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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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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


BY 박예천 2012-06-22

 

  우리할머니!

 

 

 

 

 

“누나, 할머니 화장한 모습 살면서 처음 본다. 정말 이쁘더라!”

생전에 분칠한번 입술연지 칠하는 적 없었던 할머니가 곱게 화장을 했다.

생소하였지만, 남동생말대로 예뻐 보여 오열하는 내내 자꾸 할머니 볼을 만졌다.

입안에 무엇인가 넣었다더니 틀니조차 빼버려 홀쭉했던 양 볼도 젊은 아낙의 얼굴이다.

 

할머니가 가셨다.

94세를 일기로 모든 가족들 뒤로 한 채 훨훨 영원한 천국행 나들이를 떠나버렸다.

이런 글조차 쓸 기운이 없을 정도로 먹먹하지만, 기록으로나마 남기고 싶어 책상 앞에 앉는다.

 

‘잘 가셨다!’ ‘호상이야!’라며 장례 치르는 며칠 내내 까르륵 웃기만 하던 오촌당숙모 입술을 할 수만 있다면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따귀라도 몇 대 칠걸 그랬나.

가슴 한 중앙이, 심장이 칼로 도려내진 듯 이렇게 아픈데.....,

어떤 사람의 죽음인들 잘 죽은 게 있단 말인가.

이별은 슬픈 것이고, 남아있는 가족에겐 당장의 상실인 것을.

나는 조문객으로 가더라도 절대 ‘호상’이라는 말을 하지 않으리.

백수를 건강히 누리다 가셨더라도 말이다.

 

도종환님의 시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이었던가.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입혔네.’

우리 할머니 평생 가족위해 옷만 짓다가 베옷조차 못 사 입고, 당신 손수 재봉틀 돌려 만들어 입고 가셨네.

나는 이렇게 가슴으로 시를 짓듯 울부짖으며 비닐로 싸서 항아리 속에 깨끗이 쟁여두었다가, 어머니가 입혀드렸다는 할머니수의를 몇 번이고 손으로 쓰다듬었다.

먼저가신 할아버지 수의도 꼼꼼히 바느질해 보내드리고, 당신 떠나실 세상 끝날 입을 외출복마저 준비하셨단다.

 

이제 우리 할머니가 없다.

손녀딸 가슴에 순하고 정담긴 말 꼭꼭 남기며 문학적 감성을 심어주던 할머니가 떠나셨다.

가족 누구를 부르든지 이름 앞에 언제나 붙어있던 ‘우리 아무개’라고 이제 누가 불러주나.

우리 아들 밥 먹어라!, 우리 딸들은 언제 오냐?,우리 며느리 왔냐?, 에이구.....,하나뿐인 우리 손녀딸!

아! ‘우리’라는 말이 이처럼 견고하고 의지가 되는 말임을 왜 할머니 떠난 다음에야 절실하게 알게 되었는가.

진즉에 ‘우리’속에 더 자주 뛰어들고 더 많이 다가가면 좋았을 것을.

이보다 더 끈끈한 결속력을 나타내는 단어가 또 있는지.

우리....., 할머니!

 

삼우제를 끝내고 돌아온 나의 생활터전.

맥을 놓아버렸는지 정리하고 살필 기력이 없다.

아들 녀석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마당으로 나가려는데 토끼가 겅중겅중 나를 반긴다.

풀 한줌 집어주니 최고의 은인이라는 기분으로 신이 난 몸동작이다.

키우는 애완견 사료도 한 봉지 사오는데, 가슴이 아려온다.

살아남은 것들은 또 아무 일 없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화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본다.

할머니 운명소식 접하고 친정으로 내달리던 날엔 없었는데, 그 사이 다육이 하나가 길쭉한 꽃 대궁을 내밀고 있다.

 

세상 한가운데 마침표가 찍히거나 시간이 정지되었을 며칠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할머니만 사라졌다.

‘우리’라는 커다란 울타리 속에서 할머니만 쏙 빠져버렸다.

 

장례식장에서 조문객 맞느라 무릎이 아프도록 절하며 저만치 탁자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쳐다보니, 저마다 음식 먹기에 바쁘다.

어디 그들만의 식탁이었는가. 나도 끼니를 거를세라 아귀처럼 쑤셔 넣었는걸.

할아버지 장례식 때는 없었던 증상이었다. 먹어도 채워도 배가 고팠다.

가족 누구에게든 ‘더 먹어라, 내 것도 먹어라, 이거 먹어라, 쟤들 밥 좀 줘라!’ 하셨던 할머니가 당신 장례 치르는 동안 배라도 곯을까 자꾸 퍼주는 모양이다.

걸신들린 거지처럼 퍼먹었다. 장지에 가서도 과일까지 어적어적 씹어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졌다.

할머니....., 이런 걸 원하신 건가요?

 

살면서 또 얼마나 많은 추억의 끈으로 할머니와 만나게 될까.

염하는 시신 앞에서, 영구차 창밖으로 보이는 고향산천 바라보며, 삽으로 관 위에 흙을 뿌리면서...., 숨이 멎도록 왜 울었을까.

고마워서 그랬다.

할머니께 받은 것이 헤아릴 수 없어, 생전에 못한 고백을 울음 속에 섞어 웅얼대며 답했다.

사랑한다고, 고마웠다고, 정말 미안했노라고.....,

이런 손녀딸이지만 우리 할머니라면, 또 끔찍이 퍼 먹이고 사랑해주실 거다.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할머니였으므로.

 

할머니, 안녕!

 


 

 

 

2012년 6월 17일 주님의 날에 할머니가 천국으로 떠나셨다.

오늘은 그로부터 엿새째 되는 6월 2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