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씨가 얼마나 친절한지 확인하기로했다.
우선 금자의 수감생활과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나래이터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금자 역시 "친절한 금자씨"로 수감원에서 통했고 그녀가 13년을 복역하고 나온후 일삼는 행각 역시도 조금은 친절했다.
그녀가 교도소를 나오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교회의 찬양단원과 그녀를 위해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목사가 준비한 두부를 땅바닦에 팽겨치며 하는말...
"너나 잘하세요..."
이말은 80녀대부터 90년 사이에 유머로 많이 쓰던 문구다.
잘난체 하는 친구라든가 제 목소리만 높이려는 사람들한테 한방 먹이기 좋은 가장 좋은말
"너나 잘해"였다.
그녀가 그말을 쓴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교도소에서 보여준 천사표 금자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일종의 사회에 대한 도전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무언의 암시이기도하다.
그리고 자신을 감옥으로 내 몰았던 피살자를 찾아 복수를 한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올드보이"에서처럼 이미 긴 세월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며 범행계획을 세워 둔 것이다.
금자는 피해 대상의 부모들에게 복수할 기회까지 제공한다.
일종의 살인 이벤트다.
그들에게 칼과 망치와 도끼등 온갖 흉기까지 친절하게 건네주고는 그들과 살인에 가담한다.
이 쯤되면 영화장르는 호러물로 변신한다 .
그러나 굳이 장르를 가를 필요가 있을까.
엽기든 코미디는 드라마든 재미있으면 되는거다.
금자가 딸과 함께 새로이 살아갈 암시를 주는건 그녀가 손수 만든 하얀 두부케익이다.
이제부터는 하얗게 깨끗하게 살아갈거라고 케익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한다.
금자는 과연 새롭게 살아갈수 있을까.
그녀가 감옥에서 13년간 감옥생활에서 배운건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했던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식이 모두에게 통했다는 비상식적인 논리였다면
앞으로 그녀가 깨끗한 삶을 살아간다는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될까.
어쩜 금자는 영원한 범죄자로 살아가도록 길들여진건 아닐런지...
13년의 세월이 철저하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길들여 놓은건 아닌지...
스스로도 어떤게 자신의 모습인지 모르고 살아가지는 않을런지...
아마도 그 혼란스러움으로 금자의 친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