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3회
엄니요~ 핵교 댕겨 왔심더
“핵교 댕겨 왔심더.”
우해해. 오늘은 더 넉살을 떤다.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내가 어느 학교 교사쯤? 아니면 교수쯤 되는 줄 알겠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60살의 나이에 만학을 하는 대학교 3학년생이다. 그런데 집에 대학생이 셋이고 보니 남편이 많이 버거운 모양이었다. 해서 내가 1년 휴학을 하고 오늘 제 7학기째를 복학해서 첫 등‧ 하교를 했다. 그렇게도 오매불망 다니고 싶었던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복학을 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었다. 그러나 용케도 복학을 했다. 그동안 나와 같이 하던 생활이 몸에 익었다가 오늘 혼자 계시던 엄니가 반색을 하며 맞으시는 양이 꼭 어린아이 같다.
“이~, 시방 끝난 겨?”
“그럼 제가 어디서 놀고 오겠어요?”
거~참. 그저 ‘예’라고 대답하면 되는 것을.
“오늘은 하루해가 더 질어~”
나를 기다리느라고 하루가 길었다 하신다. 에구구. 딱한 엄니.
“니가 아래층(내 일터)에 있으나 컴퓨터 앞에 있으나, 나하고는 말할 시간도 없었는디, 니가 나갔다구 생각하니께 집안이 빈 것 같어야~.”
나는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기분이 째졌는데(?), 엄니는 그러셨다 한다. 짠하다. 아주 많이 짠하다. 오늘은 엄니가 무척 가여우시다.
늦은 저녁.
영감이 그윽한 모양새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학교 가니까 좋았어?”
그걸 말이라고…….
“으응. 아주 좋았어.”
두 손을 들어 반짝반짝 작은 별 흉내를 내니 남편도 우습다 한다. 그 특유의 웃음. 입은 귀에 걸리는데 소리는 없는 싱거운 웃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웃음을 ‘황소웃음’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은 그이가 매력적이다. 아주 매력적이다. 이따가는 그이의 팔을 끌어 베개를 만들어 봐 봐 봐? 어라?! 그러고 보니 살까지 욱신거리던 몸살은 또 어디로 달아났누? 맹맹하던 감기 기운은 어디로 달아났느냐는 말이지. 이상타. 요상타. 정말 이상, 기이한 일이다. 1교시 강의가 1시간 40분. 연강을 듣고 나면 3시간 20분. 중간에 10분씩의 휴식이 있지만, 의자에 앉아 있기는 매 일반이다. 오고가는 시간이 각각 1시간 10분. 그도 2시간 20분이면, 내 어리지 않은 나이에 만만치는 않은데…….
그래서 사람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고달팠던 것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닌,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일. 배운 도둑질이라 그 일을 직업으로 가졌었던 터라, 그렇게도 내 삶을 피곤하고 지겹게 만들었던 게다. 그러나 그 일이 ‘아주 좋은 직업이고 최고의 기술’임을 깨달은 것은 대학을 다니면서부터였다. 그 직업적 기술이 수입을 위한 일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식구나 친구들을 위해서 쓰일 때에는 그 값의 진가를 제대로 평가하게 되더라는 말씀이지. 손주들의 무대복을 만들고, 가방을 만들어 들렸을 때. 그리고 내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동전지갑을 만들어 주고, 그래서 친구들의 기뻐하는 양을 보면서 나도 무척이나 즐거웠다는 말씀이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엄니요. 엄니 알량한 며느리가 이제는 제자리, 제 궤도에 진입을 한 것 같십더. 늘 어제와 오늘만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심더. 지가 즐거우니께 엄니도 즐겁지예~?!
“히히히. 그려~. 에미가 오랜만에 웃었네~.”
자판 위에서 내 마음대로 엄니의 대답을 만들어본다. 요새 우리 고부의 날씨는 ‘썩 맑음’이다. 따라서 엄니의 아드님도 덩달아 ‘맑음’이다.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지 않은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