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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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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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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BY 햇반 2006-07-04

장마철이다.
이른아침,밖의 날씨가 우중충하다.

몇번의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빗줄기가 쏴하고 쏟아진다.
아름다운 선률처럼, 소나기는 나의 단잠마저 말끔히 걷어낸다.

선물을 받은듯한 반가움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아침이 바빠지는 시간.

"후두둑 후두둑"
아침이 소나기를 맞는다.


단정하고 가지런한  우산을 챙긴  중학생 아들이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집을 나선다.
잠시후 빨간색 바탕에  흰색 땡땡이 무늬가 있고, 끝자락에 레이스가 팝콘처럼 퍼져있는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딸.
"너도 잘 다녀 올거지?"
내가 먼저 말을 건내자 딸은 예쁜 눈을 또르륵 굴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베란다로 가서 밖을 살핀다.
비가 세상의 공간을 가득 메운다.

땅으로 떨어진 빗물이 여기저기 넘쳐난다.
순간,딸의 빨간우산이 내 시야를  덮는다.
활짝 펼쳐진 우산으로 추억이 흘러내린다.

 

요즘처럼 무엇이든 넘쳐나는 세상.
일찌기 풍요와는 거리가 먼 세상에 한 소녀가 살고있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철,특히 장마철이 되면 소녀는 너무 좋았다.
무작정 비가 좋았고 비 내리는 풍경이  좋았다.
비를 보고 있으면 차분히 가라앉는 자신만의 세계가 빗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 세상

어디에서고 꿈으로 희망으로 쑥쑥 새롭게 자라 오를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비를 좋아하는 소녀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비오는 아침이면 온통 까맣고 거무죽죽한 색깔의 우산들로 꽉 차있는 창고로 가야

하는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한두개의 우산마저 살이 구부러지거나 삐져 나오기 일쑤였다.
언니 오빠 동생과 함께 소녀는  비오는 아침이면 우산 쟁탈전을 치뤘다..
성한 우산을 챙기려면 일찍 일어나야했다.
우산을 고쳐쓰던 시절.
소녀는 엄마가 우산살을 고쳐놓지 않은것을 야속해 했지만
비에 몸만 가리면 된다는 엄마의 말에 소녀는 아무말도 않고 우산을 펴들곤했다.

 

어느날 영화 "쉘브르의 우산"을  보고 소녀는 저렇게 예쁜 우산을 한번쯤 써 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다.
까뜨린느 드뇌브의 아름다운 모습이,우산을 쓰고 춤추는 모습이 밤새 소녀의 눈에 밟혔다.
그날밤 소녀는 연습장에 우산을 잔뜩 그리며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노란 우산이 좋아, 기분을 밝게 해주니까.그리고  빨간 우산과 분홍색 우산은  얼굴을발그스름하게 물들어 이쁘게 보일거야.음, 투명우산은 신비스러워서 좋고.그리고 땡땡이 우산은 귀엽지, 하트무늬 우산은 사랑스럽지?"
우산에 대한  끝없는 예찬,소녀의 손에 그려진 우산은 밤새 여기저기 날아 다녔고 가끔 그위로 비가 내렸다.

비는 너무 좋았지만 예쁜 우산 하나 갖지 못한 소녀는 너무도 슬펐다.
배우들이 쓰는 우산은 따로 있을거야.
그런 우산만 쓴다면 소녀도 여주인공처럼 예쁠거 같았다.
주인공의 엄마처럼 소녀는 자신의 엄마가 우산장사라도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며칠동안 "쉘브르의 우산"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느날 소녀는 자신이 그린 우산중 제일 맘에 드는 우산을 들고 엄마에게 갔다.
피식 웃고 말던 엄마는 어린 소녀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며칠뒤 우산을 사다 주었다.
기분을 좋해 주는 노란색 우산이었다.
너무  기뻐서 비를 기다렸지만 기다리던 비는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소녀는 방안에서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비를 기다렸다.
어느날은 아예 우산을 텐트처럼 펴놓고 잠이 들기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토요일이다.
아침부터 잔뜩 찌뿌린 날씨에 한껏 기대를 했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왔을때야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비는 깊고 가지런히 내렸다.

우산을 쓰고 싶은 들뜬 마음에 소녀는 친구집을 향했다.

거리는 시원했다.

쑈윈도우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거리는 점점 고즈넉해지는 시간이었다.
버스 한정거장 거리였지만 빗속을 걷는것이 너무 즐거웠다.
몇 정거장이든  상관없었다.

꿈에 그리던 노란 우산속에서 소녀는 꿈을 꾸듯 걸었다.
밝은 세상과 하나가 되는 소녀의 꿈이 무럭 무럭 자라나는 상상을 하면서.
얼마큼 왔을까.
무엇엔가 부딫힌 느낌에 깜짝 놀라 옆을 보니 누군가 우산으로 뛰어들었다.
소녀는 너무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소녀는 이 자가 왜 여기에 있는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알수 없었다.
그저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한채  우산만 꼭 잡고 있었다.
남학생은 씩씩하게 웃으며 당당하게 우산을 잠시만 같이 쓰고 가자고 했다.
같은 방향이었고 나쁜학생 같지 않다 생각한 소녀는 그개만 끄덕였다.
소녀는 이런 돌발 상황이 너무 당혹 스러웠지만 기분은 나쁘진 않았다.
"우산때문이야.."소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소녀는 우산때문에 이 남학생이 어디선가 나타난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곧 기분이 좋아졌다.
남학생이 이것저것 물어 보았지만 소녀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친구집에 다 오자 자신의 전화번호를 몇번인가 불러주고 어디론가 다시 살아졌다는 기억밖에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도 여전히 비가 좋다.

장마철인 요즘,하루걸러 오는 비도 반갑기만하다.
딸 아이가 자라  소녀티가난다.
그 소녀도 꿈을 꾸고 있으리라.

딸 아이가 빨간색 우산을 갖고 싶다고 말했을때 선뜻 그리 해 주었다.
"우산속에서 네 꿈을  펼쳐보렴 "하고....

오늘  딸아이가 쓰고 가는 우산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긴다.


우산은 단지 몸 하나를 가려 줄 뿐 아니라  드넓은 세계를 담아주는 작은 우주다.
그 안에서 작은 싹들이 자라 ,세상에서 무르익게 될것을 알리라.

더 풍요로워질 세상에서 자라, 어른이 된 딸은 정신의 풍요는 우산속이 아닌

세상속임을 발견하리라.

그것이 진정한 풍요라 믿으며...

 

우산이 사라진 거리.

비는 더이상 내리지 않는다.

나의 추억의 우산이 살며시 접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