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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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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망가지는 시어미


BY 만석 2010-12-06


 

망가지는 시어미


  오늘은 며느리 이야기를 좀 하자.

  아침을 먹고 주방으로 향한다. 국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니 2인 분은 되겠다.

  “탕은 저녁에 오빠랑 아버지 한 번 더 드시게 해라. 점심에 우리는 누룽지 끓여 먹자.”

  “왜요?”

  엉뚱한 그녀의 대답이다. 그녀의 대답에 조금은 뾰족한 가시가 들어있다.


  “…….”

  대답의 진의를 몰라서 멀뚱하게 섰으니,

  “점심에 우리 먹으면 안 되나요? 밥 말아서 먹고 싶은데…….”한다.

  어깨를 움츠리며. 조금은 입을 내민 것도 같고. 심통 떠는 막내 딸아이 같기도 하다.

  “오~ 호호. 그래. 네가 먹고 싶구나. 그래. 네가 먹고 싶으면 그래라.”

  참 많이 모자라는 시어미로군. 며느리의 입을 미처 생각지 않았으니.

 

  반가운 일이다. 그녀와 나 사이에 안개처럼 끼어있던 뭔가가 스러지는 기분이다.

  며느리와 같이 산 2년. 생소한 시집의 분위기와 어렵기만 한 시부모. 게다가 예정에 없던  연상의 손아래 시누이를 결혼 1년 만에 맞아, 신혼 살림살이가 기득한 방을 하나 내 주기도 했으니……. 입맛 까다로운 시아버지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시어미. 그리고 어수룩하지 않은 시누이. 뒤이어 맞은 손아래 동서와의 경쟁이, 내색은 않지만 심리적으로 왜 신경이 쓰이지 않았겠는가. 그게 바로 시집살이 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며느리는 절대로 딸일 수 없고, 시어미는 친어미가 될 수도 없다.’고들 하지. 암. 그렇지. 굳이 프로이드(Freud)의 정신분석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거하게 세계의 윤리관(倫理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건 진실이다. 그러나 시도(始賭)는,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지. 딸처럼 보고 엄마처럼 보이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는 말이야. 우선은 내가 좀 망가져 줘야 하겠다. 그래서 수월한 시어미가 되자. 잘잘 끄는 홈드레스도 벗어버리고 몸베를 입자꾸나. 잠옷을 입은 채 거실로 주방으로 돌아치고. 며느리가 듣거나 말거나 에헤라 디여~ 노래도 부르고…….


  그렇게 제법 많은 날들이 지났으나 조금의 진전(進展)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망가져도 시어미는 어쩔 수 없는 시어미인가. 그런데 오늘 아침에서야 놀라운 변화가 있음이 확인된 게다. 단순한 생각으로 글만 읽으면,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라는 며느리다. 어제 저녁 막내딸이 친구들과 외식을 하다가, 유별나게 맛이 좋아서 아빠 엄마 몫으로 포장을 해 왔다는 이름 있는 식당의 갈비탕. 그걸 며느리가 먹겠다고 한다. 특별히 딸아이가 고기를 더 주문해서 넣었다 하더니, 먹음직스럽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허긴. 요새 애들 제 말 다 하고 산다지?


  헌데 그게 그리도 반가운 소리더란 말씀이야. 앞에 선 며느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그래그래. 고기 많이 넣어서 많이 먹어라. 어제 아버진 드셨으니 저녁엔 시원하게 무국을 끓이자. 먹어먹어.”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만은 인색하면 안 되지. 아무리 위계질서(位階秩序)가 어떻다 해도. 특히 몸이 약한 내 며느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제 겨우 43kg이란다. 50kg으로 만드는 게 내 목표다. 먹어라 먹어 많이만 먹어라. 것쯤은 아깝지도 밉지도 않다는 말씀이야 ㅋㅋㅋ.

 


(엄마가 준비한 오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간식은 대봉시입니다.

나는 그림의 떡. 변비 생긴다고 엄마가 먹지 말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