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미성년자 자녀에게 식당에서 술을 권하는 부모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178

나도 옷 사줘!


BY 박예천 2011-12-12

 

            나도 옷 사줘!

 

 

 

자기 친정아부지가 딸들 넷 전부 도톰한 겨울 코트를 사줬다며 뽐내는 석이엄마.

무릎까지 내리덮는 군청색 겉옷을 입었다.

보슬보슬 털이 모자 테두리에 둘러쳐져 있어 참 탐스럽기도 하다.

워낙 옷 같은 거 관심 없었노라 예전부터 외쳐왔지만, 오늘은 참 부럽다.

달랑 딸 하나뿐인 울 아부지는 뭐 하는 건가.

 

어릴 적, 할머니 성화에 못 이겨 곡식 말이라도 팔아 와야 싸구려 옷 한 벌 얻어 입었지.

오일장에 엇갈려 쌓인 난전에서 고르고 골라 겨우 내 손에 들어왔던 빨간 코트.

그거 입고 서울시 영등포 가서 시집가는 큰고모 고운 얼굴 쳐다보며 발갛게 콧물 범벅이며 울다가 왔었다.

누가 사준 옷을 입어 본 게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도회지 나가 돈 벌던 고모들이 그나마 날 챙겨줬더랬다.

 

요즘 들어 밥하는 일에도 진저리가 난다.

열일곱 고등학교 자취시절부터 밥하기 시작해서 여태까지다.

일하기 꾀가 난다는 얘기가 아니다.

김치 한 보시기에 따끈한 밥해놓고 누군가 날 기다리는 상상을 자주 한다.

애지중지 손녀사랑은 할머니 한 분 밖에 없었다.

추운데 손 발 얼까, 몸 시릴까 신작로와 사립문 안을 서성이며 기다려주던 분.

눈물겹게 그립다.

내 먹을 밥 챙겨놓고, 걸칠 새 옷이나마 사 준 유일한 할머니.

할머니가 요양원에 눕고부터 나는 만날 속이 시리다.

 

아버지는 왜 그리 사셨을까.

당신 욕심만으로 똘똘 뭉쳐진 채, 배려라고는 없는 모습으로.

시집간 딸을 위해 뭔가 주고자 하는 맘이 없다.

딸네 집에 오면, 대접받기만 바라고 챙겨갈 것이 없나 오히려 찾는 편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

속이 상하고 화가 나다가,

또 지치게 울고 가슴이 미어지게 주먹으로 쳐보다가 주저앉고 만다.

나는 안다. 아버지 동기간들도 꼭 나만큼 먹먹하다는 것을.

당신의 시대를, 그 당시 환경적 배경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이해하려 애쓸 뿐이다.

하여, 언제나 마지막 남겨두는 갈등의 끝은 측은지심이다.

불쌍하게 바라보는 것 밖에 내가 베풀 아량은 없기에.

 

시집오던 해.

치렁치렁 긴 길이의 밍크코트 입고 있던 시어머니를 보았다.

남편이 선물한 것이라 했다.

당신은 내년에 사줄게!

궁금하지도 묻지도 않는 내게 먼저 말을 건네는 남편.

여태 밍크는커녕 흔한 겨울 옷 한번 사 준적 없다.

참 더럽게도 복 없는 년의 팔자라고 청소기를 밀며 콧날이 시큰해지는데.

한 편으로 든 생각이란 게.

‘사흘 운 년이 열흘 못 울까’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었듯이, 지금껏 잘 견디며 살아온 년이 평생인들 못 살까 드는 맘이다.

 

얇은 검정색 누비점퍼로 몇 해째 겨울나기를 하는 중인데,

오늘은 드디어 겨드랑이 부분이 찢어졌더라.

박음질로 꼼꼼히 꿰매보려다가......, 이런 지지리 궁상도 없는 거다.

나 받은 거 없는 팔자라 해도, 자식 따뜻이 입히고 남편 밥상 잘 차리는 걸 만족으로 알고 살아왔다.

정말이지 이런 기분 든 적 거의 없었는데, 석이엄마 코트가 참 샘이 나게 이쁘다.

 

나이를 먹는가.

모가지에 찬바람이 들고 궁둥이가 유난히 시리다 생각하던 차, 그 옷을 보니 울 아부지가 더 밉다.

낼 모래 지천명인 딸년이 생전 첨으로 떼를 써보면 옹고집 아부지는 뭐라 하실까.

 

 

아부지!

 

나두 옷 좀 사줘 봐요!

 

 

 

2011년 12월 12일

옷 얻어 입고 싶은 날에^^