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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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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고개


BY 박예천 2012-07-03

 

                꼬부랑고개

 

 

 

할머니! 어쩌지요?

큰손자가 아직도 울어요.

자정이 가깝도록 잠들지 못하고, 바닷가 사는 누이 앞으로 할머니영정사진 담긴 메시지를 보냈어요. 이유는 딱 한 가지, 할머니를 뵙고 싶답니다.

9년 전 가신 할아버지도 생각난다며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으나 아마 꺼이꺼이 우는 모양입니다.

사십 중반 다 된 동생 녀석이 목 놓아 우는데, 누이는 뭘 해줘야 하는지 쩔쩔매고 있었지요.

 

출가외인 손녀딸인지라 장례 치른 후 사는 터전으로 돌아와, 주렁주렁 달린 자식 챙겨 먹이고 남편 내조 한답시고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헌데, 동생은 아니었대요.

태어나 지금껏 한 집에서 함께 살던 할머니라 견딜 수가 없답니다.

집안 곳곳이며, 뒤란을 걸어보고 바깥마당에까지 나가도 할머니 숨결이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답니다. 그걸 찾아다니며 울고 있는 모양입니다.

도망치듯 묘지로 달려가 할아버지와 다정히 합장되신 것 바라보며 위안을 삼다가 또 오열이 쏟아지고.

당장 눈에 안 보이는 친정이라 저는 견딜 만 했기에 동생의 저린 가슴을 헤아릴 줄 몰랐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수족처럼 살뜰하게 챙겨드리며 곁에 있었던 손자인데요.

머리카락 길어져 헝클어지면 햇살 따뜻한 앞마당에 의자 내놓고 할머니 앉혀드린 후, 보자기 둘러 손수 깎아드렸다지요?

냄새난다며 다른 사람들 꺼리는 방에도 성큼 들어가 주름진 볼 살을 매만지며 재미난 이야기 들려드리고요.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할미! 나 왔어!” 라며 애교까지 떨었죠.

울 할머니가 제일 이쁘다고 너스레를 떨면, 다른 일로 화가나 욕쟁이할머니 되던 목소리였다가도 깔깔 웃으셨지요?

“이쁜년들이 다 죽고 없나부다! 나 같은 쭈그렁할매보고 이쁘다냐?”하고요.

못난 이 손녀딸도 전부 기억하는 일인걸요.

꼬부랑 할머니 연세가 되었어도, 녀석은 응석부리며 어린손자로 마냥 좋았겠지요.

가끔 전화해서 겨우 할머니 목소리 듣는 정도였던 이 손녀딸도 코맹맹이 떼쟁이로 돌아가던걸요.

“할무니! 나 무 넣고 고등어조림 좀 해주라!”

그럼 할머니는 그러셨죠.

“고등어를 사와야지!”

언제나 할머니 앞이면 우리 삼남매는 다 그랬습니다.

할아버지의 더한 사랑과 이별하며 간신히 슬픔을 견뎌냈는데, 또다시 먼 길 떠난 할머니를 맏손자가 서럽게 울며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네요.

 

다른 사람들이 맛보지 못한 조부모 내리사랑 겹겹이 누리며 우리 세 피붙이가 끈끈해졌습니다.

두 분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부모님 이상으로 각별했던 그 정을 어찌 있겠습니까.

 

할머니!

당신이 사랑했던 큰 손자가 힘겹게 꼬부랑고개를 넘고 있어요.

목안에 뜨거운 덩어리가 고개를 넘어가지 못해 숨이 막힐 듯 아파합니다.

기진맥진 걸음으로 꼬부랑, 꼬부랑 현실을 걷고 있답니다.

누이는 이 말밖에 못했어요.

“속초 와서 바람 쐬고 가!”

이놈의 바닷바람이 동생이 오는 날엔 제발 소금기를 털어냈으면 좋겠네요.

잊었던 눈물 맛을 짭조름하게 기억해 낼까봐서요.

 

수의 입고 누우신 할머니 곁에서 오만가지 불효를 떠올리며 헉헉대는데,

동생은 다른 일을 안타깝게 얘기하더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생전에 두 분 경치 좋은 곳 모시고 다니며 드라이브나 더 많이 시켜드릴 걸 그랬대요.

저는요. 녀석보다 몇 배 더 중하고 기가 막힌 응어리 때문에 정신 놓고 우는데, 누이를 면목 없게 하더군요.

평소에 잘 하던 효자는 작은 아쉬움에도 저토록 피가 마르는구나 그제야 알았습니다.

 

우리 삼남매 속에도 할머니, 할아버지 기운이 연결 된 거 맞지요?

돌덩이 무게 발걸음으로 손자가 꼬부라진 고개를 혼자 넘고 있어요.

양 어깨에 힘을 실어주세요.

기운 내라고,

네 속 깊은 곳, 핏줄따라 심장박동으로 두 분이 살아계신 것이라고.

꿈에라도 큰 동생에게 나타나 꼭 처방해주셔야 됩니다.

주둥이 나불대고 되바라졌던 손녀딸의 마지막 부탁이니 들어주세요!

저도......,

잘 견디고 살아낼게요.

 

 

 

2012년 7월3일

울 할머니가 그리운 삼남매 대표 손녀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