용하게 내리던 비가 공항의 주차장을 빠져나올 때쯤엔 제법 그 줄기가 굵어졌다. 이쯤의 비에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데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영감이 말했다. 그래도 기류가 조용하지만은 않았겠지 싶어 걱정이다. 일본의 원전 사고로 급히 피난을 온 며느님과 손자가 출국을 하는 날이어서, 영감이 출근을 마다하고 나와 같이 공항까지 태워다 주고 왔기 때문이다.
참 만감이 진다. 아직은 원전 사고가 마무리가 된 것도 아니나, 내 작은아들은 며느님의 지아비란 이름으로 아직 일본에 채류 해 있으니 어쩌겠는가. 아무리 눈을 부라리고 아들을 불러들이려 해도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니… 내가 지는 수밖에. 자식은 품 안에 있을 때만 자식이라던가. 그리도 순둥이던 녀석이었는데, 이제 가장이 되어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졌는가 싶어 내 마음이 짠하다.
우리 부부는 공항에서 집에 도착하기까지 한 마디도 말이 없었다. 굳이 할 말이 없었다. 쏟아지는 비를 닦아 내는 차장의 윈도브러시의 움직임만 부산한데, 막내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기분이 그러시죠?”
‘이건 기분이 안 좋으시지요?’ 하는 말이겠다.
“뭘. 어차피 가려니 하던 녀석들인데….”
내 대답에 맥이 빠진 모양이다. 딸아이가 내 기분을 돌리려고 넉살을 떨었다.
영상통화를 할 량으로 컴을 켜니, 녀석이 벌써 공항으로 마중을 나간 모양이다. 컴이 꺼져있다. 허긴. 하네다공항까지 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 잘 도착했다고 전화가 어서 좀 왔으면 좋겠다. 이젠 아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갔으니, 그 동안 수고한 큰 며느님과 큰딸아이에게 치사를 좀 해야겠다. 어떻게 한다? 큰 딸아이는 한 달이나 데리고 있었으니 생활비를 좀 주려했더니 펄쩍 뛴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리도 인심이 야박스러웠냐고 앙탈이다. 고마운 일이다.
큰 며느님도 주말마다 제 아랫동서를 맞아서 시중하느라고 애를 많이 썼다. 뼈지지 못한 성미에 언짢은 일도 있었으련만 내색을 하지 않았으니 용하다. 시어미는 부모의 자리라 이래라 저래라 교통정리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길게 있을 사람도 아니었으니 나도 뼈지게 짚어 시어미 노릇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하여 그리 골이 깊은 일이 아닌 바에야 스스로 둘이 해결하도록 빠지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내 큰 며느님이 속이 더 썩었겠지. 왜 저라고 혼자 집안일을 떠맡고 싶었으리. 큰사람 노릇하느라고 애를 많이 썼음을 이 시어미 눈에도 보인다. 고마운 일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위로를 해 줄꼬.
<내 동생이 없어서 심심합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포포를 업혀 주셨습니다. 동생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