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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1부 제30회) 엄니의 따님들


BY 만석 2009-09-03

 

1부 제30회


엄니의 따님들

  

  엄니는 다섯 따님을 두셨다. 오늘 그 따님 중 세 따님이 엄니를 방문했다. 정월에 다녀갔으니 엄니와 세 따님은 족히 칠 개월만의 상봉인 셈이다. 너무 했다. 멀리 사는 따님이라야 일산이고 서울 사는 따님은 자주 뵐 수도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말을 하면 올케와 시누이의 사이가 예사롭지 못해서라고 하겠구먼.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엄니의 따님들은 올케를 나무라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들만의 만남에서야 어쨌거나, 내 귀로 얻어 들은 이야기가 없으니, 그렇다고 해 두는 편이 좋겠다. 눈 붉히며 아드등거린 일이 전혀 없었다.

결혼을 할 때 내 친정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다섯 따님과 시어머님의 입을 합치면 여섯이다. 네 한 입으로 여섯 입을 당하려면, 네 속이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그러니 아예 맞서지를 말아라. 그게 맘이 편하니라.”
구십 오 세로 치매가 오기 전까지, 내 친정어머니는 이리 이르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밥 한 번을 솥에 앉혀 보라고 일러주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層層侍下 宗家 宅에 막내딸을, 시집이라 보내신 친정어머니의 마음이 어떠셨을꼬. 나이 사십이 넘어 얻으신 늦둥이를 잃듯이 내어주고, 어찌 한 밤인들 편히 주무셨겠냐는 말이지.

  그러나 내 媤宅은 아니, 엄니의 다섯 따님은 내게 생각했던 만큼 그리 큰 짐은 아니었고, 현재도 말이 많은 시누이는 아니더라는 말씀이야. 다섯 따님을 하나같이 종가 댁의 맏며느리로 보내시더니, 그 삶이 고달프고 어려운 것도 다섯 따님 모두가 하나만 같더라는 말씀. 그래서 일까?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라고 해 두자. 엄니를 자주 찾지 않는 그녀들의 한결같은 해명은,
‘사는 게 힘이 들어서…….’ 라 한다. 또, '언니가 번거로울까봐.'라고도 한다. 그도 그렇다고 해 두자. 아직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으니, 생활이 녹록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시누이의 방문이 올케를 번거롭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나도 다 경험한 바가 아니던가. 근디, 큰 부자는 아니어도 모두 한결같이 생활이 어려운 건 아닌데.…….

  그런데 엄니의 변은 다르다. 엄니 젊어서 따님들에게 인심을 잃으셨다고 한다. 당신이 따님들에게 잘하지 못한 업보를 받는 중이라고 말하신다. 어느 때는 없는 살림하느라고 그랬다 하시지만, 따님들은 서러운 추억이었다고 내게 털어놓는다. 그렇다고 엄니에게 복수를 하자는 심사는 아닐 게다. 부모와 아니, 모녀의 관계가 그럴 수 있는 사이가 아니지 않는가.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이제 그녀들의 나이, 육십을 지나고 오십을 넘긴 데에야……. 내 스스로에게 잘 못이 많다고 마음먹는 게 올케의 자세이거늘, 내가 오늘 유별나게도 말이 많다.

  ‘밤새 안녕’이라는 노인네가 이렇게 수척해진 게 모두 내 죄다 싶다. 엄니 방으로 조용히 물러가서 눈물을 찍어내는 셋째 따님을 훔쳐보며 내 마음이 짠하다. 따님들을 맞는 엄니의 표정이라고 밝기만 하겠는가. ‘며느리가 욕할라’하는 걱정이실까? 아니면, ‘며느리 욕 먹일라’하는 근심이셨을까? 다 내가 제대로 모시지 못했음으로 빚어지는 엄니의 서러움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내 감정을 다스리시는 엄니가, 오늘은 왠지 현명해 보이지를 않는다.
  “따님들 보셨으니 실컷 우소.”
  이것도 제 발이 저려서 지껄이는 알량한 며느리의 변명일 터이지.

  “목욕을 시켜달라구 싶은디...... 니, 언니가 손가락을 다쳐서......”
  내 눈치를 살피며 엄니가 큰따님을 올려다보신다.
  “그러셔요.”
  “그러지, 뭐.”
  따는, 내가 손가락에 깁스를 푼 뒤에도 아직 엄니 목욕을 시켜드리지 못했던 터라 나도 반갑기는 하다. 엄니의 두 따님이 엄니의 목욕을 준비한다. 나들이옷을 내 옷과 바꿔 입고는 큰따님과 둘째 따님이 엄니를 재촉한다.
  “아니, 엄니 머리를 자르고 목욕 하실까? 머리가 장하신데.”
  그렇지 않아도 머리를 잘라드리려던 참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좋지.”
  “언니 손가락 괜찮아요?”

  세 시누이를 세워놓고 올케가 재주를 부린다. 시아버님 이발해 드리던 솜씨로 빗질과 가위질을 번갈아 하며 제법 능숙한 솜씨인 척 손을 놀린다. 두 시누이가 말한다.
  “재주두 참. 언닌 별 거 다 해요. 딸이 다섯이면 뭐해. 하나도 저런 재주는 없으니…….”
  이건 분명히 칭찬이렸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제법인 것은 확실하다. 가위를 쥐는 버릇이야 직업상의 일상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미용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조언조차도 들은 적이 없다. 그래도 다듬어 놓은 엄니의 두상은 천하일품(天下一品)이로고.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이만하면 내가 아주 용한 미용 기술이 있는 줄 알겠다. 사실은 엄니의 두상이 천하일품. 내가 이리 말하면 제법 착한 며느리인 줄 알겠구먼. 아니다. 그건 아니다. 엄니는 정말로 미인(美人)이시다. 재주를 대충 부려도 엄니의 미인형(美人形) 얼굴이 내 알량한 미용기술을 덮어준다는 말씀이야. 이만하면 됐다. 기다리던 두 따님이 엄니를 좁은 세면장으로 모신다.
  “안질뱅이 의자가 여기 있어요.”
  “의자 위에 이 수건을 깔아 드리시오.”
  “온수와 냉수는 이렇게 트시오.”
  허허. 내 입으로 절반은 다 한 셈이구려.

  세면장에서 엄니의 작은 비명이 새어나온다. 알만하다. 목욕을 하신지가 오래여서, 때가 많이 밀리겠지.
  “고만해요. 엄니 병 난다구요.”
  “때가 자꾸만 나오는 걸요.”
  “젊은 사람 때 벗기듯 하면 안 되지.”
  그래도 엄니를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가 보다. 엄니는 자꾸만 고만 하라 하신다.
  “아이구~. 그만 하소. 엄니 병 나셔~.”
  저런, 저런. 세면실 문을 열어보니, 엄니의 등이 벌겋게 익었다. 엄니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애처롭다. 에구~. 이제껏 못 다한 효도를, 한꺼번에 다 할 모양이다. 좀 자주 와서 챙겨드리지.

  주방 렌지의 열기를 거실의 에어컨이 이겨내지를 못한다.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셋째 따님이 저녁을 짓는다. 엄니 진지 한 끼를 지어드리려고, 마음먹고 장을 봐 온 모양이다. 엄니의 시원찮은 치아를 걱정했던 모양. 물렁하게 삶아 무칠 호박이며 가지며, 평소 엄니가 좋아하시던 조개젓 등을 챙겨왔다. 아, 단 호박을 사다 찌기도 하는구먼. 미역국을 끓여드리려고 고기를 갈아왔다 한다. 이미 아침에 끓인 미역국에 곱게 간 고기를 익혀 미역국에 띄운다. 대형의 식당을 운영하던 셋째 따님의 실력이니, 내게 물을 것도 없고 내가 붙여 할 잔소리도 가당치 않다.

  그러나 그녀들이 나만큼 엄니를 알겠는가. 아무리 청결하게 엄니의 옥체 구석구석을 살펴드려도 며느리만은 못하다 하실 걸?! 어지간한 뜨거운 물도 못 이기시는 엄니의 체질을 엄니의 따님들은 알지 못할 것이로구먼. 새 것이 좋은 줄 알겠지만, 엄니는 헌 타올로 문질러도 아프다 하실 걸? 저런, 저런. 엄니의 눈과 귀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 귀는 귓바퀴로 접어서 양 손으로 눌러야 하고, 샤워기의 물을 끊기 전에 엄니 눈을 깨끗하게 세척해 드려야 하는 걸 알기나 해? 구십 노인네를 저렇게 오랫동안 주무르면 몸살하실 것은 왜 몰라. 또, 엄니를 침대로 모시기 전에 침대시트를 돌돌 말아, 밖에 나가서 비듬을 털어내야 할 것 아녀?!

  주방의 엄니 따님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가지나물을 그리 맵게 무쳐놓으면 엄니가 한 젓락을 옳게 자시겠는가. 그도 모양을 낸다고 그리 크게 썰어 놓다니. 호박나물은 약간 살캉해야 맛이 난다구? 엄니가 설컹한 호박나물을 어찌 자시겠는가. 조개젖 싫어서 안 자신 지가 얼마나 오래 된 것도 모르고. 잘게 간 쇠고기를 엄니가 깔깔해서 어찌 삼키시겠는가. 차라리 토막을 내서 푸~~욱 고아 국물을 드시게 해야지. 그리고 아침까지 물컹한 죽을 자셨는데, 밥을 그리도 볶아 놨으니 어쩌면 좋은가. 허허. 하나 같이 내 맘에는, 내 성에는 차지 않는구먼. 그렇다고 일껏 땀 흘려 지은 밥 치우고, 점심에 자시던 죽을 드릴 수도 없구말이야. 한 끼니의 진수성찬을 엄니가 골고루 수저에 옮겨 보기나 하시려나? 큰 수저로 두 스푼이면 끝나는 식사량에, 저 많은 찬이 무슨 소용이람. 애꿎은 며느리만 포식을 하겠는 걸?!

  다음 날 아침.
  엄니가 일어나지 않으신다.
  “엄니 몸살 나셨쥬?”
  “그랴. 아, 그년들이 어찌나 주물르는지 이런 데가 온통 아파 죽겄어.” 엄니는 두 팔을 서로 안아 움츠리며 울상을 지으신다.
  “호사하셨는디, 뭘 그라시요?”
  “한 번이나 그럼 뭘 혀~. 니가 해 준 거만 못 해.”
으헤헤헤. 거 보라지. 내 맘이 엄니 맘이구려. 내도 그리 생각하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