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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1부 제29회) 엄니요. 내 잘못했심더


BY 만석 2009-08-31

 

1부 제29회


엄니요. 내, 잘못했심더


  늙으면 말 수를 줄이라는 어느 명사의 강의를 들었다. 그랬다. 명사의 명강이 아니라 내 경험으로 보아도, 늙으면 말을 줄여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내 지식이 젊음이 한창인 청년을 따를 수 없고, 내 언변이 기운 찬 젊음을 이겨 낼 재간이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새 말로 '구구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가락은, 엄니와의 대화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엄니와는 하지 않아도 될 말,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쏟아 붓고는 곧잘 후회를 한다.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는 중에, 이제 돌아서기 전에 후회할 것이라는 직감을 한다. 그래도 '이왕에 내뱉은 말이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상기하며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비단 며느리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엄니도 예전에는 지금의 며느리와 같이,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자주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니, 분명히 그리 하셨다. 엄니도 그때 나처럼 곧 돌아서서 후회를 하셨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나 ‘하지 않아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 쪽은 오히려 내 쪽. 그러니까 며느리의 편이었다. 엄니는 당신이 쏟아 부은 말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거나 ‘하지 않아야 할 말’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으셨다.

  어째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입장이 이렇게 다를까? 내 나름대로 터득한 바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입장이, 바로 어른과 아이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어른은 아랫사람에게 당연히 내림으로 할 수 있는 말을 했을 뿐이고, 아이는 감히 어른에게 역행을 했다는 차이다. 그러니까 어른은 아랫사람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없으며, ‘하지 않아야 할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아랫사람 즉,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에게 당연히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나는 어른의 아랫사람 즉, 엄니의 며느리다. 이제부터는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아끼자.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은, 이제 엄니에게는 서러운 말이 될 뿐이다. 앞으로 사실 날 얼마 남지 않은 엄니에게, 서러운 말은 들려 드리지 않아야겠다. 아들이 쳐다보고 딸이 지켜보지 않는가 말이다. 머지않은 훗날 어미의 젊은 날을 탓하면 큰일이지. 사위도 넘겨다보고, 손주들도 들여다보고, 또 이웃들도 귀를 기울이겠지.

  오늘, 만석이가 철이 드나보다. 영감의 말대로라면 만석이는 철이 들 날이 아직 멀었다고 했는데. 그러나 '철 들자 망령이 난다.'는데…….
어무이요. 이 밤, 잠 안 오는 이 밤에, 어무이 며느리가 머리 조아려 사죄드립니다요. 내,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을 많이 했습니다요. 엄니요. 엄니는 어른이시고 이 며느리는 아이라요. 어른은 아이를 용서하시고, 철없는 이 아이는 엄니 손에 이끌릴라요. 앞으론 말 줄이고 엄니한테 잘 할라요. 좋은 꿈 꾸시
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