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실생활에 이골이 난게야.
궁핍한 정신을 이끌고 토요일, 그날 역시 아이들 전시 보여준다고 사람 많은 곳에
다녀왔더니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다.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와서 약만 먹고 누웠는데도 머리는 나아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티비프로 "토지"를 보는 동안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지근거린다.
이럴땐 빨리 종료 시켜야해.
즉시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 아침.
역시 개운치 않다.
아참...
어제오후에 눈이 왔었다.
사무실 주차장에서 막 빠져 나오는데 흰눈이 펑펑내렸다.
올들어 첫눈이라고 아이들도 좋아했는데, 거리는 순식간에 깜박이는 차들로 붐벼댔다.
삼성동에서 올림픽 대로를 접하자 더욱 심해지는 교통체증.
그러나 그것을 잊기에 충분하도록 눈 내리는 오후는 훌륭했다.
그어느때보다도 여유있게 거리에 발이 묶여 있는 차량 중 그 누구의 차량에서도 경적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모두들 같은 마음인게다.
어둠이 물드는 잿빛속에 하얗게 포근히 내리는 흰눈은 그 누가 봐도 천사의 미소처럼
아름다웠을테니까.
눈가루는 떨어지다 조금씩 서로에게 붙어 점점 더 불어 난것인지 눈송이는 내 앞에서만 커지는듯했다.
아이들이 창문을 열고 소리를 환호성을 질러댔다.
맛도 보고 뭉쳐도 보고 내게도 던져본다.
머리가 아프다며 이마를 찡그리다가 시원한 촉감에 잠깐 생기가 돌았다.
그렇게 잠깐을 달렸을까.
눈은 그치고 집으로 다 와가자 눈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부랴부랴 거리를 정리라도 해 놓은듯 깜쪽 같았다.
아파트 입구에선 눈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직도 시야에는 내리던 눈의 이미지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날 내린 눈은 올 한해 여운처럼 오래 남아있을거다.
일요일 일어날 생각을 않자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며 나를 깨웠다.
아빠가 복음밥을 했다며 한참 후에 나와보니 셋이서 커다란 접시에 머리를 맞대고 티비를 본다.
난 커피마실래...
그제서야 커피물을 올려놓고 왜 머리가 아픈지 밝혀내야 한다고 남편을 끌어들였다.
시원한 들판에 나가야겠어.
속도 울렁거리고 아마 이건 한여름 에어컨바람을 많이 쐬면 걸리는 냉방병 같은거야.
난 너무 실내에서만 있었어.
가슴에 시원한 바람을 넣어줘야해.
말을 하면서 난 이미 눈 덮힌 산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 곳이면 좋을것 같았다.
그리 높지 않은 동산쯤, 적당히 운동이 되고 오르다보면 땀도 한방울 흐르고
가쁜 숨을 몰아쉴때면 저만치에서 쏴 하게 밀려드는 시린 바람, 그 바람을 마시고 싶었다.
스케이트장에 가자.
엉뚱하게 스케이트장이 나왔다.
아이들이 시시하다고한다.
스키장은 담주에가자.
오늘은 스케이트로 몸을 풀자.
난 스케이트타고싶어.
내 제안에 모두 쉽게 응한다.
태능이면 집에서 10분거리다.
국제적인 규모라 롯대월드아이스링크와는 비교도 안된다.
얼음도 좋고 사람들도 적당하고 체감온도도 서늘하다.
움직이다보면 땀도 날것 같았다.
아들은 스피드를 즐겼고 딸은 나와 놀면서 타기를 원했다.
아빠는 한동안 헤맸다.
아들이 한마디한다.
엄마 아빠 너무 안되보여..
자식...
너 어릴 때 엄마아빠가 양쪽에서 붙잡아주고 태웠는데 이제 좀 컸다고..
가서 아빠 좀 붙잡아주자..
남편을 가운데 두고 아들과 함께 붙잡아 주었더니 남편은 폼을 잡으려한다.
아직은 아들앞에서 폼나는 아빠이고 싶은가보다.
한참을 돌고도니 땀도 나고 제법 흥이났다.
그 넓은 링크를 10바퀴 한번에 돌아도 힘든줄 몰랐다.
딸 이랑 아이스댄싱을 한다고 넘어지고 돌고 웃고 신났다.
엄마...
머리안아파?
갑자기 딸이 묻는다.
아까보다 조금...
이제 조금...
그렇게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부터 날 궂은 것마냥 꾸물거리던 머리며 속이
훌가분해지며 환하게 개이는 기분이 되었다.
실내병...
그거 내핍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걸리는 거 확실히 맞는가보다.
근데 내가 내핍 생활을 하기는 한건가.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