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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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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엄니와 시누이와 딸과 깍두기


BY 만석 2009-12-23

 

엄니와 시누이와 딸과 깍두기

 

   결혼을 한 딸아이가 급히 대문을 열고 들어선다. 늦잠을 자느라고 아침밥을 거르고 왔다 한다. 가방을 소파 위에 던지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던 아이가 반색을 한다.
  “으~음. 깍두기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그래. 마침맞게 잘 익었더라. 밥 비벼먹어라.”
  “그래야지요. 비벼먹어야지.” 
  평소에는 비빔 질을 잘 하지 않는 아이인데, 시뻘겋게 비벼진 밥그릇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커다랗게 한 수저 퍼 넣고는,
  “와~우. 역시 엄마 맛이야. 엄마 솜씨가 최고야 최고!”한다.
  딸아이는 다른 반찬엔 손도 대지 않고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다. 딸아이가 막 대문을 나서려는데 다섯째 시누이가 들어선다. 아직 점심은 이른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땐 나도 비켜 주는 게 옳겠다. 엄니와 따님의 이야기가 한참 길어질 테니 말이다. 딸아이 뒤를 따라 대문을 나서서 그녀를 배웅하고 내 가게로 들어선다.

  잠시 뒤.

  “언니. 국 데웠어요. 점심식사 하세요.”
  “벌써?”

  “아침이 시원찮았는지, 배가 고프네요. 자장면 시키려고 했는데 깍두기가 맛있어 보여서……. 밥통에 밥도 많이 있던데요. 언닌 면도 안 좋아 하잖아요.”

  하던 일을 접고 시누이를 앞세워 주방의 식탁에 마주앉는다.
  “반찬이 이래서 어쩌나…….”
  “깍두기가 맛있던 걸요.”

  “마침 잘 익었어요.”
  “우리 깍두기는 요번에 맛이 별로였는데……. 무가 좋았나 봐요.”
  “무가?!”
  “무가 맛이 있는 무였나 보다구요.”
  “…….”
  시누이가 대구가 없는 올케를 쳐다본다. 마주앉은 시누이의 눈을 아니, 그녀의 입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올케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이왕에 하는 말이면 언니 솜씨가 좋다고 말할 것이지. 기껏 ‘무가 좋은가 봐요.’가 뭐유? 누가 시누이 아니랄까봐. 무는 열흘 전에 사왔던 거라, 시들시들해서 양념만 버리는 거 아닌가 걱정을 했구먼서두……. 같은 말이면…….”
  시누이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는다.

  “우리 형제가 원래, 말 주변이 없잖우. 우리 시 어머니도, ‘너는 참…….’하신다구요. 킥킥킥.”
 

  시누이 나이 오십이 넘고 보니, 이런 대화도 격의가 없어서 좋다. 그래도,
  “딸이랑 시누이는 이리도 다르구랴.”라고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랴. 무가 좋으믄 김치고 깍두기도 맛이 한결 다르다니께?!”
  ‘가제는 게 편’이라 했던가? '초록은 동색‘이라 했다지? 가만히 계셨음 좋았을 것을…….
  우리들 이야기에 무심하게 앉으셨던 엄니의 한 마디에 내 심사가 꼬인다.
  “엄니두 그려유? 아, 이왕이믄 지 솜씨가 좋다 하믄 안 좋아유? 따님 편 들자구 꼭 고모 따라서 무가 좋았다구 하신 겨유?”
  엄니 청력을 걱정한 내 목청이 컸을까? 아니면 꼬인 심사에 눈꼬리가 치켜졌었을까.
  “아이구. 너는 어린애같이……. 진짜루다가 무가 좋으믄 김치 맛도 난다니께.”
  시누이와 마주앉아 웃으며 하던 말이, 엄니의 참견으로 배배 꼬이고 말았다.
  이구~. 엄니요. 내가 엄니 맘 잘 알지요. ‘제 솜씨를 칭찬하라.’는 말은 못 들으시고, ‘무우가 좋으면 김치 맛이 난다.’는 소리만 들으신 거지요? 아니면,
  “그랴~. 언니 솜씨가 날로 월장(越牆)을 한다니께.”하셨겄지유?
  으헤헤헤. 엄니요~. 결국 제 자랑이 길어졌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