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야기3
그러고 보니 명절이 와도 찾아 갈 친정이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쉬고 싶으면 오라비나 친언니를 찾아도 좋으련만……. 내 며느님은 올해도 뜻이 없는 모양이다. 허긴. 친언니는 그녀의 시댁이 있을 것이고, 올케나 오라비가 부모만 하겠는가. 딱하지. 그래. 내가 생각해도 딱한 일이다. 그래서 처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내 아들도 늘 딱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제 댁의 외로움이 더 딱한가 보다. 그래서 동생에게 슬그머니 뜻을 전하고, 제 뜻이 어미한테 흘러 들어가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처지는 딱하지만 썩 개운한 기분은 아니다. 마음 한 구석에 섭섭함이 있다. 어미는 지들을 40년이나 밥을 해 먹였는데.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난다.
“니가 섭섭하게 하는 건 ‘그러려니…’하는디, 애비가 섭섭하게 하는 건 눈물이 나는구먼.”
그러니까 며느리에게는 해 준 것도 없는데, 내 집안에 와서 희생하는 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는 말씀이셨다. 거기엔 엄니가 경험하신 시집살이의 서러움이 첨가가 됐음직하다. 그런데 불면 나를까 안으면 으스러질까 고이고이 기른 아들에게서는, 작은 일에도 큰 섭섭함으로 다가온다고. 내가 시방 아들에게 더 서운한 건. 내가 그때의 시어머니 적 나이가 되었다는 걸까?
아들 내외는 아마 명절 휴가가 끝나는 주말에 떠날 생각이었던가 보다. 영감이,
“토요일엔 시골 산소에 다녀오자.”고 하자 아들이 적지 아니 당황한다. 그리고는 제 방의 며느님을 알현(?)하러 급히 들어간다. 어쭈구리?! 무슨 짓이람. 감히 아버지가 그리하자 하는데. 며느님이 허락(?)을 했는지, 방에서 나온 아들이 그러자는 뜻을 비친다. 나는 그러는 게 참 싫다. 아버지의 하명(?)에 꼭 마누라의 제가를 얻고서야 대답을 하는 아들이 싫다는 말이다. 아버지에게는 선 자리에서ㅓ 알았다는 동의의 뜻을 올리고 , 제 댁에게는 고하기만 해도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제 댁이 싫다고 한다는 말을 전할 수는 없을 터인데. 내 아들이 이런 식으로 제 댁의 의견을 앞세우는 게 싫은 게다.
그래도 나는 어른다워야 한다. 아래 사람이 모자라는 생각들을 한다고, 나도 같이 그리 할 수는 없지. 생각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지 싶다. 차라리 친정에도 못 가고 하니 하루쯤 바람이나 쏘여주겠다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딱한 마음에 흔쾌히 다녀오라 했을 것을. 밥 하는 거나 하루 면하게 해 주고 싶다는 주석은, 시부모의 끼니 차리기가 그동안은 썩 내키지 않았었다는 뜻이 아닌가. 물론 즐거운 일은 아니었겠으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서 늘 면하고 싶었다는 말이겠다. 그럴라치면 분가를 할 것이지. 누가 잡아? 나도 모르는 어느 새에 큰아들과 내 사이가 이렇게 서로를 곱씹어 이해해야 하는 사이가 됐다는 말인가. 작년까지만 해도 생각 없이 주절거려도 서로가 허허 거릴 수 있었는데…….
“다녀오너라.”한 마디를 던지니 어미의 시원찮은 손쯤은 걱정도 없이 희색이 만면하다.
명절 휴가 끝의 주말을 지나고 다음 주말.
어미가 아침을 챙겨먹고 설거지가 끝나도록 매 주말마다 늦잠을 자던 아들내외가, 오늘은 일찌감치 일어나서 점심을 챙기는 속도가 유별나다. 아마 점심을 먹고 나설 모양이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짐을 챙기니, 또 이른 저녁이 걸린다. 우유 먹이는 아이가 있으니 챙길 짐이 적지 않겠지. 저녁밥을 가스 불에 얹고는 서둘러 나선다. 만사가 곱질 않다. 저녁을 먹고 나가면 돈이 덜 들 것을. 허긴. 그러자면 또 저녁 설거지를 해야 하고 또……. 아주 늦어지게 마련이지. 이해는 각지만 어째 심사가 불편하다.
“애기가 죽을 먹어야 하는 데 죽을 좀 싸 가지고 가지.”
“거버랑 이유식 넣었어요.”
“그런 거 먹어도 죽을 먹는 아이잖아.”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아들이 뚱한 말로 제 댁을 재촉하며 짐을 든다. 그렇게 세 식구는 ‘시부모의 밥하는 일’을 피해서 급한 발걸음으로 집을 떠난다. 어서 벗어나고 파서. 누가 뒤에서 잡기라도 하는 듯이…. 이제 대문을 나섰으니 홀가분하겠구먼.
세 식구가 떠나니 집이 텅 빈 것 같다. 부산을 떨던 손녀가 없으니 빈 집 같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기의 끓여놓은 죽이 있다. 지들 아니 제 댁 편하게 해 주자고, 죽 먹는 아이를 어쩌자고…. 걸레 바가지에 시꺼멓게 찌든 걸레가 하나 가득이다. 원래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다. 그러나 걸레가 행주랑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정갈하게 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나는 아직 걸레를 비벼 빨만큼 손이 자유롭지가 못한데 누구더러 빨라고. ‘엄니. 엿 먹어보슈.’하는 겨? 왜? 내게 그런 감정 가질 이유가 없는데. 아침에는 밥걱정도 없이 정오까지 자지만 누가 뭐라 해. 점심을 챙기지 않아도 누가 뭐래. 시어미를 너무 쉽게 보는 겨? 까짓. 아침 점심이야 늘 내가 챙겨먹었고. 문제는 저녁 한 끼? 그걸 못할까봐?!
주말이니 영감도 있고 막내 딸아이도 있지만 집안이 고요하다. 누구와도 할 말이 없다. 영감은 마누라가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 그만이고, 타다 놓은 커피도 서로 제 것을 찾아 마시면 그만이다. 안방의 티브이 채널이 맘에 들지 않으면 거실의 티브이를 켜면 되고. 며느님이 없으니 영감도 제 손으로 냉장고를 열어 손수 물도 마시고. 사과도 꺼내 자시네. 그건 좋구먼. 아, 좋은 건 또 하나 있지. 손녀 딸아이를 안방에다가 자꾸 밀어 넣는 아들내외 때문에,어깨도 아프고, 수술 뒤에 더 조심하라는 내 손은 의사의 말이 무색했었는데…. 손녀딸이를 안지 않으니 팔 저리는 게 훨씬 덜 하구먼. 지들도 우리가 아기를 봐줘서 좋았다고 생각은 할까.
가끔 들락거리던 딸아이가 저녁 약속이 있다고 나가니 집이 한층 더 적막강산이다. 싸운 것도 아닌데 영감이랑 할 이야기 거리가 없다. 이른 저녁을 해 먹었으니 궁금할라 싶어서 냉동실의 만두를 쪄다가 말없이 밀어놓는다. 영감도 말없이 집어다 먹는다. 아구야~. 답답해. 우리 손녀딸은 언제나 오는 겨. 사람 사는 거 같잖네. 내일 이만 때는 돼야 돌아오겠지. 내일은 마트에 나가서 아가 머리핀이나 몇 개 골라 봐야겠군. 머리핀을 물어뜯어서 성한 게 몇 개 안 되더라니. 아가. 너는 이 할미가 안 보고 싶은 겨? 그런 겨? 쌩긋 웃는 손녀의 예쁜 얼굴이 보인다. 나, 다 풀어졌남?!
다음 날 저녁 무렵. 아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저녁에 좀 늦게 들어가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그래라.”
“얘가 저녁 하러 들어가야 한다구 해서…….”
묻지도 않았는데 하지 않아도 좋을 소리까지를 주절거린다. 제 댁이 저녁 걱정을 한다고? 들어가서 저녁 하기 싫다고 한 건 아니고? 나갔다가 들어와서 저녁 하기 정말 싫은 건 나도 알지. 암. 알고말고. 그러나 이왕 나왔으니 저녁 하는 거까지 면하게 해주고 싶은 건 아들 쪽일 게다. 아들의 속이 너무 빤하게 보인다. 아들~. 댁 덮어주기도 눈치껏 하시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