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26회
쌍무지개 뜨는 언덕
"그게 뭐여?"
상머리에서 아이들이 된장찌게에서 건진 감자를 먹자, 엄니가 물으셨다.
"감잔디유. 엄니도 더 드려유? 아까 지가 수저에 얹어드린 그 감잔디....."
아직 상도 물리지 않은지라, 찌게에서 감자를 더 건져 드릴 양으로 묻는다.
"주믄 먹고 안 주믄 못 먹구……."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신 모양이다. 아니, 뭐 특별한 걸 먹는 줄 아시나 보다. 그런데 엄니의 말 속에 뼈가 들었다. '나는 주어야나 먹는디, 주지도 안으니 어찌 먹냐?'는 심사다. 그렇기로서니 어찌 저렇게 꼬집어 뜯으시는가 싶다.
"할머니. 왜 말씀을 그리하셔요. 그냥 '그래. 나도 좀 다우.' 그러시면 듣기도 좋잖아요. 왜 말씀을 꼭 그렇게 하시는지 몰라."
옳거니. 감자를 씹던 큰아들이 나를 대변한다. 에헤라 디여~. 나는 효자 아들을 두었구먼.
그러나 제 할머니의 시원찮은 청력을 감안해서, 아들 목소리의 톤이 높았던 모양이다.
"너, 할머니한테 무신 말을 그렇게 하냐?"
평소에는 말이 없던 남편이지만, 아들의 톤 높은 언성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셔도 엄마가 그냥 아뭇소리도 않으시니까, 자꾸만 그렇게만 말씀을 하신다니까요?"
"그래두 할머니한테 그러믄 못 쓰지!"
"아빠, 할 말은 해야지요. 그냥 달라구 하셔도 되는데, 그게 뭐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시비죠."
으헤헤헤. 아들이 내 마음을 시원하게 뻥 뚫어 주는구먼.
"그래두 그러는 건 아냐!"
어~라. 남편의 언성이 퍽 높아졌다.
"아빠. 할머니는요. 말씀을 하셔도 꼭 상대방 비위를 건드리면서 하신다니까요."
아구구. 아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히 사실 대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 듣기에 매끄럽지가 못하다. 분명히 제 어미 역성을 들기는 드는 모양이긴 한데…….
"어허. 그래두......"
어째 내가 좀 나서야 할 것 같다.
"여보. 아이들두 이제 머리가 다 컸는……."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만 둬!"
남편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소리를 친다. 오잉?! 화살이 내게로 날아온다. 괜히 나섰나 보다. 남편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한 것 같다.
"아빠. 그건 아니죠."
"그래두 이 녀석이! 너 지금, 나랑 맛 서겠다는 거야?"
아들이 크기는 큰 모양이다. 한 번도 제 아비에게 말 대구를 않던 녀석이었는데…….
그런데 내 편에 선 아들이 과히 달갑지가 않다. 남편에게 바락바락 대어드는 것만 같다. 아이는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신세대다. 그러나 이쯤에서 아비와 맛서는 것은 그만 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이는 말대구가 아니라고 우긴다. 요상한 것은 내 마음이다. 말 발로 말하자면 남편이 젊은 아들을 이기겠는가. 내 편을 드는 아들 녀석의 정의로움보다는, 코너에 몰리는 남편이 가엾다. 아직은 아들보다는 아버지가 우위여야 한다. 위계질서니 도덕성이니를 떠나서, 내 지아비 사랑이 내 마음 속에 그렇게 작용을 한다. 장성한 아들이어도, 논리가 정연하다 해도, 이쯤에서는 평소에 하던 대로 제 아버지에게 슬며시 져 주었으면 좋겠다. 큰 마음먹고 제 어미 역성을 드느라고 아들이 기를 쓰는데…….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더 우스운 일이 벌어졌다.
"쟈들 왜 그런댜?"
정작 두 부자의 입씨름을 시킨 엄니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사태에 눈이 휘둥그fp지신다.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아들과 손주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신다.
"에미야. 얘들 시방 싸우는 겨?"
엄니의 아드님도 씽긋 웃는다. 내 아들도 키득키득 웃는다.
휴~. 이젠 됐다.
"싸우기는요~."
"싸우기는요~."
엄니의 황제아드님도, 내 정의로운 아들도 목소리를 모아 소리를 지른다. 좀 전에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으니, 고운 황혼에 어여쁜 쌍무지게나 뜨려나?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