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년과 며느님
목요일 오전 10시.
“딩동~♪ 딩동~♪” 인타폰이 운다. 보나마다 막내딸년이다. 목요일
낮에는 강의가 없어서 오전 강의가 끝나면 바로 내 집으로 출근을 한다. 엄마의 기술을 전수하겠다는 핑계는 일찌감치 접어두고는, 내 등에 기대어,
“엄마. 나, 10분만….”한다. 그 10분은 서너 시간이 되기도 하고, 오후 강의가 없는 날은 열 시간이 넘기도 한다. 제 말대로라면 아빠 엄마를 보기 위한 핑계라 하니 그도 좋다.
전날 잘 자고 난 날은 내 뒤를 따라 다니며 끝없이 잔소리를 해댄다.
“엄마 엄마. 지금 엄마 눈썹이 짝자기인 거 아세요? 왼쪽이 올라갔어요.”
“요기 화운데이션이 뭉쳤네요. 잘 펴서 바르세요.”
“요기는 솔로 닦으세요. 엄마는 안 보이시나 본데요. 요기 때가 꼈어요.”
이런이런.
“니가 내 엄마 해라.”라고 하지만, 그런데 그 잔소리가 듣기에 살갑다는 게 신기하다.
그도 보통 쉬운 일은 아니겠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남편의 ‘다이어트용 아침’을 먹이고 또 ‘다이어트용 도시락’을 싸서 들려 보내고 저도 앉아 보지도 못하고 왔다갔다 아침을 먹고는 출근을 한댄다. 그녀는 사위의 사무실에서 소문 난 ‘양처(良妻)’라고 사위가 자랑을 한다, 그러구도 목요일마다 친정을 드나들어?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겠다. 혹시 일이 생겨서 오지 못하는 날엔 나도 그리 심심할 수가 없다. 다음 주일의 목요일까지를 ‘석삼 년’ 같다고 표현한다. 거리에서 들리는 ‘엄마~!’ 소리에 벌떡 일어나 내다보고는 한다.
주말의 토요일 저녁.
“안뇽하세여~♪” 이건 보림이의 <깜짝 쇼>다. 이만 때면 보림이네 세 식구의 방문이 일과이어서, 영감과 나는 현관 쪽으로 두 귀를 쫑끗 세운다. 대문 여는 소리가 나고 현관 열쇠 돌리는 소리. 신발 벗는 소리. 뒤이어 거실의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보림이는 늘 그 <깜짝 쇼>에 즐거워하기 때문에, 영감과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척,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해 보인다. 깔깔거리며 품에 안기는 손녀딸과 뽀뽀 세례를 주고받는 재미도 짭짤하걸랑.
아들내외는 커피를 타서 마시고, 보림이는 이제부터 광란의 시간을 보낸다. 층간소음이 조심스러워서 늘 ‘살살~! 살살~!’하는 어미의 걱정을 들으며 지내기 때문에,
“엄마~! 할먼 네서는 이렇게 뛰어도 되지? 이렇게.”라며 일없이 펄쩍펄쩍 뛰기도 한다. 사촌이 있으면 같이 놀겠으나 그렇질 못하니 영감을 일으켜 세우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고 하기도 하고 영감의 손을 잡고 술래잡기를 하자고 하기도 한다. 그걸 영감이 즐기는 게 신기하다. 내 아이들 자랄 땐 손 한 번 잡아주는 일 없더니만 말이야.
그래서 우리 내외는 손녀딸과 즐겁지만 아들내외는 식탁에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에 심취해 있다. 오히려 말썽쟁이 딸아이를 우리에게 맡기고 시방은 여유를 즐기는 중이다.
“왜 어머님은 ‘빨간반찬’만 하세요.”라며 내가 먹지 못하는 매운 반찬만 있음을 걱정하더니, 이젠 것도 시들해졌나? 시어미를 위해서 ‘하얀반찬(맵지 않은 반찬)’을 만들어 찬기까지 준비해서 공수하더니, 언제부터인가 그도 끝이 났구먼. 뭐가 틀어진 걸까? 아니, 내가 뭘 섭섭하게 했나? 암튼 요새로 좀 서원해진 건 확실하다. 그러나 탓을 할 생각은 없다.
우리 내외가 이젠 병원을 다니는 일이 ‘일과’가 되어서, 병원을 가는 날엔 며느님이 와서 저녁밥을 지어서 먹는다. 비록 막내딸년의 요구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시어미가 싫어서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요새 며느님들이 아니시던가. 아이 하나를 기르는 ‘전업주부’라고는 하지만, 그 예쁜 보림이와 마주앉아 오물오물 밥 먹는 걸 볼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아니한가. ‘욕심이 과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지? 족 하자. 이왕에 오는 걸 주말저녁에 조금만 일찍 와서, 식사를 같이 하지 않는 게 불만이었지만, 이만하면 행복하다 하자. 스스로 행복하면 되는 게야.
보림아~!
사실은 니네 식구들이 이왕에 주말에 오는 거 째꼼만 일찍 와서 같이 저녁 먹었음 좋겄다. 근디 그라믄 니 엄마가 힘들어서 싫겄쟈? 설거지 안 하고 돌아가도 좋은디... 것두 말이 안 되구....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