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다는 이유
말이 됩니까?
다른 자리도 아니고 마주앉아 밥 먹다가 꼭 그 짓을 해야 했는지요.
부부가 오래 살면 눈빛 하나에도 뭔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할지라도 나는 일부러 모른 척, 둔한 척 사는 중입니다.
약간의 신비로움은 남겨둬야 긴장도 되기에.
허나 너무하지 않습니까?
구수한 누룽지를 끓여 당신 좋아하는 가리비젓갈과 참외장아찌 참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쳐 아침상에 올려놨는데 두어 숟가락 넘기다 밥맛 딱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래요! 갑자기 부동자세로 심각하게 멈춰 표정을 굳힐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좌측 엉덩이를 삐뚜름하게 슬쩍 들었어도 설마 했는데.....,
방구들이 쪼개져라 가스를 품어대는 당신.
째려보는 나를 향해 오히려 큰소리로 말하지요.
“냄새 안나!”
그건 당신 생각이고요. 냄새 더럽게 나거든요.
설사 냄새가 나지 않아도 소리만으로 불결한 상상과 연결된다는 거 알아요?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누룽지 밥알들이 다 튀어나올 지경인걸요.
적어도 인간이니까 입으로 들어가고 내미는 것 정도는 분별이 되어야 하잖아요.
실은 방귀를 아무렇지 않게 뿡뿡 내뿜는 당신보다, 내 자신이 더 비참해집니다.
이런 푸대접을 받고 살다니.
예전에 그랬지요.
“당신이 편해서 그래! 집에 오면 긴장이 다 풀린다구!”
젠장맞을!
처음엔 그 말이 특별한 대상에게만 하는 것으로 알았답니다.
무심코 들으면 엄청나게 편해서 무슨 자격이라도 주어진 것 같이 들리더군요.
허나 점점 드는 생각은, 얼마나 내가 우습게 보였으면 저럴까 싶답니다.
편하다는 것, 그건 당신자신만의 생각일 뿐이고 지극히 이기적인 판단은 아닐까요?
상대가 방귀를 받아들일 만큼 느긋한 성격이거나, 사전에 그 똥까스를 허락하겠다는 결재라도 받았다면 모를까.
가만 보면 당신!
뭐든 제 맘대로 입니다.
방학이라고 들어앉아 좋아하는 음악이라며 하루 종일 꽝꽝 틀어놓지요.
아이들과 내가 소음에 시달린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음악장르의 선택권도 가족구성원들에겐 전혀 없고, 오로지 폭군처럼 자기 취향대로 볼륨을 높이지요.
이어폰을 끼거나 소리 좀 줄여달라면 내 집이라 편해서 그렇다고 큰 소리 칩니다.
엄연히 이 집의 등기상 소유권은 안주인에게 있음을 잊으셨나요?
도대체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배려’는 어디다 팔아먹었단 말입니까?
좀 물어봅시다.
학생들과 수업 중에 방귀 마구 발사합니까?
아니면, 여교사들과 차 한 잔 마시면서 뿡뿡 거립니까?
왜 유독 내 앞에서만 추잡스런 괴인의 모습을 자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괄약근조절이 힘들어지는 나이를 감안해서 실수정도는 용인하지요.
그래도 성의를 보이거나 노력 좀 해 달라 이겁니다.
극진히 모셔지는 안방마님까지는 아니더라도, 방귀 따위에 식욕이 구겨지고 싶진 않습니다.
여유로운 시간, 마주앉아 노트북을 하노라면 시도 때도 없이 콧구멍 쑤셔대는 당신.
간만에 글이라도 구상해보려 앉았건만 몰입이 안 됩니다.
몇 번 파내다 말 일이지, 건더기는 왜 뭉쳐대고 있냐고요.
휴지를 이용해 은밀하게 버리지도 않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한 곳에 집중해 있다가도 ‘저 양반이 코딱지 처리를 어떻게 할까?’에만 온 신경이 쏠린다는 것을.
역시 기대 저버리지 않고 당신은 콧구멍의 부산물들을 방바닥이나 화분가에 투척합니다. 공개적으로 나에게 보란 듯이 말입니다.
꽥꽥 비명 지르며 ‘아이구, 드러워!!’ 난리굿 피우는 나를 쳐다보며 오히려 웃지요.
팔딱거리는 내 꼴이 귀엽다면서요.
웃깁니까? 재밌습니까? 그런 상황들이 내 현실이라는 것이 처절하게 싫어진답니다.
먼 기억 속에만 가려두었던 첫사랑 남자도 꺼내오고, 짝사랑 교회오빠도 남편대신으로 교체하는 음흉한 상상으로 소심한 복수를 하지요.
지금 거실바닥에 웅크려 코골고 자는 당신.
독서삼매경에 빠져 밤을 꼴딱 샜다는 거 알지만, 얄밉네요.
잠에서 깨어나면, 점심때가 다 되어가니 또 ‘밥 줘!’라는 언어만 기억하고 소리치겠지요?
편하다는 것을 자신의 잣대에서 출발하지 마십시오.
상대가 정말 편하게 여기는지를 먼저 더듬어보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낮잠 자는 남편 뒤통수에 대고 투덜거리는 재미도 쏠쏠하군요.
속이 확 트이게 편하긴 한데.....,
씁쓸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2013년 1월 22일
폭설특보에 갇혀 심심한 한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