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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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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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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나들이


BY 햇반 2005-11-23

 

혼자 갈까 둘이 갈까 망설이다 잠자는 애 들쳐 업고 가는것마냥 별 생각 없는 남편,

별일도 없지 않느냐며 친정으로  끌고가며 운전을 시킨다.
그와 나는 아직은(?) 연인같다.
서로에 대해 많이 알고  다정히 즐길줄도 알고  철없는듯 하다가도 오래된 친구처럼

친숙하다.
오래 살다보면 그러한것이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 간혹 혼동하게도 되지만 가능하면
그래도 가능하면 좋은쪽으로 밀고 나가리.
휴게소에 잠깐 들러 카푸치노 커피를 마시며 뒤늦은 가을햇살에 얼굴을 들이밀며 늙었네
주름살보세,니 나이가 몇인가 하며 수다를 떨어본다.

경춘도로는 뒤뚱뒤뚱 움직인다.
발빠르게 움직이는 서울 수도권지역하고는 사뭇 다르다.
언제나 바뀔것 같지 않던 도로는  달릴때마다 다르고 욕심없는듯  느릿느릿 뒤바뀌곤한다.
그래서 고맙다.
꾸물거리는 경춘도로가 고맙고 낯설지만 어림잡아 남아있는 옛길이 반갑다.

성형수술이라도 하고 나타난 여인내마냥 가운데 도로는 쭉쭉 뻥뻥 뚫려있다.
그러나 내눈에는 어림없다.
그들의 속살은 이미 내가 구석구석 알고 있고 미처 가리지 못한 그것들도 그대로

처연하게 드러난다.

도로는 몸살을 앓으며 속살도 과감하게 드러내보인다.
곧 어여뻐질 자신의 몸에 대한 환상을 꿈꾸며 말이다.
중요한건 몸뚱이가 아니지.
제 아무리 쭉쭉뻥뻥 뚫려 탄탄한 도로위를 차들이 달린다해도 제 몸만 탱탱하면  다인가.
도로는 도로일뿐인걸...
흐르는 세월에  바뀌게 될 운명인걸...
자연의 풍광을 봐.
언제나 그대로인것을 보란말야.
얼마나 위대한지.
하긴,그것에 미치지 못하는게 비단 너 뿐이랴.
인간의 영원도 자연에 턱없이 미치질 못한다는걸...

친정 나들이가 너무 오랜만인탓일까.
배 박스를 짊어지고 앞장 선 남편은 엄마는
-누신가
하고 알아보지 못한다.
거기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분홍색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츄리닝에 오리털 파카를

입은 날 보고도 뉘집 자식인듯 얼굴을 돌리고만다.
-이런..
-첨보는 사람들야?
그제야 엄마도
-아이구,이런이런....
이럴땐 나는 오히려 미안하다.

다 씻어놓은 배추들이 다소곳이 한편에 모여있고 대문밖까지 빠져나온 물이 도로까지

흐른다.
대번에 이집이 오늘 김장을 한다는건 안봐도 알 일이다.
곧 벌겋게 버무려질 그것들을 보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거실로 들어서니 이웃에서 여러분이 모이셨다.
생채를 거의 다 썰어가는 중이다.
끝에서 두번째라는 엄마의 순서.
배추 40포기도 안된다면서,일은 대수롭지 않을것 같다.
앞치마를 두르고 이웃분들께 따듯한 차를 한잔씩 권하고 엄마와 아버지와 이야기를한다.
잔치집 주인내가 으례 그렇듯 엄마는 정신이 없다.
여기저기  불러 대는 사람들에게 시선과 몸을 파느라 나하고는 말도 할수없다.
생채썰기까 끝나자 남편은 갑자기 생각난듯 굴을 사오겠다며 뛰쳐나간다.
수협에서 사온 싱싱한 굴과 살아있는 새우를 보니 사람들이 모여든 것마냥 북적거린다.

김장의 묘미가 더해지는 순간이다

-밥을 해야지.
하얀쌀에 소 내장국을 꿇이는 엄마.
옛생각이 절로난다.
돼지편육에 배추쌈을 먹던기억.
기억은 오래됐지만 순간순간 생각할수 있으니 언제나 새롭다.
언제 어디서 문득 써 먹게 될지 모를  낡지 않는 보물이다.

점심을 먹기전에 끝나버린 김장.
어름들은 참 부지런하다.
내가하면 일주일 맘 걱정과 꼬박 이틀간 몸을 묶어두고 일을 치뤄야 할텐데,
저녁에 배추 절이고 아침나절 잠깐,반나절도 안되는 시간에 일을 끝내는 어른들은

참 부지런하다.
그래서 항상 어른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반성을 하게된다.
-열심히 살아야지.
-좀더 부지런해져야지.
언제가 그들처럼 나이가 들어 내 자식들에게 부지런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에게

또한 지금의 내 생각을 심어 주려면...
나만 잘 살겠다는 생각이 아니기에 더욱 필요한 가치라 여겨본다.
차안에 가득 김치를 싣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손을 잡고 흐믓한 마음에 콧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