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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님은 왜?- 사랑받고 싶은 시어미


BY 만석 2010-01-13

 

사랑받고 싶은 시어미

  

  아가.

  너나 나나 무슨 죄로 이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을꼬. 단지 ‘여자’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기 때문이라면 너무 가혹한 시련이지. 어제까지는 해 주는 밥을 먹고 손질해 놓은 옷을 걷어 입으며 ‘딸’이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오늘부터 ‘시집’이라는 생소한 집의 ‘며느리’로 산다는 게 차라리 비참한 시련이 아니더냐. 제~엔장! 그래서 나도 그 알량한 ‘고추’라는 것을 놓치고 태어난 것을 이 시간까지도 후회하고 있구나.


  생각해 보렴.

  남자라는 인간들은 말이다. 단지 그 알량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한 뒤에도 어제의 영광을 계속 이어가지 않더냐. 먼 데 있는 사람들 다 접어두고, 네 시아버님과 네 신랑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말이야. 그저 수발드는 사람이 달라진 것뿐이지. 결혼과 동시에 먹여 주고 입혀 주는 외에 또 다른 큰 사랑도 영위하게 되어 있으니 고추는 달고 나올 만도 하겠구먼.


  그러니 어쩌겠어.

  내 손으로 조물조물 만들어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을. 그래도 여자가 되고 싶은 남정네들은 성전환(性轉換)도 하더라만, 세상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그것이더라. 아항~! 가꾸고 꾸미는 미(美)의 유혹에 빠지면 그리 되는가 보더라. ‘원래 타고난 여성성(女性性)의 경향’이라는 이유라는 게, 내가 생각 하건대는 후천적인 문제인 것 같더라. 나는 원래 명예를 중(重)히 여기는 사람이라서, 남성들이 여성으로의 성전환을 한다는 건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로구먼.


  남의 얘기는 해서 뭘 하겠니.

  우리는 우리의 얘기만 하자꾸나. 오늘 아침처럼 말이다. 사실은 오늘 아침을 벌써 보름은 넘게 벼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날, 특히 네 시누이가 없는 너와 나만이 집을 지키는 날을 잡자 하니 그리 오래 걸리더구나. 시누이가 연상이긴 해도 네가 손 위인 것을. 나는 서열(序列)도 중시하니 말이다. 굳이 그 자세가 편타고는 했지만 배부른 며느님 무릎 꿇게 하고, 쥐뿔이나 돼먹지 못한 시어미 노릇하자 하니 맘은 편치가 않았다는 말씀이야. 그러나  긴 날을 너와 내가 좋은 날로 살자 하니,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기에 그리 했구나.


  얘야.

  천하(天下)에 어리석은 여인(女人)이,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한다.’ 라고 한다지? 그러나 나는 천하에 어리석은 여인임을 자처(自處)하련다. ‘결혼을 한 아들을 내 아들’로 아는 여인도 천하에 어리석은 여인이라 한다지? 그러나 결혼은 했어도 내 아들은 변함없이 내 아들이기에, 나는 부끄럼 없이 ‘어리석은 여인’임을 재차(再次) 시인하련다. 어리석다 못해 머저리가 될지언정 그게 내 마음인 것을 어째. 너를 딸로 생각하는 내 마음을 액면 그대로 좀 받아주면 안 되겠니?! 그러면 머저리 같은 내 마음이, 잠시라도 위로(慰勞)라는 것을 좀 받을 수 있겠는데…….


  그리고 좀 전엔 고마웠다.

  처음 우리의 만남이 있던 그때로부터 꼭 일 년을 지내면서, 우리 사이가 많이 소원해졌다는 거 공감(共感)해 줘서.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딴에는 조근조근 좋은 소리로  타일렀다고는 생각한다만, 대구 없이 조용히 앉아 들어만 주어서 정말 고마웠던 게야. 내 말에, ‘이건 아닌데요.’, ‘저건 그렇잖아요.’라고 딴지를 걸었더라면, 아마 내 못 된 성미에 발동이 걸렸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넌 끝까지, 그동안 내게 서운했던 거 말해 보라고 해도,

  “없어요. 어머님. 진짜 없어요.”

  “다음에 생각나면 말씀드릴게요.”라고만 일관했지. 그럴 리가 없을 터인데…. 지금 생각하면 네가 그리 처신해주어서, 우리가 아주 우아한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서 많이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안아주고 싶게 예뻤다.

  너도 마음을 추스르느라고 네 방에 잠깐 머물더구나. 곧 나와서는 빨래 대에 널린 빨래를 보고 금새 밝은 얼굴로,

  “어머니가 빨래 너셨어요? 그냥 두시지.”

  “어머니. 세탁기 수도꼭지 잠그셨어요?”

  “어머니. 차 드시겠어요? 뭘로 드릴까요?”했지? 그리도 예쁠 수가……. 보아라. 모자라긴 해도 네 시어미란 물건이 고래보다는 낫지 않으냐. 고래도 비위를 맞춰 주면 춤을 춘다지 않던? 유자차가 그리 절묘한 맛을 낸다는 걸 오늘 아침에서야 알았구먼.


  오늘 너와 나의 ‘안방대담’은 일방적인 내 훈계(訓戒)가 되었다만, 우리가 진정한 한 식구가 되어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렴. 사실 내 말이 하나도 그른 말은 아니었잖느냐. 곧 태어날 우리 손자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기 위한 게 나만의 욕심은 아니지 싶다. 그래서 우리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너와 내가 잘 맞춰져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야.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 서로가 마음으로부터 진정 사랑하자는 말씀이야. 알았쟈? 곧 아가가 태어나면 너도 우리 집이 그리 ‘어려운 시집’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게야. 아가가 우리 식구들을, 특히 너를 많이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자~. 이제 내가 진심으로 널 사랑한다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다. 정말, 정말 널 사랑해~. 사실은……, 나도 너한테 사랑받고 싶은데……. 이것도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