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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 쑤던 날


BY 박예천 2013-03-14

묵 쑤던 날

 

찬장 양념 칸 한 귀퉁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몰리던 도토리가루를 집어든다.

겁만 먹는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다. 실패하더라도 한번은 시도 해봐야할 것 아닌가.

매주 금요일마다 교회 할머니들 기도회 중식봉사를 한답시고 설쳐댄 지 몇 달이 지나고 있다. 전부 넷이서 돕는데, 두 사람이 짝지어 당번을 정했으니 격주로 내 차례가 돌아오는 셈이다.

치아가 성치 않은 할머니들이라 거의가 말랑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준비한다.

하여 나는 감히 도토리묵 직접 만들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곁눈질로라도 훔쳐본 적이 전혀 없던 일이다.

가루 담긴 비닐봉지 건네주던 시댁 앞집 아저씨의 말을 되새긴다. 꼭 6.5대 1 비율로 물 잡으면 된다고 했다.

곰솥을 꺼내 물의 양을 잡고 거품기로 휘저었다. 색이 뽀얀 것이 미숫가루 같기도 하고, 막걸리로 보이기도 한다. 중불에 앉히고 막대주걱으로 저어댔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 이 엄청난 일을 왜 시작했을까 잠시 주저된다. 중간에 망쳐버리면 보는 이 없으니 마당가 감나무 옆 오물쓰레기통에 버릴 참이다. 굶주리고 궁핍했던 시대를 살았던 할머니가 보시면 당장 하늘나라에서 회초리 들고 풀쩍 달려올 일이다.   

 

솥단지 곁에서 나무주걱을 젓고 있다. 행여 바닥에 눌러 붙을까 박자간격 일정하게 골고루 잘 젓는 중이다. 긴 삿대 젓듯 도토리 물살 가르며 도착지 막막한 항해를 시작한다.

그 작고 우묵한 흙빛 바다 휘저으며 일렁이는 파도 몇 줄기 만들어보다가 의식전부를 오롯이 던져 넣기도 하며 긴 시간 상념에 젖는 일 또한 묘미이다.

 절대로 조급해서는 되지 않는 것, 자식을 키우는 일이었다. 자분자분 건드리다가 적절히 비유도 맞춰가며 격려하는 것이 어미의 역할이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인내심을 요구하는가. 성급한들 채워질 것이며, 다그친다고 결과가 속히 보이는 것도 아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손으론 싱크대를 부여잡고 오랜 시간 도토리묵 생산에 몰두해있다. 걸쭉해지길 기다리며 그 맹목의 바다를 반복적으로 휘젓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다. 나머지는 시간과 열에게 주어진 과제다.

 

저절로 나이가 차면 어미가 되는 줄로 알았다. 열 달 진통 끝에 아이를 낳으면 비로소 엄마가 되고 의연한 인격은 세월가면 덤으로 얻어지는 것이라 여겼다.

허나 부모가 되는 일은 얼마나 오랜 기다림을 배우게 하는가. 커가는 자식들 결실의 때를 예견 할 수조차 없는 일. 바라보고 덮어주며 그늘로만 서 있어야 하는 계절도 견뎌내는 게 부모자리였다.

 

손목이 저리도록 휘젓다보니 저절로 끈적이며 묵의 형태로 가고 있다. 한 주걱 물컹한 것을 떠 공중에서 솥 안으로 흘려본다. 길쭉한 줄기를 이룬다. 곧 제 이름 지닌 완성품의 탄생을 앞두고 있다는 표시다.

끝이 보인다 해서 섣부르게 멈추면 이제껏 애쓴 수고가 날아간다. 이도저도 아닌 미숙아를 낳게 되는 거다. 마지막 뜸을 들이는 일까지 꼼꼼히 마쳐야 한다.

최대한 약 불로 줄이고 뚜껑을 닫았다. 식탁의자에 쪼그려 앉으니 여태껏 곧추세웠던 허리가 시큰하게 아파온다. 묵의 탄생을 앞두고 미리 겪는 산통이다.

사각반찬통마다 꺼내어 묵을 담으니 족히 네댓 모는 나올 양이다. 쪽문 앞에 나란히 놓고 창문을 열었다. 허연 김이 펄펄 찬 기운과 만나느라 초주검이 된다.

 

묵 쑤다가 나는 기다림을 배운다. 맹물과 가루가 만나 적당한 온기와 더해지며 끈기가 되는 것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담는다.

자식을 가슴에 담았다가 세상으로 내 놓기까지도 그렇게 참으며 걸어가라 한다.

 

겨울바람이 묵 그릇을 감싸고 갔는지 금세 탱탱한 도토리묵이 완성되었다. 손가락으로 눌러봐도 터지지 않는다. 도마 위에 엎어놓고 보니 내 아이 첫돌 무렵의 궁둥짝마냥 찰랑거린다. 터질까 부서질까 손 못 대고 얼굴만 비비대다 입방귀를 불어대면 궁둥이에서조차 어미의 젖내가 나곤 하였다. 

썰어놓은 도토리묵에 갖은양념 섞어 살살 무치려는데, 저 혼자 큰 것처럼 요즘 유난히 뻗대는 사춘기남매의 얼굴이 접시위로 겹쳐온다.

울 엄니도 묵 쑤듯 딸의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눌러 붙을까 쉼 없이 팔 떨어져라 주걱질을 했으리라. 멀찌감치 비껴서 바라보며 눈물이 마르고 속이 새까맣게 타 숯이 되어도 뜸을 들이느라 한 숨 몇 번만으로 뜨건 김을 내쉬었겠지.

 

쌉싸래한 묵의 떫은맛이 입안에 퍼지며 나더러 아픔도 삭히다보면 제 맛이 나는 것이라 한다. 자식들이 지니고 있는 성장의 때를 참고 기다려주면 그제야 세상 보는 지혜의 눈도 열린다고 제 몸이 입안에서 물러터지도록 일침을 놓고 있다.

 첫 묵은 대 성공이다. 이만하면 할머니들 상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겠다.

운이 좋아 황소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꼴로 도토리묵이 된 것이지, 기실 나의 됨됨이는 절대 말랑하지가 않다. 막대주걱으로 흠씬 두들겨 맞아도 부족할 만큼 어미 된 내 그릇은 그저 모나고 작기만 하다.

 

묵 쑤던 날, 숨겨왔던 속내가 말갛게 드러나 흐물흐물 혼자 녹아내리고 있는 중이다.



2013년 에세이문학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